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시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아이와 5학년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입니다. 예전 양정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 가까웠던 선생님들께서 목동으로 이사를 오는 것이 여러 모로 좋겠다며 제안을 할 때마다 망설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현재 살고 있는 김포시 고촌에는 단지 내에 야트막하지만 산도 있고 제법 자연 속의 운치를 더해 주는 곳이기에 아이들이 성장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걱정되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안사람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듣다보면 정말 이렇게 시골풍 도시에서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노는 것이 훗날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도 모든 아이들이 학원에 가고 나면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어 놀다가 놀다 심심해지면 집에 들어와 엄마와 놀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안사람 주변 지인들의 걱정도 이만저만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거실에 소파와 TV두지 않기
그래도 저희 부부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지켰던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집 거실에 소파와 TV를 두지 않기였습니다. 대신 베란다 창문 쪽을 제외한 나머지 벽면에는 커다란 책장을 두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기어 다닐 때는 기어 다니는 눈높이에 아이들의 책을 꽂아두었습니다. 이제는 녀석들이 제법 훌쩍 커버려서 아래서부터 제 허리 높이 정도까지는 아이들의 책들로 빼곡히 꽂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학업성취도 관점에서 보면 정말 심히 걱정됩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걱정 어린 목소리로 전화를 했답니다. 학급에서 한글을 제대로 못 읽는 아이가 딱 두 명뿐이라고 했다며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알면 된다.”
초3까지 한글 못 읽은 아이, 그리고 우리 딸
아내의 눈썰미가 시큰둥해졌습니다. 그래서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2012년 고3 담임시절 학기 초 학부모 설명회를 마치고 학급교실에서 담임 학급의 어머님들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아이들 너무 공부 하라고 부담 주지 마세요.”라고 했더니 바로 반응이 나옵니다. “아이구~! 선생님, 선생님 아이라면 그렇게 하시기 어렵지요~”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저희 꼬맹이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딸아이네 학교에서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몇 명 없었는데, 그 가운데 한 아이가 제 딸이었다고 말씀을 드리곤 어머님들과 한바탕 웃고 말았습니다.
짧은 시간을 마치고 돌아서시는 어머님 가운데 두 분께서 살짝 제게 다가와서는 “선생님, 실은 우리 ○○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글도 제대로 못 읽었어요.” 다른 한 분도 비슷한 사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학생은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대학 경영학과에 합격했고, 다른 학생도 언론 관련 학과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한 학생들의 어머니였습니다.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정직한 기다림. 평생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저는 아이들의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지쳐 쓰러질 정도로 놀아보는 삶. 그것이 훗날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밑천이 되지 않을까요? 요즘 이런 저런 일로 마음고생이 큽니다. 늦은 밤 귀가해서 아이들 방에 들어가 봅니다. 침대에서 횡으로 누워 자는 아들 녀석의 허벅지가 제법 튼실해 보이더군요. 딸 방에 들어가 보니 두 손을 곱게 만세 부르며 새근새근 잠들어 있습니다. 인기척에 눈 비비며 자다 말고 나오는 아내가 잠긴 목소리로 지친 육신을 반깁니다.
삶은 여전히 깨어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