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육사를 보면 사회가 위기를 맞을 때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교육개혁이 단행됐다. 우리나라 교육 역사에 한 획을 그은 ·31 교육개혁 또한 같은 맥락에서 야심차게 실시됐지만 신자유주의 이념 적용으로 많은 병폐를 낳았다. 한국교육은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 도입으로 사회변화에 부응하고, 선도할 과제를 안고 있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취임한 황우여 장관은 취임 직후 교육계에 큰 화두를 던졌다. 황 장관은 지난 8월 8일 취임사에서 “5·31 교육개혁을 재조명하면서 지켜야 할 교육의 기본적 가치는 유지하면서, 새로운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교육의 새로운 틀을 모색할 때”라고 밝혔다. 황 장관은 8월 11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도 5·31 교육개혁의 재조명과 새로운 교육개혁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또다시 강조했다. 당시 젊은 기자들은 ‘5·31 교육개혁’이 무엇인데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20년 전에 있었던 교육개혁을 화두로 제기했는지 궁금해 했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새로운 교육개혁 방안이 필요하다는 황 장관의 언급은 정치인 출신 교육부장관으로서 예상된 행보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렇다면 교육계가 황 장관의 언급을 예상된 것이라고 평가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또 황 장관이 5·31 교육개혁을 언급한 배경은 무엇일까? 교육개혁에 관한 세계의 교육사를 살펴보면 이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독일은 19세기 초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훔불트(Humboldt)와 피히테(Fichte)의 지도력으로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당시의 교육개혁은 다른 나라의 국민교육 제도의 발전에 중요한 모형으로 영향을 미쳤다. 미국도 1929년을 전후해 경제대공황을 겪었을 때 교육이 현실적인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진단하고,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당시에 나온 ‘지역사회학교’ 개념은 현대적 학교의 전형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1957년 10월 4일 소련의 스푸트니크(Sputnik) 인공위성 발사에 충격을 받은 미국이 국가 위기의 해법으로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가 교육개혁이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구한말 일본과 서방 국가들에 의해 국운이 풍전등화일 때 ‘갑오경장’이라는 개혁의 일환으로 고종황제는 ‘교육입국조서’를 공포했다. 이를 통해 수백 년간 이어져온 교육제도를 폐지하고 서양식 공교육 제도를 수용해 새로운 국민교육 체제를 수립하고자 했다.
교육개혁, 국가 위기의 돌파구
이처럼 세계의 교육사를 보면 사회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위기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교육개혁이 단행됐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 미군정기는 물론 역대 정권에서 끊임없이 교육개혁을 추진해 왔다. 지난 1995년 5월 31일 김영삼 정부가 이른바 ‘열린 교육사회(Edutopia)’를 표방하는 교육개혁을 발표한 것도 이런 흐름 속에 있다. 황 장관이 ‘5·31 교육개혁의 재조명’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5·31 교육개혁이 우리 교육에 미친 영향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나타났던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5·31 교육개혁이 지닌 원칙과 접근방법, 특징을 볼 때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5·31 교육개혁의 패러다임이 적절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5·31 교육개혁은 교육개혁의 방향으로 ‘신교육 체제’ 구축을 내세웠고, 핵심 내용으로 ‘열린 교육사회, 평생학습하는 사회’의 건설을 추구했다. 그러면서 교육 통제 구조의 개편, 소비자 중심주의, 시장논리 도입, 탈규제정책, 교육기관의 경쟁력 강화 등 방법론적 원칙을 제시했다. 이런 원칙들은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기능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했다. 이런 흐름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일본, 호주 등 선진국들이 경제 우선 정책을 배경으로 하는 ‘경제를 위한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데 공통점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도 5·31 교육개혁에 신자유주의를 반영했지만, 신자유주의 기본이념이 교육개혁의 원칙으로 적용되고 많은 부작용이 초래됐다. 시장논리가 무분별하게 도입되면서 ‘시장의 폭력성’과 ‘경쟁의 폭력성’이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기치 내건 5·31 교육개혁… 부작용 초래해
