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하고…'하나로수업연구회

2013.01.01 09:00:00

작은 강당에 체육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4~5명씩 모둠으로 모여서 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다. 강당 벽면에는 넷볼, 농구, 다이어트 등을 주제로 학생들이 직접 디자인한 포스터가 붙어있고 한쪽 귀퉁이 책장에는 만화책 <슬램덩크>를 비롯해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따뜻한 독종> 등의 책이 진열돼 있다. 또 아이패드에 연결된 스피커에서는 요즘 아이돌의 최신곡이 흘러나온다. 생글생글 잔뜩 신난 얼굴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캔버스를 채워가는 학생들의 표정에서 행복이 읽힌다. 보는 사람까지 미소 짓게 하는 이곳은 문학, 역사, 예술, 철학 등이 융합된 ‘하나로 수업’ 현장이다.


교사·학생의 역량 키우는 전문성 공동체

“단순히 몸만 쓰는 체육이 아니라 영상을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면서 몸은 물론 마음까지 단련되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아요.”(1학년 강수민)
“선생님이 우리들을 하나로 묶으려고 많이 노력하세요. 그래서인지 수업시간에 협동심이 커지는 걸 느껴요. 모둠으로 활동하니까 잘 몰랐던 친구들과 알아갈 기회도 생기고 왕따 문제도 없어지는 것 같아요.”(1학년 김유진)
배문수(수원 수일여중) 교사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초등학교에서 경험했던 기존의 체육수업과는 확연히 다른 배 교사의 수업방식은 이들에게 신선함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최근 교육계에서 집중 조명되고 있는 부분이 창의성과 인성이잖아요. 제가 속해 있는 하나로수업연구회(이하 하수회)는 인문적 체육을 모토로 시작됐어요. ‘체육수업에 배울 수 있는 기능, 지식, 태도를 하나로! 하기·읽기·보기·쓰기·듣기를 하나로! 학교수업과 일상생활을 하나로! 서로 다른 사람을 하나로!’ 등을 교육목표로 삼고, 체육 이외의 다양한 교과 간 융합을 시도하는 수업이죠.”

배 교사가 말한 인문적 체육에 처음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한 이는 최의창(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였다. 최 교수로부터 인문적 체육의 수업철학과 방법을 배우고 졸업한 열정적인 제자 한민국, 이승재, 조종현, 유은정 교사 등을 중심으로 2004년부터 하나로 수업이 현장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하나로 수업 이론을 현장에 적용하면서 이론과 실제의 균형, 구체적인 적용방안, 문제점들을 파악해 나갔고 개선점을 찾아 해결하면서 현재까지 수업 모형을 발전시켜 왔다.
이들의 활동은 크게 수업연구, 연구회를 통한 수업모형 개발, 강의와 연수 등으로 구분되는데 모임 내에서 연구개발부와 기획운영부로 업무를 분장해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연구개발부는 주로 수업연구, 각종 강의와 연수, 프로젝트 개발 등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기획운영부는 수업에 대한 포스터와 팸플릿 제작, 각종 행사 계획과 추진 등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서울, 경기, 충남, 경남, 광주까지 전국 40여 명의 교사들이 연구회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각각 시, 소설, 영화, 건축, 회화, 사진, 조각, 음악 등의 전문 관심영역을 담당하고 이를 체육교과와 연계하는 방법을 회원들과 공유한다. 이들의 ‘교육적 십시일반’ 덕에 이 모임이 추구하는 융합수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교사 개개인의 전문성을 살리고 그 전문성을 나누면서 모임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키는 것, 바로 이 점이 하수회를 전문성 공동체로 만든 원동력이다.

