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호소합니다. 선배는 그저 무섭고, 어렵고, 불편한 존재로 여겨진다고. 만만한 게 후배인지라 괜히 지나가는 후배를 붙잡아 꼬투리 잡고 시비 건다고 합니다. 교내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도, 동문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상황은 아이돌 가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누가 선배인가를 따지기 위해 나이를 묻습니다. “그럼 내가 한 살 더 많네, 으흠.” 한 명이 갑자기 무게를 잡고 상대방을 하대합니다. “아, 예.” 상대방은 예의를 갖추고 머리 숙여 깍듯이 인사를 올립니다. “그런데요, 제가 일 년 먼저 데뷔했는데….” 나이로 밀리자 연륜을 따집니다. “어…. 데뷔 선배님이시군요.” 갑자기 관계가 역전되고 곧바로 존댓말이 튀어나옵니다.
‘군기’ 잡는 선배 … 무섭고, 어렵고, 불편한 존재
참으로 웃기는 모습입니다. 아니, 가수가 굳이 따진다면 누가 더 노래를 잘하는가를 따져야지 무슨 나이나 데뷔연도를 따집니까. 그런데도 나이, 학년, 입대, 입사 등 연도를 따지고, 연배를 따지고, 기수를 따집니다. 이 때문에 우습지 않은 상황도 발생합니다. “군기를 잡겠다”며 군기반장을 자처하는 선배가 등장하면서 눈꼴사나운 폭언과 폭행 사고도 발생합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갑질을 호소합니다. 이건 연예인들만이 아니라 선후배를 따지는 우리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왜 그럴까요. 선후배를 따지지 않게 하는 법이라도 생겨야 할까요. 이유는 존칭어 구조에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서로 연배가 높고 낮음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대화하기가 수월해집니다. 그래서 초현대 문화를 추구하고,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아이돌 가수들마저 선후배를 따지는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서로 선후배 관계를 맺고, 그에 걸맞은 존칭어를 사용하는 것을 매우 좋게 생각합니다. 존칭어는 매우 자연스러운 언어체계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 수직적 인간관계의 양면성
가족관계가 더 큰 공동체로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비록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 형, 아우, 언니, 이모란 호칭을 폭넓게 사용합니다. ‘우리가 남이가’란 말이 있듯이 한국어의 ‘우리’는 단순한 집합체를 뜻하는 ‘We’가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하나의 대가족처럼 인식되고 작동하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법적 규제 없이도 사회적 위계질서와 공동체의 안정성이 확보되는 유익함이 있습니다. 아마 이 때문에 한국사회가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란 거대한 사회적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수직적 관계로 정리되면서 개인의 인권이 저하되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이상한 우월감이 발동되어 후배를 무작정 군림하려는 미성숙한 행동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한국의 핵심 문화가 그리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관계구조를 바꾸려고 하는 대신 관계방식을 개선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예를 갖추고 효를 다하는 것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희생적 보살핌과 하늘 같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후배 관계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후배가 선배에게 존대하고 예를 갖추기를 원한다면 후배에 대한 선배의 올바른 행실이 먼저입니다. 자고로 선배는 후배를 따뜻하게 배려해 주고 닮고 싶은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선배가 후배들에게 어떤 모범을 보일 것인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생활지도의 기본입니다. 그래야 선배가 차가운 눈총을 보내거나 윽박지르지 않아도 후배들이 잘 따를 것입니다. 그래야 선배가 편안하고 믿음직하고 고마운 존재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선후배 관계가 순리대로 흐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