교육이 소비자, 공급자 중심 논리로 재단되다 보니 고령교사 1명을 퇴출시키면 신규교사 2.6명을 채용할 수 있다는 폭력적 주장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제기되고, 결국 정부 정책으로 현실화되었다. 정부는 교원의 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단축하는 과정에서 여론조작을 통해 ‘고령교사=무능교사’라는 등식을 만들어냈고, 이로 인해 많은 교사들이 정년단축으로, 명예퇴직으로 교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퇴직 교원의 증가는 공무원연금기금을 위협해 연금법 개정 논란을 촉발해 교단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원이 안정감을 갖고 학생교육에 전념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다를 바 없었다. 교권은 철저히 유린당했고,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정부의 교원수급 정책은 땜질 처방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학교현장이 떠안았고, 그 폐단은 학생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퇴직한 교원이 또다시 기간제 교사로 교단에 돌아와 학교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고, 기간제 교사조차 구하지 못하는 학교는 경품 제공까지 내세우며 교사 구하기에 나서는 촌극도 벌어졌다. 중등교사 자격자를 임시처방으로 초등교사로 임용하는 ‘중초교사’도 남발됐고, 교원 수급 불안정에 따라 지역 간 교육 격차가 심화되는 결과도 초래되었다.
학교에서는 교장의 권위는 물론 교사의 교육권도 위협받았다. 소비자 중심주의 원칙에 따라 학교의 담장을 걷어낸다는 이유로 학교운영위원회가 설치되었고, 교권은 무너져 갔다. 학부모의 폭언과 폭력 등으로 교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급증했고, 교사가 학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장면이 공중파를 통해 여과 없이 TV 뉴스에 방송되는 일도 일어났다. 또 학부모는 물론 제자들에게 폭력을 당하는 교사에 대한 뉴스도 이제는 심심치 않게 전파를 타고 있다. 5·31 교육개혁 이후 역대 정권들은 교사가 살아야 교육이 산다고 외쳤지만, 교사가 살 수 있는 정책은 외면했고, 교사를 철저히 개혁 대상으로 몰아쳤다. 교육에 시장 경제적 관점이 적용되면서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도입되었고, 무분별하게 대학이 양산되어 지금은 대학구조조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박근혜 정부 이후 정권의 가장 큰 국가적 과제가 대학구조조정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교육의 시장논리는 국가적 고민들을 만들어냈다. 학생, 학부모의 선택권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학교를 세웠지만, 평준화의 기본 틀 속에서 외고, 특목고, 자사고 등은 입시 명문학교로 전락했고, 교육의 불평등이 확산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공교육에 대한 불만족은 여전하고 사교육비 부담도 지속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의 입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학습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 자살, 학교폭력이 교육문제를 넘어 사회문제로 확산되었고, 학생 안전도 국가·사회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특히 인성교육이 강조되고 있지만 우리 교육 현실 속에서 인성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조차 ‘창의인성’을 내세우며, ‘창의’가 먼저지 ‘인성’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처럼 5·31 교육개혁은 우리 교육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교육정책을 쏟아냈지만, 부작용도 상당했다. 또한 경쟁 중심 교육과 인성교육 약화, 학교 불만족, 사교육비 부담 증가 등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교육은 그동안 많은 성장을 해 왔다. 교육의 양적 성장 측면에서 보면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발전을 이뤄냈다. 이런 배경에는 국가의 역할보다는 국민들의 세계 최고 교육열이 큰 역할을 했다. 예전에 대학을 상징하는 ‘상아탑’은 부모가 가정의 재산목록 1호인 소를 팔아 자식 교육에 투자한다는 ‘우골탑’으로, 부모 등골을 휘게 한다는 ‘등골 브레이크’로 이어지며 자녀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자주 언급하는 것에도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에 대한 부러움이 담겨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 연구(PISA)와 국제 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가 주관하는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 변화 국제 비교연구(TIMSS)에서 한국 학생들의 평가결과가 세계 최고 수준인 것도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장 교사들이 성공적 교육개혁의 열쇠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한재갑 뉴시스 교육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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