교과 간 융합 시도, 학생 자존감 높이는 효과 커
인문적 체육과 과학적 체육의 융합, 창의와 인성을 강조한 체육수업, 체육수업을 통한 학생의 인성변화, 여학생 체육활성화 등을 목표로 프로그램을 개발해 온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차별화된 수업 방식이다.
배 교사를 포함해 하수회 소속 교사들은 종목별로 수업을 준비할 때 각 종목 특성과 수업 주제·목표에 부합하는 다양한 역할을 학생들에게 제시한다. 이끔이, 시범이, 영상이, 장단이, 기록이 등으로 역할을 나누고 ‘패’별로 수업에 참여하게 하는 것인데, 이때 학생들은 자신의 역할을 모둠별로 토의해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리더십이 강한 학생은 이끔이, 영상기기와 카메라를 잘 다루는 학생은 영상이, 친구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데 탁월한 학생은 장단이, 교사가 나눠주는 학습지와 유인물 등을 파일에 정리하고 기록하는 데 뛰어난 학생은 기록이를 담당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역할 분담을 통해 평소에 잘 몰랐던 친구들의 장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협동심과 배려심, 아울러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해나가는 데 필요한 책임감까지 배우게 된다. 모임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윤진(서울 중랑중) 교사는 이를 하나로 수업의 효과로 꼽는다.
“이렇게 역할분담이 되면 그 다음에는 다양한 종류의 학습활동들을 공동체적으로 진행해요. 예를 들어 야구를 배울 때 수비와 공격, 던지기나 때리기 등 시합기술만이 아니라 야구를 다룬 시, 소설, 영화, 만화, 회화와 조각, 음악, 심지어는 야구의 역사와 철학 등도 함께 학습활동으로 배우죠. 기존의 체육에서는 소외되어왔던 인문적 지혜들을 스포츠와 함께 맛보도록 해서 건강과 기능은 물론 창의성과 인성 함양도 도모하는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덕분에 운동능력이 우수한 소수의 학생들만 즐기던 수업에서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고 즐기는 체육수업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소위 운동 신경이 조금 부족한 학생도 자신의 관심 분야에 참여함으로써 자신감을 되찾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친구들의 인정까지 덤으로 받게 됐다.
또 매 종목마다 새로운 수업 주제와 목표가 주어지는 점도 주목해 볼만하다. 가령 장애물달리기 수업을 진행할 때 허들을 빨리, 정확하게 뛰는 것을 최종평가항목으로 넣어 바른 자세로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반복 연습을 시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하수회는 사고를 확장해서 장애물달리기에서 연상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수업에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테면 내 인생의 장애물, 나의 장애물을 넘어보기, 걸림돌과 디딤돌, 장애를 극복한 운동선수들 등을 연상하면서 매 차시별 수업시간에 이러한 요소들과 연계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죠. 이런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수업 외에도 자신이 평소에 갖고 있었던 여러 가지 고민, 가족과 친구관계, 그리고 앞으로의 진로까지 한 번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고, 그것을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되요.”
여기, 인문적 체육을 강조하는 하수회의 철학이 담겨 있다.

4덕·5지·6예 그리고 도약
수업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즉 교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수업하느냐에 따라 수업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하수회는 학생들의 전인교육을 위해 교사의 4덕, 5지, 6예를 강조한다. 4덕(四德)이란 내면에 키워야 하는 네 가지 덕성을 말하고, 5지(五知)란 잘 알고 있어야 하는 다섯 가지 지식을, 6예(六藝)란 능숙하게 지녀야 하는 여섯 가지 기술 또는 능력을 뜻한다.
이 모임 회장인 박영권(경기 군포중) 교사는 “하나로 수업이 학생들의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수업이 될 것”이라면서 “운동을 즐기고 운동문화를 존중하도록 지도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도 스포츠를 자신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흡수하면서 스포츠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덕목들을 저절로 학습하게 되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는 효과라고 강조한다.
이들의 하나로 수업은 KBS 학교개혁특집 ‘아이들의 심장을 뛰게 하라’에 등장할 만큼 주목받은 바 있다. 또 경남과 충남 지역 학교에서도 이들의 수업을 도입하고 있다. 수업 효과를 검증받은 셈이다. 하수회는 학생들이 행복하고 즐거운 수업, 사람 간에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수업, 자신을 돌아보며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는 인성교육 실현을 위해 앞으로도 프로그램 개발과 교사 연수 등의 노력을 지속해나갈 계획이다. 변화된 체육수업이 이끌어낼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믿기 때문이다.
서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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