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작지 않은 ‘현천고’ 아이들

2015.05.01 09:00:00

스스로 학교를 뛰쳐나갔던 녀석들이 ‘학교를 다녀보고 싶다’며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기존의 학교에서 느끼지 못했던 ‘재미’에 빠져 24시간이 모자라단다. 도대체 현천고등학교에는 어떤 비법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강원도 첫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 현천고등학교를 찾아갔다.

“어떤 아이들이 현천고를 선택했나요?”
너무 궁금했다. 대학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은 고등학교 교육과정 운영이 어디까지 가능할 수 있을까…. 아니 의심에 가까웠다. 그런 학교를 본 적이 없었기에.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 아직은 전국에 몇 안 되는 공립 대안학교인 강원도 현천고등학교를 왜, 무엇 때문에, 어떤 학생들과 학부모가 선택을 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우문현답, ‘대학이 목표라면 입학하지 마라’
교사들의 신중한 답변이 돌아왔다. “대학 입학을 결정했고, 높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면 입학하지 않는 게 좋겠죠.” 하지만 박경화 교장의 답변은 단호했다. “입학설명회에서도 밝혔지만, 우리 학교의 목표는 대학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의지로 진로를 찾고, 결정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지요.”
박 교장은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결정하기 위한 키워드’로 ‘제대로 된 기다림’을 꼽았다. 기다림이면 기다림이지 제대로 된 기다림은 뭘까? 박 교장은 “마지막 한 명까지 ‘앎과 삶이 하나 되는’ 자신의 진로를 찾을 때까지 도와주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수께끼가 풀렸다. “학교를 다시 다녀볼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있어요. 학교도 선생님도”라며 짧고 굵은 답변을 하고 돌아서던 학생들의 말뜻이.

‘24시간이 모자란’ 각양각색 46명 전교생의 좌충우돌 학교생활
중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일으키고 소년원, 위스쿨을 전전하면서 고교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는 박 모(16) 군. 친구는 없고 경쟁과 상처만 주는 입시교육이 싫어 고교를 자퇴했다는 최 모(19) 양. 작가가 되고 싶지만, 인문계고교에서는 진로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을 거 같아 현천고를 선택했다는 김 모(16) 양 등…. 피해자와 가해자, 공부를 잘하고 좋아하는 학생, 16살부터 19살까지 나이도 성격도 제각각인 학생 46명이 현천고로 모여들었다.

이제 개교한 지 두 달째.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인 현천고 아이들은 24시간 함께 먹고 자고 부대낀다. 문제는 없을까? 현천고 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교실에서 온 종일 함께 울고 웃으며,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숙사 생활이라는 것이 교사들도 학생들도 힘들 때가 많아요. 생각이 다르니 의견도 일치하지 않고, 항상 문제투성이죠. 하지만 문제가 터지면 언제나 토론과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요. 다름과 갈등을 인정하면서 교사들도 배우는 것이지요. ‘함께 성장해 가는 것’, 그게 바로 교육 아니겠어요?”

현천고의 현재를 ‘민낯’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달매듭’ 행사
학생들 역시 초·중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한, 뭔가 ‘다른’,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었다. 현천고는 기존 교과수업만이 아니라 ‘달매듭’ 행사나 ‘나들(나와 우리들) 회의’ 등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연극·독서·밴드·힙합 등 3~4명이 모여 스스로 만드는 동아리나 기숙사 자치회의 같은 ‘잠재적 교육과정’에 공을 들인다. 학생들 역시 아직까지는 ‘재미있다’라고 밖에 표현할 줄 모르지만, ‘긍정적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특히 현천고 교사 14명과 46명의 전교생이 함께 만들어내는 ‘달매듭’ 행사는 ‘재미’의 정점을 찍는다. 교사 또는 친구들에게 쓴 편지를 읽는 학생, 자작시를 낭송하는 학생, 노래와 유머 등 끼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학생들까지 3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달매듭’ 행사는 현천고의 현재를 ‘민낯’ 그대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윈윈’ 전략으로 상생을 꿈꾸는 현천고의 미래
현천고는 지난 4월 말 비로소 안정된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학교 공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개교 후 두 달간은 강원도학생교육원에서 임시로 생활했다. 박 교장은 “우리 학교의 교육목표를 가장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꿈 넘어 꿈’이라는 ‘인턴십직업체험(LTI:Learning Through Internship)’ 과정입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싶은 직업과 그 분야의 멘토를 직접 선택하고,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운영될 예정이죠”라며 “이제 학교도 완공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학교가 위치한 횡성 둔내 지역은 노인인구가 많아서 학생들이 삶의 지혜를 배우고, 독거노인을 돕는 등 지역사회와 함께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삶의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 46명의 아이들을 믿음으로 기다리며,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나눔과 배움의 행복을 찾아가는 아이들 속에서 ‘함께 성장해 나간다’고 말하는 현천고 14명의 교사들. 작은 학교가 많은 강원도 공교육의 롤모델을 만들어 보겠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제대로 된 기다림’이 반드시 성공하기를 ‘편견 없이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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