학교폭력 경감 '우수' 울산매곡초

2012.11.01 09:00:00

또래 간 왕따 및 폭력, 청소년 자살 등 학교폭력에 관한 소식이 연일 뉴스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학교폭력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사회문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효과적인 학교폭력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학교폭력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학교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울산매곡초등학교에서 그들만의 노하우가 담긴 이야기를 들어보자.


따사로운 가을 햇빛이 쏟아지는 울산매곡초등학교의 운동장,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겹게 뛰어놀고 있다. 내리쬐는 햇볕만큼이나 포근한 공기가 느껴지는 울산매곡초는 학교폭력 경감 우수학교로 지난 6월 울산 KBS 라디오 방송에도 소개됐다. 올해 초,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나온 심각한 결과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12년 2월 초 한국교육개발원에 의뢰하여 ‘학교폭력예방을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4월 19일 발표된 학교별 학교폭력 실태결과에 따르면, 울산매곡초는 전체 4·5·6학년 중 57%의 학생이 조사에 응답했고, 응답자의 37.4%인 125명이 학교에 일진이 있다고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란 학교는 다음 날 학교 자체적으로 다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4·5·6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전수조사에서 16.3%의 학생들이 역시 학교폭력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보통이라면 숨기고 싶어 했을지도 모를 이 수치에 대해 울산매곡초의 정동락 교장은 오히려 전부 공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기본적인 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른 교육활동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교육적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정 교장의 의지는 단호했다. 가정통신문으로 모든 조사결과의 수치를 학부모들에게 공개하여 실태를 알리고, 모두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학교폭력을 줄여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올바르다는 결론에 힘을 모았다.

변화의 시작은 학급공동체에서
울산매곡초는 우선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 활동을 벌이고 교내외 순찰을 강화했다. 또한 홈페이지에 학교폭력방을 운영하며 관련 모든 상황을 지속적으로 탑재하고 학부모의 관심을 유도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향한 더 큰 관심과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점에 교사들의 마음이 일치하여 단위 학급 별로 인성과 협동심을 키워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3학년 1반 학생들은 ‘나쁜 말 쓰레기통’을 만들어 학기가 시작할 때 자신이 쓰는 나쁜 말을 적어 버리기로 했다. 색종이에 자기가 자주 사용하는 나쁜 말을 적어 나쁜 말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렇게 버린 나쁜 말은 다시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니까 마음이 후련했어요. 이제는 말을 더 조심해서 쓰게 되요.”
“이제 진짜 쓰지 말아야겠다! 하고 결심을 할 수 있게 돼서 좋아요. 1학기 때보다 저도 그렇고 친구들도 나쁜 말이 많이 줄었어요.”
쓰레기통에 버려진 말은 교사는 물론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다시 그 말을 쓴다고 누가 혼내거나 지적하는 것도 아닌데 강민준, 최정윤 학생을 비롯한 이 반의 학생들은 스스로 말하는 습관을 고쳐나가고 있었다.
6학년 6반에서는 사진을 이용해 ‘우정’에 대한 표현을 해보는 학습을 실시했다. 학생들은 사진 촬영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이 생각하는 우정에 대해 표현했고, 친구들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권순현 담임교사는 학생들이 함께하는 학습 기회는 자주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모둠활동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협동심을 기르며 친구를 아낄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완성물의 수준도 더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아이들에게 우리 반, 우리 학교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너희들이다, 나는 방향만 제시해 줄 테니 스스로 이끌어 보라는 말을 많이 해줬죠. 아이들은 모두 함께 어울리고 방법을 모색하면서 스스로 좋은 문화를, 즐거운 반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돼요.”

