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가 열렸다. ‘노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물음은 은퇴 후 인생 제 3막을 준비하는데 앞서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되었다. ‘노인의 품격’이냐 ‘네 멋대로 해라’냐, 당신의 선택은? 품격 있게 늙어 주위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평생 참아오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자는 주장 사이의 간극은 넓지만 두 가지 중 어떤 선택을 내리든 본질은 같다. 고령자 스스로 ‘삶의 질’을 지켜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이다.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누구를 만날지,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이 불문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어린 시절은 그나마 고민할 필요가 적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살면 된다. 사회생활이 한창인 청장년층은 오히려 선택이 어렵다.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일하다 보면 시간이 다 지나간다.
문제는 노년이다. 시간이 남아도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렵다.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서 모아둔 저금도 있고, 연금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경우 선택은 더욱 어려워진다. 노후 준비를 미리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인기 TV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의 주인공 같은 노년을 원한다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인간관계를 넓힐 수 있을지, 어떤 취미를 선택하고 누구와 어울릴지 고민해야 한다. 일만 열심히 하고 살아온 은퇴자에게 자칫 노년은 기약 없는 감옥 생활로 다가올 수 있다.
한국 고령화 이야기를 다룰 때, 먼저 돌아봐야 하는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국가인데다 문화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 세계 최고령 국가이다 보니 일본에선 품격 있는 노년을 보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은 이미 70년대부터 국가가 정책적으로 노년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과목도 방대하다. 피아노, 외국어, 꽃꽂이, 댄스, 낚시 같은 취미 일반에서부터 늙은 아내의 마음 파악하기, 손자에게 관심 받는 방법 같은 대인관계 교육 과정까지 찾아 볼 수 있다. 품격 있는 삶을 위해서 일본 노인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방대한 노인 잡지군만 봐도 이런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시사지, 여성지처럼 노인 잡지군이 따로 있다. <이키이키(いきいき)>라는 잡지는 1995년 4월 창간해 현재 40만 명이 애독하고 있다. 지금 돌보는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와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 필요한 노후 정보가 담겨 있다. 노년 생활의 실용 정보지를 표방한 <사라이(サライ)>도 22만 부를 발행한다. 품격 있는 고급문화에 주목하고 일본적인 기술, 장인에 관한 내용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손자의 힘(孫の力)>이란 잡지도 있다. ‘손주는 당신과 일본의 미래’라고 선언하고 손주와 관련된 다채로운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이처럼 일본의 노인 잡지는 노인, 노화, 세대, 가족을 화두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며 노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노인의 품격' VS '네 멋대로 해라'
일본 노인들이 노력하는 이유는 주위로부터 존중받기 위함이다. 가족, 친지들로부터 존중받으며 밝은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노년이 행복해진다. 이를 위해서 학원을 다니고, 책을 읽는다. 여기까지는 착하게 늙기 원하는 모범생 일본 노인들의 모습이다.
반면 ‘모범생처럼 살지 말고 세상을 삐딱하게 대하는 노인이 되자’는 ‘불량노인 운동’도 있다. 마음속의 탐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살자는 주장이다. 불량노인 운동은 일본의 불교 조각가 세키 간테이(91)가 2001년 펴낸 책 <불량노인이 되자>에서 시작됐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늙었다고 기죽을 이유가 없다. 세상 달관한 척 굴지도 말고 솔직해 지자”는 것이다. 나이 먹었다고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내 나이가 몇인데 관두자’ 식으로 억누르거나 나이가 많으니 점잖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 건 인생을 쓸쓸하게 만든다고 본다.
젊은 시절 ‘삶이란 무엇인가’란 고민에 빠져 전국을 방랑했던 간테이는 결국 답을 못 찾았다. 그는 어차피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아는 체 말고 흔들리며 살아도 좋다는 결론을 냈다. 당시 간테이가 제안한 ‘불량스럽게 살자’는 주장은 일본 노인 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은퇴 한 다음 가족에게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노인들에게 시간과 돈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자는 주장이 먹혀 들어간 것이다. 실제로 간테이는 “여자들이 만지고 싶어 하는 몸을 만들자”며 매일 밤 술집을 돌아다니며 젊은 여성들과 연애를 즐겼다. 그는 환갑을 넘어선 이후에도 80명의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품위가 없는 노인이라는 눈총을 받으며 결국 ‘불량노인’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간테이의 주장에 동의하는 노인들이 만든 단체가 바로 ‘불량노인구락부’다. 2006년 가진 첫 모임 장소에는 ‘뻔뻔한 할머니들에게 대항해서 세상을 바로 잡자’는 구호를 걸어놔 화제가 됐다. 일본의 베이비부머 세대를 통칭하는 단카이 세대는 일본의 고도성장 시대에 사회생활을 했다. 가족과 대화가 적은 무뚝뚝한 가부장적인 세대다. 은퇴 이후 많은 이들이 가족과의 단절을 경험했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고 생각했지만 가족의 반응은 달랐다. 퇴직해 나이 든 남편을 지칭하는 ‘오찌 누레바(젖은 낙엽)’라는 말도 나왔다. 아내한테 딱 들어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는 뜻이다. 이에 반발한 노인들이 불량노인 운동에 적극으로 나선 것이다.
불량노인 운동의 이면에는 사회문제로 떠오른 일본 고령화의 현실이 있다. 독거노인의 자살이 늘고 있고, 사망했지만 돌보는 이들이 없어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 발견되는 무연고 노인 사망도 매년 수만 건에 달한다. 2012년 일본의 대표적 유행어는 모든 인간관계가 끊긴 상태를 의미하는 무연사회(無緣社會)다. 일본 특유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붕괴되자 수많은 노인이 인간관계가 끊어진 채 외로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일본의 노인 문제는 복합적이다. 사회·경제·문화·가족관계가 얽혀있다. 일본 인구 1억 2700만 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2900만 명으로 22%에 달한다. 이 중 대다수의 노인들이 사회 보호망 밖에서 외롭고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 은퇴 순간 겪는 변화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노인들도 빠르게 늘었고, 궁지에 몰린 노인들이 저지르는 분노 범죄도 매년 늘어가고 있다.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노인을 지칭하는 폭주노인이라는 명칭까지 등장했다.
'내 삶의 질은 내가 지킨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조용탁 이코노믹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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