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일기

2017.03.27 09:36:43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일을 만난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예고 없이 들이친다. 기쁨과 행복이 영원하지도 않다. 곧 슬픔과 불행이 밀려오고 이 상황 또한 다시 바뀐다.


나도 살아가면서 이런 경험을 자주 했다. 기뻤다가 슬펐다가, 그리고 행복한 순간이 있었고, 불행한 순간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영원하지 않았다. 크게 기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불행한 상황도 오히려 굳은살이 되듯 삶의 밑거름이 되기도 해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큰 불행을 만났다. 폐를 절제하는 상황을 만났다. 평생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닥친 일이다. 감기에도 주사 맞는 것이 무서워 병원 가기를 꺼리는데, 엄청나게 큰 병을 만났으니 충격이 컸다.


진단을 받고 스스로 담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극복의 길이 보일 듯했다. 수술 후 한 달 정도 쉬면되겠지. 의술이 좋다는데 별일 없겠지. 마음속으로 좋은 생각을 되뇌었다. 병가를 내기 위해 수업 교환을 했다. 수술 후 수업을 하는 것보다 전에 하는 것이 나을 듯해서 한 달 치를 다 했다.


수술이 힘들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중환자실에서 그리고 병실 생활이 만만치 않았다. 무통 주사약 부작용으로 두통이 심했다. 폐를 절제한 탓에 가슴 부위는 예리한 칼이 지나는 것처럼 아팠다. 기침도 끊이지 않았다. 몸무게는 날마다 줄었고, 얼굴은 핏기가 없어졌다. 수술 후 병원 생활이 불과 두 주였지만, 내 삶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


병원 규칙이 걸을 수 있으면 퇴원하는 것이란다. 워낙 기다리는 환자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할 수 없이 가슴을 움켜쥐며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도 모든 일상이 달라졌다. 달라진 것이 아니라 멈췄다. 몸무게가 줄어 든 만큼 생각도 쪼그라들었다. 생각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일어나서 밥을 먹고, 베란다를 쳐다보다가 하루를 마감했다. ‘내일 또 일어날 수 있겠지라는 기대를 갖고 자리에 누웠다.


다행히 가을 단풍이 무르익어 갈 때 제법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내의 기도가 컸다. 아내는 봄바람에 꽃잎 떨어져도 슬픈 눈망울을 보일 정도로 여리다. 그런데 남편의 몸에서 폐의 일부를 잘라냈다니 얼마나 울었을까. 울면서 매일 밤을 지새웠다.


몸을 회복하고 다시 치료를 서둘렀다. 암이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항암 치료는 더 무서웠다. 살기 위해서 치료를 시작했지만 점점 죽어가는 느낌이었다. 주사약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정신을 잃었다.


내가 남편이고, 아버지라는 사실에 아내와 녀석들은 흐느낌이 점점 커졌다. 가족들은 슬픔을 누르며 정성을 다했지만, 아픔의 몫은 온전히 내게만 맡겨졌다. 앉아 있는 것도 힘겨웠다. 이제 난 그들에게 어떤 즐거움도 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누워서도 가족 걱정이 무겁게 다가왔다. 이제 차라리 나를 사랑하는 감정을 끊어 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겨울이 오는지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무는 남은 잎 몇 개를 떨구지 않으려는 듯 제 몸에 꼭 붙들고 있다. 밤새워 내 신음 소리를 듣느냐 잠을 설쳤는지 아내가 앉은 채로 졸고 있다. 내 몸을 보니 손등은 주사 바늘 자국으로 온통 시퍼렇게 멍들었다. 몇 모금 마신 물도 이내 토했다. 머리카락은 매일 빠지고, 몸은 마른 장작이 됐다. 아내와 함께 두 아이를 낳고 기른 몸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송장 같은 몸이 됐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독한 약물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의사가 치료 중단을 선언했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서 오히려 몸이 회복됐다는 기분이 들었다. 약을 끊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다. 밥술이나 뜨자, 방사선 치료를 해야 했다. 이번에는 잘 견디나 했지만, 역시 몸에 이상이 왔다. 약한 몸에 방사선을 쏘이면서, 치료 부작용으로 폐렴이 왔다. 집에서 며칠 지내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 면역력이 극도로 약해져 무균실이라는 곳에서도 누워 있었다. 병원에서 주사액으로 버티다가 집으로 돌아와도 소용없었다. 밥 한술도 못 뜨는 힘으로 버티다가 기절을 해 새벽에 혹은 밤에 시도 때도 없이 응급실에 갔다.


겨울 모진 추위를 견디고 나무에 꽃이 피었다. 때를 맞춰 내 가슴에도 한 줄기 햇살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일어섰다. 희망을 갖는 것은 차별이 없었다. 몸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나도 희망을 품었다. 발이 땅에 닿아 있으니, 희망 없이 살아갈 수 없었다. 예전 같지 않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기는 힘이 생겼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걸었다. 나무가 희망의 잎을 키우듯, 날마다 나아지는 꿈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윤재열 경기 천천고 수석교사, 수필가 tyoon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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