가정과 소통하는 학교교육
학교 내부 노력만으로는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학생들이 학교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가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울산매곡초는 과감하게 학부모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높은 학교폭력 실태가 발표되었을 때도 조사 결과를 학부모들에게 여과 없이 공개했던 것은 그만큼 서로 간에 쌓아놓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학부모들은 그 결과를 학교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함께 해결에 나서야 하는 문제임을 인지했고, 흔쾌히 두 팔을 걷어붙였다.
교사들만으론 부족한 교내외 순찰 인원을 확보하기 위해 학부모회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191명이 자발적으로 참여의사를 표시했다. 학부모들은 4인 1조로 하루씩 돌아가며 쉬는 시간 동안 교내 복도, 계단, 체육관 등지에서 학생들을 보살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우리 ‘엄마’가 함께 있다는 것은 학생들 행동에 확연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 본인도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는 6학년 박광현 학생의 학부모는 “내가 하는 일은 아이들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다. 학생들이 욱하다가도 엄마가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자제하고 한 번 더 생각하는 모습을 보일 때 뿌듯하다”며 활동에 대한 만족을 표시했다.
매주 수요일 저녁은 이 학교에서 지정한 ‘가족 식사의 날’이다.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으며 가족 간의 유대감 형성과 ‘밥상머리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매주 소감록 작성 및 연 1회 실천사례 공모대회까지 개최해 시상하고 홍보하니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에게도 반응이 좋다. 학교와 가정의 긴밀한 관계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의 움직임이 학교폭력 감소는 물론 학생들의 참된 인성 성장에 무엇보다 효과적임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우리의 학교
앞서 권 교사가 언급했듯이, 학교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주체는 학생들이다. 이에 울산매곡초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학교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전교어린이회인 ‘매곡자치의회’를 활성화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하며 정한 규칙은 학교에서도 수용해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학교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학생들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을 줄여보고자 방송반 학생들은 모여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동영상을 제작했다. 내용선정 및 촬영, 방송까지 학생들이 직접 주관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직접 출연해서 만든 이 동영상은 전교생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학교 상담실 이용에도 변화가 생겼다. 학교가 자신들에게 기울이는 깊은 관심을 느꼈는지 학생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가지고 상담실을 찾았다. 이전에 비해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음을 느낀다고 이수정 상담교사는 말한다.
“가장 달라진 것은, 자기들끼리 스스로 와서 대화를 나누다 간다는 거예요.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선생님, 우리끼리 이야기 좀 하다 갈게요’하고 와서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숨어있던 마음들이 나오고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는 모습을 보았어요.”
상담 교사가 직접 학생들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아도, 이제 학생들은 스스로 대화를 나누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는 법을 깨달아가고 있다.

이해와 나눔, 더 큰 꿈으로 성장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 속에 학생들과 학교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 7월 4일 학교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률은 3.4%까지 감소했다.
“학생들이 나쁜 마음을 먹어서라기 보단, 그 행동이 주변에 어떤 상처를 주는지 몰라서 그러는 경우가 많아요. 그냥 장난으로, 심심해서 그랬다고 많은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대답을 하잖아요. 그것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변화합니다.” 심외보 교감의 말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은 단지 학교폭력 감소라는 표면적 실적을 위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인성을 키우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깨닫게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문제는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어본 셈이다.
전교생은 인근 유치원이나 복지기관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비영리단체와 연계해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나눔과 배려의 실천이다. 학생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아껴 모금을 하고, 그렇게 모은 성금은 반별로 3만 원씩 다른 나라의 어린이를 후원하는 데에 보내진다. 그리고 그 아이와 편지도 주고받으며 또 다른 우정을 쌓아가는 법까지 배우고 있었다.
5학년 교실 복도에서는 학년 초 학생들이 자신들의 꿈을 적어 천장에 띄워놓은 모빌을 볼 수 있었다. 그 안에 적힌 꿈의 내용은 제각각이겠지만, 그들은 함께 그 다름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고 있다. 상대를 아끼고 존중해주는 울산매곡초의 문화 속에서 학생들의 꿈은 보다 높게 더 크게 오늘도 자라고 있다.
박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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