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만난 ‘소통의 신사’

2016.08.0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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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소셜미디어(social media)의 시대이다. 미디어 환경에 그다지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나도 페이스북을 즐겨 사용해 온 지가 여러 해를 넘겼다. 그런데 사용해 볼수록 이런 소셜미디어에서 모두에게 유익하고 반듯한 발신자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자칫하면 욕이나 하기 쉽고, 내 편견을 강변하기 쉽고, 내 입지만 생각하는 바람에 누군가를 배려하지 못하게 되고, 정파적 감정에 휩쓸려 반대파를 심하게 증오하고, 흥분하여 내 감정을 배설해 버리기 쉽고, 쓸데없는 말로 평지풍파를 일으키기 쉽고….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소셜미디어에서 사적 영역 못지않게 공적 영역이 점점 더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면, ‘반듯한 발신자’ 되기가 정말 쉽지 않음을 실감한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내가 두텁게 신뢰하는 J 교수가 ‘공유하기’로 올려놓은 글 하나를 발견했다. 평소 J 교수가 ‘공유하기’로 올려놓은 글은 빠트리지 않고 읽는다. 그날도 그러했다. 나는 원래 글을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를 미처 확인하지도 않고, 문제의 글을 읽었다. 나는 읽으면서 긴장했다. 그 누군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이었다. 그 누군가는 아마도 그 세계에서는 잘 알려진 유명 강사인 것 같았다. 아니 소셜미디어에서 누군가를 이렇듯 공개적으로 비난하면 명예훼손으로 고발 당하고도 남는데, 어쩌자는 건가. 문제의 글은 다음과 같다.

명망 있는 분들이 크고 작은 스캔들로 한 방에 날아간다. 무서운 세상이다. 그러나 외부 사건으로 한 방에 끝장나는 것 못지않게 무서운 건, 사람의 내면이 소리 없이 변하는 거다. 좀 유명해지고 나면 눈빛과 목소리부터 달라진다. 우월감으로 살짝 흔들리는 눈빛, 들뜬 톤으로 내뱉는 단정적인 메시지, 겸손과 위악이 섞인 시니컬한 농담…. 메시지는 여전히 겸손하기 이를 데 없지만, 눈빛과 목소리에서 드러나는 은근한 자신감은 숨길 수 없다. 청중은 누구나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확신으로 마이크를 쉽게 놓지 않는 것도 이런 분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아주 한정된 분야에서 조금 이름을 알린 사람이 최근 기독법률가회에서 강연을 했다. 신앙색깔의 변화, 근본주의 신앙의 한계, 기독변호사들의 과도한 사명감 등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저들처럼 부패한 법조인이 되지 않아 감사하다는 식의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하고 있지 않으냐?”는 그의 지적은 귀 기울일 만했다. 그러나 녹음된 강연을 듣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아, 이 사람도 변했구나’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약간 들뜬 목소리, 시니컬한 농담, 은근한 자신감 등…. 조금 유명해진 후 누구나 겪는 덫을 피해가지 못한 거다. 녹음파일 속의 비교적 젊은 청중들은 적절히 박수치고 탄식하며 강사에게 공감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한때 좋아했던 분이라 무척 씁쓸했다. 나중에 기독법률가회 소식지에서 젊은 변호사 한 분과 로스쿨 학생 한 분이 올린 후기를 읽었다. 솔직한 내면을 나눠준 강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내용이었다. 하긴 가롯 유다가 와서 강연을 해도 적절히 공감하며 그런 후기를 올릴 착한 분들이니….

그의 변화를 감지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가 동료들과의 식사자리 등에서 자신이 만난 유명인들의 뒷이야기를 슬쩍슬쩍 흘리기 시작한 지는 꽤 됐다. 실제로 유명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돌아서면 늘 뭔가가 찜찜했다. 콕 집어 지적하기는 어려운, 그의 미세한 변화 때문이었다. 이번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억지로라도 녹음파일을 듣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늘 형식이 아니라 본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형식도 본질의 일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때로는 눈빛과 목소리가 내용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분이 올린 글은 여기서 끝을 맺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 글을 쓴 분은 누구이고, 기독법률가회에서 강연을 한 그 사람은 누구일까. 그 분야에서는 알려진 사람이라는데, 누구일까. 이렇게 독한 비판을 받고, 가만히 있을까. 더구나 이 비판은 좀 주관적이지 않은가. 마치 상대의 감정 내면세계까지 들어 와 본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누구를 이렇듯 쥐 잡듯이 털어서 공격하고 있는가. 그러나 나의 궁금증은 이내 해소되었다. 그분이 올린 글의 끝 대목에 두 줄의 추신이 있었다. 거기에는 글쓴이가 비난한 강사가 누구인지 적혀 있었다.

P.S. 아 참…. 강연 제목은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법조계의 현실”이었고, 강사는 김두식이었다. 그는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고, 몇 권의 책을 썼다.

순간 나는 놀랐다. 아니! 자기가 비난한 사람을 이렇게 공공연하게 공개해도 된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나는 딱히 집어낼 수는 없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찾아보았다. 이 글을 작성하여 최초에 페이스북에 올린 원래의 글쓴이(이 글을 페이스북에 소개한 J 교수 말고)를 확인해 보았다. 그렇다! 그러니까 말이 되지! 최초의 글쓴이, 그는 바로 김두식 교수 자신이었다. 자기가 자기를 이렇듯 준엄하게 비판한 것이었다. 이 짧은 글에 이런 기막힌 반전이 숨어 있다니! 김두식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이 메시지에는 끝도 없이 줄을 이은 댓글들로 각자의 감동과 공감과 신뢰와 자기 다짐들을 이 글만큼이나 진지하게 고백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중의 하나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 글을 ‘공유하기’로 전파한 수많은 소통의 흔적들이 나타나 있었다. 기꺼이 ‘공유하기’를 눌러서 나의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이 글을 전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박인기 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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