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배워 어디에 쓰냐고? 추리소설 쓴다!

2017.06.16 13:56:42

윤자영 인천공항고 교사
생물 시간에 배운 지식 활용해 시·소설 쓰는 융합교육
딱딱했던 수업에 '이야기' 더하니 창의력·흥미·사제관계 UP
최근 제자들과 단편추리소설집 '해피엔드는 없다'도 펴내



“수업에 관심 없이 멍하게 있는 아이들을 보는 것만큼 괴로운 게 없죠.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글쓰기입니다. 생물 시간에 배운 내용을 시나 소설로 표현하는 조금 엉뚱한 과정이 호기심과 창의성,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줄 것 같았어요."
 
인천공항고에서 생물을 가르치는 윤자영 교사는 매주 학생들에게 수행평가 과제로 글쓰기를 낸다. 소재는 수업시간에 배운 과학지식이지만 주제나 표현방식엔 제한이 없다. 짤막한 시를 써도 되고, 나름 진지한 소설도 좋고, 자신의 일상과 연결한 일기 형식도 상관없다. 자신의 생각을 담아 글로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윤 교사가 이런 방식을 도입한 것은 자신이 글쓰기를 통해 많은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공계 전공자들이 보통 그렇듯 그도 글쓰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던 2014년 추리소설을 통해 힐링 받은 것이 변화의 계기가 됐다. 추리소설을 탐독하던 그는 문득 과학 지식을 활용하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3개월 간 집필해 첫 장편추리소설 ‘십자도 시나리오’를 자비 출판했다.
 
첫 작품이라 부족한 점이 많아 독자들에게 비판도 적잖이 받았지만 자기 이름으로 출판된 책에서 얻은 성취감은 무척 컸다. 이후로도 집필을 이어간 결과 이듬해 1월에는 ‘피 그리고 복수’라는 작품으로 ‘2회 엠블록 미스터리 걸작선’에 선정됐다. 또 같은 해 여름에는 ‘계간 미스터리’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정식 등단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학생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 인천공항고에 부임한 후 자기 수업을 듣는 학생 150명 전원에게 노트를 나눠주고, 매주 배운 지식을 활용해 시, 소설, 산문, 일기 등 자유로운 형식의 글을 써서 내도록 했다. 
 
처음에는 생물 시간에 웬 글쓰기냐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흥미를 보이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학생들이 수업에서 배우는 것들을 더 이상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매주 대단한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실연의 아픔을 호르몬에 비유해 짧은 시로 표현한다든가, 정상세포와 암세포에 남녀를 대비해 성차별 관련 글을 쓰는 식이죠. 장난스러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결과물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배운 것을 한 번 더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주 150여 편의 글을 일일이 읽고 멘트를 달아주는 게 쉽지 않지만 거르지 않고 챙기는 것은 이를 통해 학생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에 묻어나는 학생의 고민에 인생 선배로서 짤막한 의견을 달아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통 창구가 되고 있다.
 
지난해 여름에는 글쓰기에 재능을 보인 학생들을 모아 사이언픽션이라는 동아리도 만들었다. 동아리는 학생들이 아침 일찍 등교해 정보카페에서 글을 쓰고 윤 교사가 개인별로 코칭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반년 간의 집필과 약 5개월의 검수과정을 거쳐 단편추리소설집 ‘해피엔드는 없다’도 펴냈다. 이 작업에 참여한 8명의 학생들은 “처음 시작할 때는 매일 아침 글을 쓰는 일이 힘들었지만 점점 글을 쓰는 일이 재밌어졌고, 이렇게 결과물이 나오니 대학에 진학해서도 기회가 된다면 계속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윤 교사는 정규 수업에도 인문학적 요소를 적극 활용한다. 일례로 유전 단원에서는 소설 ‘메밀 꽃 필 무렵’이 등장한다. 동이가 왼손을 쓰는 것으로 허생원의 아들임을 암시하는 대목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따져보고, 좀 더 친자관계를 확실히 나타낼 수 있도록 각자 소설을 각색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혈액 단원에서는 혈액형별 성격을 분류하고 이에 해당하는 교사를 찾아오게 하는 게임 형식의 수업을 진행한다. 
 
그는 “대입제도가 많이 바뀌어서 수능중심의 딱딱한 수업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재밌게 여기며 창의성을 키워나가도록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강중민 기자 jmkang@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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