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고, 과학고 출신자 의대 진학 통제 방침 재고돼야

2016.12.17 23:04:00

억지로 의대 못 가게 하는 교육통제아니라, 스스로 이공계대에 가도록 하는 교육 시스템 혁신 전제돼야

교육부가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영재고와 과학고 학생들이 졸업 후 의과대 학으로 진학하는 것을 막기로 방침을 정했다. 교육부는 영재고, 과학고 설립 취지를 바로 세우는 차원이라는 주장이지만, 향후 큰 논란이 야기될 우려가 농후하다. 이번 교육부의 방침은 2018학년도 신입생 모집 때 적용될 전망이다.

현재 전국에 영재고 8개교, 과학고 20개교 등 총 28개교가 있다. 영재고와 과학고는 둘 다 우수한 이공계 인력 양성이 목표지만, 과학고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설립된 특수목적고(특목고)이고, 영재고는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설립된 특수고다. 영재고는 영재 발굴과 영재 교육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중학생이면 학년에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교육과정도 과학고보다 더 자유롭게 운영된다.

교육부는 앞으로 전국의 영재고와 과학고의 신입생 입학 요강에 '과학고·영재고는 의대 진학에 부적합한 학교'라는 점을 명시하도록 하고, 각 학교가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에 대한 자체 제재 방안을 마련하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단위 학교에서 자체적 제재 방안으로 의대에 진학할 경우 고교에서 받은 장학금·지원금 회수, 의대 입학 시 학교장 추천서 미발급, 입학 당시 의대에 안 간다는 서약서 쓰기 등을 제시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과학고와 영재고는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정부 예산을 투입해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데, 의대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어 논란이 많다고 보고 이 같은 방침을 정했다. 지금까지는 각 학교에 의대 진학 학생이 나오지 않도록 협조를 요청해왔지만, 사정이 나아지지 않아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사실 영재고와 과학고 학생들의 의대 진학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과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 영재고 졸업생 총 1829명 가운데 8%(154명)가 의학 계열 대학에 진학했다. 과학고는 이 같은 기간 전체 졸업생의 약 3%가 의대에 진학했다. 특히 2009년 과학고에서 영재고로 전환한 서울과학고는 지난해 졸업생 중 약 20%가 의대에 갔다. 영재고인 경기과학고와 대구과학고는 작년 졸업생의 10%가 의학 계열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2017학년도 서울대의 특목고 출신자 합격자 비율이 작년 21.5%서 올해 24.6%로 늘었고, 서울 지역 특목고 합격자는 36.8%로 나타났다.

과학고와 영재고에는 일반고 예산의 2~4배가 지원된다. 아울러 각종 특혜를 주어 이공계 영재를 육성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입학할 때는 과학자가 되겠다고 영재고나 과학고에 오지만, 2~3학년이 되면 학부모들이 의대를 원해 진로를 바꾸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전에도 일부 학교에서는 자체적으로 '의대 진학'을 막는 적극적인 방법을 써왔다. 즉 학교에 따라 고교 입학 시 학생과 학부모에게 '의·약학 계열 등 이공 계열 외의 대학에 지원하는 경우에 페널티를 감수한다는 서약서를 쓰도록 학칙을 개정했다. 또 졸업 시 포상에서 제외하고, 학교 예산으로 지원된 모든 비용을 회수한다는 내용 등도 추가했다. 의대 진학 시 장학금과 교육비 등 환수 조치도 강행한 학교도 있다.

하지만, 이번 교육부의 영재고, 과학고 출신자의 의대 진학 통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심각하게 재고돼야 한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교육부가 영재고, 과학고 출신들의 의대 진학을 막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할 우려가 있다. 즉 실제 이 방침이 실행되면 학생·학부모들이 행정심판, 위헌심판 등을 제기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특히 현재까지 아무런 제재(制裁)를 않던 교육부가 갑자기 이런 방침을 강행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아울러, 가정 형편, 진로 희망이 바뀔 수도 있고 의대에 진학하더라도 얼마든지 과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데, 의대 진학을 통제하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 왜 특히 의대만 못가게 하느냐는 이의도 제기될 수 있다.

둘째, 우리는 이번 교육부의 영재고, 과학고 출신자의 의대 진학 통제 방침 발표에 즈음해 우리 교육 체제에 대한 숲과 나무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 무조건 장학금, 교육비를 일반 고교에 비해 4~5배 더 지원했으니 졸업 후 반드시 의무적으로 이공계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행정편의주의가 아니라, 영재고, 과학고 졸업자들이 스스로 이공계 대학에 진학해 일생을 불사르도록 교육적 유인책과 체제(system)를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더 좋은 대학 진학, 방향이 있어도 ‘나는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자존감과 자아효능감을 심어주도록 한국 교육 시스템을 혁신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한 교육 시스템 혁신이 이뤄지면, 노벨과학상 상도 앞당겨지고 영재고, 과학고 출신자들이 이공계 대학이 스스로 진학하여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책무를 다할 것이다. 환언하면, 영재고, 과학고 출신자들이 억지로 의대 진학을 못하도록 강제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공계 대학에 진학토록 교육 체제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셋째, 이번 교육부의 방침 발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중요한 교육 방침 개혁에는 장기간에 걸친 국민 여론 수렴이 전제돼야 한다. 즉 공청회, 포럼, 세미나 등 핵심 주제에 대한 전문가, 학생, 학부모, 교원 등을 포함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가장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의사결정의 기본 방침인데, 이를 외면하고 어느 날 갑자기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는 권위주의적 행정의 표본으로 국민적 공감을 얻기가 어려운 일 처리다.

끝으로 차제에 영재고, 과학고 등 특목고의 체제(體制) 혁신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조기 졸업제도도 손봐야 하고, 예산 지원, 교육과정 운영 등도 분석해야 할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이들 고교들이 교육과정 자율화라는 명목으로 일부 교과목, 영역의 교육과정 편중을 한다는 얘기라 돌고 있다. 이와 같은 인프라와 체제 혁신이 전제된 후에 영재고, 과학고 출신들이 스스로 이공계 대학에 진학토록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 오늘날 교육부와 교육청의 역할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영재고, 과학고 출신자의 의대 진학 통제를 교육부가 지침을 마련하는 것도 진일보한 것이지만, 법령으로 의대 진학 시 제재할 수 있도록 상위법령으로 법령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결국 교육부의 영재고, 과학 출신자의 의대 진학 통제 방침은 총론적으로는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겠지만, 각론적이 세부 사항으로 들어가면, 시행 시기와 방법상의 문제를 재고해야 한다.

아울러, 장기간의 국민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친 후, 국민이 납득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준 후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억지로 의대 못 가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 이공계 대학 가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말로는 교육의 ‘백년지대계’ 운운하면서 이와 같은 중요한 교육 체제 변경을 어느 날 갑자기 위에서 아래로 밀어붙이는 교육행정보다는 모두가 동의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집단지성으로 모색해야 할 때다. 진부한 얘기지만, 교육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교육행정은 교육의 한 꼭지다.
박은종 공주대 겸임교수 ejpark7@kong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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