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종합전형의 시작, 입학사정관제 그리고 교육이력철
학생부종합전형은 입학사정관전형으로부터 시작된다. 입학사정관전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 시작은 2005년 교육혁신위원회에 닿아 있다. 위원회는 ‘2008 대입시 개선안’을 만들면서 교육개혁 핵심 정책으로 ‘교육이력철’과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제시한다. 교육이력철은 수능 중심의 대입전형 선발을 탈피하기 위해 제시된 핵심 전형자료였으며, 교사가 관찰하고 파악한 ‘학생 성장을 담은 기록물’의 개념이었다. 문제는 당시 이런 교육이력철 기록을 정성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대입전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원회는 대학이 교육이력철 기록을 전문적으로 사정할 수 있도록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다. 즉, 교육이력철과 입학사정관제는 중등교육 개선과 대학입시전형이 밀접하게 연관된 정책이었다. 그러나 교육이력철은 많은 반대에 직면하여 진행되지 못했고, 입학사정관제만이 시범 도입 정도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입학사정관제를 정규 대입전형으로 도입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주요 대학 중심으로 전형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심지어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 대입전형을 100% 입학사정관제로 시행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입학사정관제를 반대하던 이들은 “입학사정관제의 급격한 확대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던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로 서열화된 상위권 고교의 내신 불리함을 해소하려는 조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특목고 특혜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특히 더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교육이력철이 없는 입학사정관제의 도입,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시기의 입학사정관제는 학교와 학생에게 일부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하면서 대입전형에 연착륙을 시도했다. 이때 의미가 있었던 입학사정관전형의 장점을 세 가지로 살펴본다.
입학사정관전형의 세 가지 장점
첫 번째 장점은 당시까지 객관성과 공정성만을 중시했던 대입전형에 다양한 평가 방식을 접목시킨 것이다. 입학사정관제 도입으로 전국의 학생을 수능, 그것도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급까지 사용해서 한 줄로 세워 대학에 보내야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오랜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내신 점수가 떨어져도 다른 비교과활동을 통해 더 적격자로 평가되면 선발이 되는 정성적인 평가가 시행되었는데 이는 놀라운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둘째는 비교과활동이 중시됨으로 학교의 다양한 활동이 살아났다는 점이다. 독서·봉사·리더십?체험·동아리활동은 당시까지 고등학생에게는 금지된 활동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비교과활동을 열심히 하는 학생은 대학을 포기한 학생이거나 모든 것을 잘하는 슈퍼맨 같은 극소수의 학생이었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전형 도입으로 이 다양한 활동의 의미가 살아났다. 학생회장이 되고 싶다는 학생은 공약을 내걸고 선거운동을 벌였다. 예전에는 진로 고민을 하면 일단 수능부터 잘 보라고 얘기했지만, 입학사정관전형 도입으로 학교에서 적극적인 진로체험활동이 강조되었다. 이를 통해 많은 학생이 적성과 소질에 따른 진로를 결정할 수 있었고, 구체적인 꿈을 갖고 진학하는 학생도 훨씬 늘어났다.
셋째는 미약했지만 수업과 평가의 혁신이 가능하게 되었다. 당시까지는 다양한 수업 방식과 논술평가를 하는 교사를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오로지 수능을 대비한 일제식 설명 수업을 잘하는 교사만이 유능하다고 인정받았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전형의 도입으로 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별 특징란에 ‘뭔가를’ 메꿔 넣어야 했다. 특히 다양한 수업과 좋은 평가를 하는 교사는 그 과정을 통해 학생의 교과별 특징을 세밀하게 살필 수 있었고, 이를 학교생활기록부에 담았다. 교과성적보다 교육활동이 중시되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세 가지 장점과 낮은 선발 비율로 입학사정관전형은 큰 무리 없이 교사·학생·학부모에게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입학사정관전형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급격히 확대 개편되면서 생겨났다. 취지는 좋았으나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중등교육의 개선 없이 비교과 영역만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비교과를 중시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의 세 가지 단점
첫 번째 단점은 특목고와 자사고가 학생부종합전형에 눈을 돌리면서 비교과 영역 강조가 전형의 공정성을 해치는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앞서 학생부종합전형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넘어 타당성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했는데, 비교과 영역을 지나치게 중시함으로써 오히려 공정성 논란에 불을 지피는 상황으로 변질되고 말았던 것이다. 또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되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수능이나 논술전형에 주력하던 특목고와 자사고가 적극적으로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면서 전반적인 비교과 활동의 질과 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교과 영역이 학교의 여건, 학생의 경제적 능력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비교과의 과도한 경쟁을 막고자 학교 내 활동으로 제한했지만, 그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학교 간 차이도 문제지만 더 직접적인 관건은 어떤 담임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는 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학생도 불성실한 담임교사를 만나면 학생부를 채울 방법이 없다. 반면에 학생 활동을 잘 조직하고 기록에 뛰어난 교사는 학생의 활동을 잘 포장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매우 유리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둘째, 본질적인 교과 영역 개선 즉, 수업과 평가와 기록의 개선에 대해 학생부종합전형은 태생적인 한계를 보인다. 교육이력철과 분리된 상태에서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는 바람에 정작 학생의 학습능력을 평가할 내용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또 비교과 활동을 강조한 것이 초반에는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이 살아나는 장점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모든 것이 스펙으로 변질되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밖에 하지 않는 고등학생이 언제 그 많은 활동을 다 하겠는가? 학생은 다방면에서 슈퍼맨이 되기를 강요받고, 고통은 가중되었다. 비교과 영역은 물론 교과 영역까지 모두 준비해야 하는 교사와 학생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셋째, 이 전형의 드러나지 않는 심각한 문제는 학생과 교사를 위선자로 만드는 것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초·중·고 12년 동안 배움의 시간을 보내고 그 결실로 대학에 진학하여 마음껏 학문 탐구와 다양한 자아실현 기회를 얻어야 할 학생들이 합격을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 것이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의미도 모르고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활동에 이것저것 의미를 부여하고, 면접에서 물어볼까봐 자신의 활동을 외우고 있는 학생들. 그런 학생을 잘 포장해주면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는 역기능이 교육현장 곳곳에서 발생했다.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모습은 없고, 만들어준 각본대로 면접을 치르며 진학하고, 그마저도 기회가 없어 낙방의 고배를 마셨던 학생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말도 안 되는 인재상을 강요하는 촌극이 교육현장 곳곳에서 벌어졌다.
학생부종합전형전형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은 갈림길에 섰다. 도입 초기의 신선한 충격과 이에 따른 학교·학생의 변화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교과 영역의 강조로 인한 불공정성과 학생?교사의 어려움만 커졌다. 학생부종합전형에 지친 이들이 수능 100%, 아니면 예전의 학력고사로 돌아가자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의 전인적 능력이 공정하게 평가되고 대학의 특성이 반영된 학생이 선발된다면 학생부종합전형은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