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으로 포장된 인격의 가면

2016.12.01 00:00:01

한국은 선물보다 포장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이는 선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들어있다’는 말처럼 핵심인 내용은 사라지고,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옷이나 액세서리는 개인의 취향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신경을 쓴다. 자동차 역시 탑승자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지만, 남들에게 보여주는 과시용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배우형 삶은 대인관계에서 오해와 편견을 낳는다
우리 속담에 ‘배보다 배꼽이 크다’라는 말이 있다. 내용의 핵심보다는 겉치레가 큰 것을 의미한다. 이는 물건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주변을 돌아보면 연기자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아닌 남을 연기하는 것을 예민하게 의식하지 않고 사는 이들은, 어쩌면 이미 병적인 배우형 삶에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배우는 무대에 설 때만 배우다. 그들은 무대에 서는 순간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배역에만 충실한다. 몰입하지 않으면 그 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도 몸이 아픈 날에는 연기를 한다. 하루를 쉬기 위해 병세를 부풀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강단에 섰을 때 아프지 않은 척 연기한다는 뜻이다. 배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자리에서만큼은 대본을 읽는 배우처럼 리얼한 연기를 펼친다.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배우라도 무대에서 내려오면 일상을 살아야 한다. 그런 간단한 사실을 모르고 대인관계를 연출하면 오해와 편견이 생긴다.


인성의 기준은 ‘변함없는 진실성’
히스트리오닉(histrionic)은 라틴어의 히스토리오(historio)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는 연기(演技)를 의미한다. 배우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대중의 인기몰이를 해야 하며, 스타처럼 행동하고,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기 위한 생활 방식을 갖고 있다.


인성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변함없는 진실성’이다. 흔히 말하는 연극형 사람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공격적으로 대인관계를 맺는다. 사람을 조종하고, 본인이 돋보이려고 실적을 가로채며, 때로는 매혹적인 속임수를 쓴다. 이런 사람들의 내면에는 대체로 뻥 뚫린 듯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이며, 모든 것을 상품과 수단으로 생각한 탓이다. 이런 비인격적인 인성을 학계에서는 ‘다중’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정치를 예로 들면 보수적인 행동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 진보로 돌변하고, 당리당략이나 이기주의에 빠져 철새처럼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진폐와 위폐처럼 구분되는 인성
미술 시간에 돈을 똑같이 그렸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림에 불과했다. 아무리 잘 그린 지폐도 ‘돈처럼’ 잘 그렸다고 하지 ‘돈’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돈하고 똑같이 그렸지만 진짜 돈은 아니라는 것이다. 컬러복사기의 발달은 진짜 돈처럼 생긴 종이를 복사기로 찍어내는 세상을 만들었다. 이제는 진폐와 위폐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그러나 이 역시 위폐는 위폐이다. 잠시 동안은 사람들을 속이지만, 위폐임이 드러나는 순간이 돌아온다. 이처럼 사람의 됨됨이 역시 진폐와 위폐를 구분하는 것처럼 식별할 수 있다. 형광 불빛에 비춰보듯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민낯을 보이기 마련이다.


됨됨이를 판단할 때 사람들은 복잡한 기준을 제시한다. 그런데 판단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다. 더 양보하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다. 서로의 이해관계나 손익을 따지지 않는 순수한 친목 도모인 경우는 위조지폐처럼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이익을 분배하는 갈등 구조가 없기에 인간의 본성을 드러낼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갈등의 불씨가 터졌을 때 상황이 180도로 달라지는 이유는 관계에 욕심이 개입했을 때이다. 사람의 됨됨이는 작은 생활습관을 통해서 구별할 수 있다. 청렴결백한 성직자·교사·부자라도 본능적인 욕구 앞에서는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기 때문에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합리적 생존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인성
‘무녀리’라는 말이 있다. 소와 개는 한 번에 6~8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무녀리는 동기 중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나온 새끼를 가리킨다. 자연 생태계에서 무녀리의 생존율은 높지 않다. 동기들보다 덩치가 작기 때문이다. 젖을 먹는 싸움에서 쉽게 밀리다 보니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도태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세계는 다르다. 젖을 먹지 못하는 무녀리를 좋은 자리에 옮겨놓으면 성장 여건이 달라진다. 이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강자독식의 생존싸움을 거부하고, 함께 살아남는 합리적인 생존 경쟁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돈을 대하는 모습이다. 채무를 매개로 한 유대관계는 한배를 탄 선원들처럼 두텁지만 언제나 빚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곳에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환대가 머무르지 않는다. 돈으로 인격이 만들어진 사람은 돈이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며 물질만능에 빠진다. 그 순간 결국 인성은 사라지고 돈이 인성으로 둔갑하고 만다.


마지막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사랑의 가치는 강한 이념·생각·사상을 중단시키고 약한 것을 해방시킨다. 위에서 언급한 식탐과 돈에 앞선다. 사랑을 담론으로만 이야기하지 않고, 현재의 시간과 공간으로 불러와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다움이 깃든 얼굴
사람은 바른 인성에서 위안을 얻는다. 인성이 잘못 만들어지면 타인의 인정을 바라며 갈증을 호소한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선과 악, 흑과 백으로 구분한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변하며, 단조롭고, 피상적이고, 과장되고, 비주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런 성격은 공격적인 감정을 자주 내비치고, 심하면 절망적인 우울로 이어진다. 여전히 바뀌지 않는 연극 사회에서 자신의 민낯을 꾸미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믿는 이들은 가정에서 만나는 부모와 형제에게,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직장에서 만나는 상사에게 그리고 거리에서 만나는 불특정한 다수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치장한다. 이러한 치장은 사회가 강요하는 이념의 규칙에 의해 올바르게 살아가는 개인을 부정한다. ‘사람다움’은 언급되지 않고, 사람다운 이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는 배제된다. ‘인성’이라는 것을 마치 감옥에 유폐시킨 것 같다.


어떠한 의미에서 유폐는 웃음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타인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집착을 통해서만,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지 않는가. 인성의 참된 의미는 ‘사람다움’을 지금 내 얼굴에 깃들게 한다는 데에 있다. ‘나는 가면을 쓰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님’을 기억하는 일은 중요하다. 인성은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데에서 나오는 ‘해방’이다. 매사에 감사하는 얼굴,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얼굴, 가볍게 스친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얼굴이 우리 사회에 행복한 웃음을 불러오리라 믿는다. 

최원호 한영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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