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사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장면이 익숙하게 여겨지는가, 아니면 낯설게 여겨지는가. 기사의 내용은 이러하다. 군대에 갔던 어느 사병이 휴가를 나와서 보니 공사판에 다니던 아버지는 다쳐서 쓰러져 있고, 여덟이나 되는 식구들은 굶고 있다. 휴가병 아들은 식구를 돌본다고 정신없이 막벌이를 하였다. 휴가가 끝나도 차마 군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탈영병이 되었다. 군인이 탈영하는 죄는 크다. 탈영은 군대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이므로 엄한 군율로 다스리게 되어 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자수시키고 당국에 눈물로 잘못을 빌었다. 1971년 4월 3일 자 경향신문에 난 기사이다. 신문은 기사의 제목을 ‘모정(母情) 앞에서 군율(軍律)도 주춤’으로 붙였다. 어머니의 딜레마가 참으로 소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국가라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받들면서도, 아들의 장래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아픈 모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요즘 어머니들은 어떠할까. 탈영이란 죄가 워낙 엄중하고, 자식의 과중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 자수를 권하고 선처를 호소하는 엄마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국에 눈물로 잘못을 비는 엄마는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그만큼 세태가 달라졌다고나 할까. 사람들이 자기중심으로 깨어 있다고나 할까. 아마도 아들의 탈영을 과오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저항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라가 이런 곤경의 아들을 군대로 불러들이는 것이 잘못이라고 항변할 엄마들도 있을 것이다.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탈영’이라고 중형을 매기는 것은 군율 자체의 문제이다. 내 자식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된 데에는 국가나 사회의 책임이 크지 내 아들은 잘못이 없다. 이런 생각들이 돌출되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시대에 따라 인식이 다를 수 있으므로.
그러나 다음의 경우들은 좀 문제가 있다. 요즘에는 대학의 교무처로도 엄마들의 전화가 온다. 이번 학기말 시험에 우리 아들이 시험을 잘 보았다는데, 왜 A학점을 주지 않았느냐.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진다. 자식의 수강신청을 엄마가 직접 챙겨서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강의실에 들어와 있는 엄마도 있다.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올 수 없어서 대리로 출석하러 왔다는 것이다. 각종 시험을 보고 나면 과목별로 몇 개를 맞고 틀렸는지를 일일이 챙겨가며 아이를 닦달하는 엄마들은 보기보다 많다. 엄마들 모임에는 학교 내외의 각종 교육프로그램에 대해서 교사보다 더 정통한 엄마들의 이른바 자녀교육 성공담이 좌중을 압도한다.
그뿐이 아니다. 아들이 훈련소에 입대하면 훈련소 인근에 방을 잡아 놓고 아들이 훈련이 끝날 때까지 사는 엄마도 있다고 한다. 육군 훈련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소대장들이 개설해 놓은 카카오톡 방에서는 훈련병 아들이 쓰던 화장품 종류를 알려주며 돈을 보낼 테니 사서 전해 줄 수 없겠느냐는 엄마들의 민원이 등장한다고 한다(조선일보 2014-12-4). 참으로 독한 부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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