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텃밭에서 떠올린 여러 생각들

2017.09.12 10:21:59

배추모종 옮겨심기 작업을 하면서

나는 도시농부다. 도심 한 가운데에서 작은 텃밭을 일군다. 텃밭을 분양 받기 전에는 베란다에서 화분을 이용해 농작물을 가꾸었다. 초보 도시농부 기분을 맛볼 수 있지만 화분은 땅의 힘에 한계가 있어 식물의 수명은 짧다. 다행이 일월호수 둑 아래 일월공원 텃밭을 수원시로부터 분양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2년 간 본격적인 도시 농부가 된 것이다.

 

얼마 전에는 수원농협 경제사업장에서 배추 모종을 사 왔다. 배추 모종은 농부가 키워서 직접 파는 것이다. 배추 품종은 추왕’. 모종 반 판에 4천원이다. 36포기를 주어야 하나 여유로 몇 포기를 더 잘라 준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때론 모판에 빈 모종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이게 바로 농심 아닌가 싶다. 덤이 인심이다. 딱 정해진 개수만 주었을 경우, 소비자의 불신을 고려한 것이다.

 

초보 농부이기에 배추 심는 방법을 물었다. 포기 당 40cm 간격으로 심어야 한다고 한다. 모종 이식 후에는 물을 충분히 주라고 조언한다. 작년의 경우, 가을배추를 심었으나 세 포기가 그만 시들고 말았다. 물주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어찌 그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은 아직도 모른다. 내가 심은 배추, 잘 키우면 알이 꽉 찬 김장배추가 될 것이다. 작년엔 실패하여 작은 배추를 국거리용으로 사용했었다.


 


배추 모종을 심으려면 준비 작업을 해야 한다. 기존에 자라고 있는 농작물을 정리해야 한다. 나의 텃밭에는 방울토마토, 가지, 고추, 들깨, 파 등이 자라고 있다. 토마토는 지난 번 장마와 비바람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열매 맺는 것도 부실하다. 수명이 다한 것이다. 고추와 가지도 끝물이다. 그러나 들깨는 아직 잘 자라고 있다. 농작물마다 전성기가 다른 것이다.

 

고추는 지난주에 이미 뽑았다. 방울토마토는 두 손으로 그냥 잡아당기니 뿌리가 쉽게 뽑힌다. 뿌리까지 쉽게 뽑히지 않는 것은 줄기가 끊어지고 만다. 뿌리가 약하고 깊게 뻗지 못한 토마토는 바람이 세게 불면 지주대와 같이 쓰러졌던 것이다. 옆에서 거들어 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다음은 가지 네 그루를 뽑아야 한다. 여기서 뽑기 안타까운 한 그루가 있다. 이 가지나무는 꽃이 네 개가 피어 있고 작은 열매를 여러 개 매달고 있다. 일주일 간 더 두면 열매도 더 자랄 것이다. 그러나 배추모종을 심기 위해 뽑아야 한다. 두 손으로 가지나무를 당겼다. 꿈쩍 않는다. 뿌리가 땅에 완전히 자리 잡은 것이다. 가지는 그 동안 뿌리를 옆으로 아래로 깊고 넓게 뻗은 것. 가장 뽑기 어려웠던 것은 꽃과 열매를 여러 개 달고 있었던 가지나무.


 


여기서 문득 떠오른 것은 초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다. 이 세상을 떠나기가 얼마나 어려우셨을까? 공무원 생활을 하시다 44살에 돌아가셨는데 우리 집에는 41살의 우리 어머니와 6남매가 있었다. 23살 큰형, 20살 작은형, 초교 5학년인 누나, 5살과 3살의 여동생이 있었다. 당시 큰형은 해군이었고 작은형은 국립사범대 대학생이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에 어머니는 몇 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나의 공원 텃밭에는 내가 심은 농작물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멀리서 씨가 날아와 자리 잡은 중국단풍은 몇 달 동안 50cm 이상 자랐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참외도 노란꽃을 피우고 열매 두 개를 매달았다. 허브식물도 퍼져 향기를 풍긴다. 밭을 둘러보면서 동물도 보았다. 방아깨비, 두꺼비, 지렁이, 고추잠자리, 노린재 등을 보았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리라.

 

텃밭을 보면서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고추와 방울토마토 모종은 돈 주고 샀지만 가지와 들깨 모종은 우리 아파트 이웃에서 얻은 것이다. 농작물과 함께 자라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있는 채송화는 우리가 직접 씨앗을 뿌렸지만 메리골드는 분양 받은 것이다. 텃밭 생산물도 이웃과 주고받는다. 근대, 상추, 고구마 등을 받았고 고추, 오이, 방울토마토 등을 나누었다.

 

일월공원텃밭은 일명 해와 달 행복텃밭이다. 여기서는 농작물을 가꾸면서 행복도 함께 일군다. 텃밭 가꾸면서 느끼는 점은 자연에게서 인생의 이치를 배운다는 것이다. 애고추를 열심히 따 먹다가 어느 한순간 고추가 딱딱해졌음을 느낀다. 이제 더 이상 따지 말고 후세를 생각하여 달라는 고추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가지나무를 뽑으면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를 생각해보았다. 도시텃밭에서 우리네 인생을 생각해 본다.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인가?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yyg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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