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의 눈물’에 가려진 학폭위의 민낯

2014.10.01 09:00:00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본격 시행 3년째를 맞고 있지만 여전히 논란과 갈등을 부르고 있다. 사소한 말다툼까지 학폭위 심의에 넘겨지면서 학교마다 몸살을 앓고 있고 교사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다.

지난해 서울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왕따 사건이 발생했다. 친구들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이다. 학부모로부터 진정이 접수되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가 열렸다.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이 논의됐다. 그런데 이번엔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학부모가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자녀도 왕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번엔 또 다른 학생이 가해자가 됐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학부모 역시 이의를 제기했다. 억울하다는 것이다. 여러 학생이 같이 왕따를 시켰는데 자신의 자녀만 가해자가 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원점에서 다시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고민에 빠진 학교 측은 이 반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학교폭력 피해조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엉키면서 전체 학생 대부분이 연루된 것이다.

왕따 사건 발생한 초등학교, 학폭위로 쑥대밭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고, 그러면서 또 가해자가 되는 전형적인 모양새를 띄었다. 학부모 사회는 벌집을 쑤신 듯 했다. 학폭위에 사안 접수가 폭주했다. 자녀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학부모가 가해 학생을 고발하면 그 학생 부모가 맞고발하면서 또 다른 학생을 학폭위에 신고하는 사태가 연쇄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관할 교육청에 보고된 이 학교의 학폭위 개최 건수만 33건에 이르렀다. 학급 전체 학생이 학폭위 조사대상에 오른 셈이다. 이들 중에는 학폭위 결정을 따를 수 없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혼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불똥은 학교 측으로 튀었다. 학교에서 학생지도를 잘못하는 바람에 이 같은 사건이 발생했으니 책임지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교장과 교감, 담임교사가 중재에 나섰지만 효과는 없었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2~3개월 지속된 학교폭력 갈등에 급기야 학교장이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는 뇌출혈 판정을 받았다. 복수 교감이 배치된 이 학교 교감 두 명도 모두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병원 신세를 졌다. 올해 초 이 사건은 종결됐지만 학생과 학부모, 학교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운영을 둘러싸고 교육현장에서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학폭위에 상정된 사건들이 늘어나고 학폭위 결정에 불복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특히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는 학폭위를 더욱 뜨거운 감자로 만들어 버렸다. 지난 2012년 정부는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통해 학생들이 학교폭력에 경각심을 갖게 하겠다며 학폭위의 징계 결과를 가해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했다. 초·중·고 자치기구로 설립된 학폭위는 학교폭력 가해·피해 학생 사이의 민·형사상 분쟁을 조정하고, 피해 학생에게는 심리치료 등 구제 활동을, 가해 학생에게는 사회봉사부터 퇴학 등의 조처를 취할 수 있다.

학폭위에 휘말린 교장, “죽을 것 같은 고통 느꼈다”
그러나 상당수 학교들이 운영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학폭위를 운영하면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고 말했다. 교직생활 38년 동안 이런 스트레스는 처음 받아 봤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 교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엉켜 다투다가 학교 측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몰아세우는데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학폭위에 말려들어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많다”면서 “특히 젊은 여교사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 한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학폭위의 신뢰성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심의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동일한 사건을 두고 학교마다 징계 수위가 달라 불신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고민 중이다. 학폭위의 신뢰성과 공정성 확보가 학교폭력 예방의 중요한 관건이지만 여건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교육부는 현재 학폭위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학부모 위원 비중을 줄이고 민간 전문가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과 법조인 등 전문 인력을 투입, 학폭위 결정의 신뢰를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학교폭력 예방 법률 개정안에서는 학폭위 구성을 9명으로 하고 이 중 학부모 3, 교사 3, 외부 전문가 3명으로 하는 방안이 제시돼 있다. 당초 교육부는 학폭위 결정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폭력 유형별 징계 수준을 정해주는 가이드라인을 만들 방침이었다. 그러나 입법예고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측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피해자 측과 그 반대 입장인 가해자, 그리고 교육적 접근을 우선하는 교육당국 3자의 의견이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결국 교육부는 학폭위 징계수위를 정량화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를 접었다.
교사들이 받는 고통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폭력 담당교사나 학교폭력 사안처리를 맡은 교사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반 교사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가산점과 수업시수 경감에 대한 반발이 컸던 것이다.

교사들 부담 경감… 담임종결 여부 학교장이 결정한다
대신 학폭위로 폭력사건이 쏠리는 것을 막고 학교폭력 학생들에 대한 선도 기능을 맡아온 속칭 ‘담임종결제’는 내년부터 운영방안이 달라진다. 담임종결제 존폐를 놓고 고심했던 교육부는 담임종결 사안처리 여부를 학교장이 결정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담임교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라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또 담임종결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의 범위도 확대하기로 했다. 예컨대 신체나 재산상의 피해가 없거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화해를 한 경우 어느 한쪽만 해당돼도 담임종결 대상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교육부는 이 과정에서 교사들이 실수로 법적, 행정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담임종결 대상을 명확히 제시할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오는 10월까지 의견을 수렴한 뒤 11월 중 정부 방침을 확정할 계획”이라며 “내년 3월 신학기부터 새로운 학교폭력 대책을 시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상반기 학폭위 개최 건수는 모두 2만 6,455건으로 이 중 9,713건이 심의됐고 피해 학생 수는 1만 6,45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폭위 심의는 초등학교가 982건, 중학교 5,911건, 고등학교 2,787건, 기타 33건으로 집계됐다. 피해 학생 역시 중학교가 1만 656명으로 가장 많았고 고등학교가 3,135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또 117 학교 폭력신고 현황은 2014년 6월 기준 하루 평균 213건이며 유형별로는 폭행이 30.8%로 가장 많고 모욕 26.3%, 왕따 5.5%, 협박 4.5% 순으로 나타났다.

■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심의 건수 (2013. 3. 1~2013. 8. 31)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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