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에 치이고, 회의에 지치는 교감선생님들

2017.10.20 12:04:28

하루 평균 50~60건 공문처리
당연직 위원 참석만 20여 개
기간제·강사 노무관리도 맡아
“1년 내내 사람 구하러 다녀”
승진해도 실수당 차이 3만원


일반 회사원이라면 아침 식사를 하거나 집에서 나서거나 할 시간인 오전 7시 30분, 서울 A고 B교감은 이미 학교에 도착했다. 밤 새 이상은 없었는지, 지난 저녁 체육관을 쓴 생활체육 배구동호회는 정리를 잘하고 갔는지 확인을 하고 돌아와 교무회의를 마친 뒤부터 공문 처리에 오전 시간을 거의 할애했다.


교감이 되고 공문 처리는 주요한 업무 중 하나다. 오전에 처리한 공문만 줄잡아 20여 개. 중간관리자로서 결재해 교장께 보내거나 전결해야 할 공문도 있지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방안을 구하는 공문도 많다.


교원 업무경감 정책이 추진된 뒤 교감이 처리해야 할 공문 숫자는 오히려 늘었다. 담임교사는 업무에서 제외하고 교감 중심으로 업무지원팀을 구성하는 것이 필수화된 뒤부터 대부분의 공문을 업무지원팀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장이나 다녀온 다음날이면 100건 가까이 쌓여있는 날도 있다. 그렇다고 공문만 들여다보고 있을 순 없다. 중간 중간 수업이 잘되고 있는지 학생 생활에는 문제가 없는지 교내 지도도 다녀야 한다. 학교를 한 바퀴 돌고 오면 어김없이 쌓여 있다.


경기의 C중 D교감은 학교 내 각종 위원회 참석으로 정신이 없다. 민주적인 학교운영, 학교 청렴 확대 등의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만들어진 위원회가 20여 개에 달한다. 학교운영위원회, 교원인사자문위원회, 교무위원회, 교육과정위원회, 학생복지위원회,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급식소위원회 등 교감 필수 참석이나 당연직 위원장인 경우도 많다.


월 평균 10~15회 회의가 열리고, 중간 중간에는 외부 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D교감은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회의만 하는 날도 있다”며 “학교와 교육적으로 꼭 필요한 회의나 위원 역할은 기꺼이 담당하겠지만 불필요한 당연직 지정이나 회의는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북 E초 F교감은 다음 학기 기간제 교사를 구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신경이 쓰인다. 지난해 여 교원 출산 휴가로 기간제 교사를 모집했지만 농촌지역까지 오려는 교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선후배를 동원해 겨우 적격자를 찾았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비단 기간제 교사만 구인난인 것은 아니다 방과후강사, 스포츠강사, 돌봄전담강사 등 이른바 ‘학교 내 학교’의 인력관리도 결국 교감의 몫이다.


F교감은 “1년 내내 사람을 구하러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적합한 인사를 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채용 뒤 각종 노무관리도 교감의 몫이어서 계약이 끝날 때까지 업무가 이어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학교의 어머니로서 역할, 교장과 교사의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하는 일선 학교 교감들의 업무 부담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과중한 행정업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학교의 사회적 역할 확대와 구성원의 다양화 등으로 인해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많아진데다 교육감직선제 이후 시·도교육청도 각종 정책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일거리가 부쩍 늘었다.


하는 일은 늘었지만 처우는 승진 전이나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공모교장 확대로 인해 승진 자리가 줄어 사기가 꺾이는 상황이다.


실제로 교감 승진 시 직급은 올라도 호봉에는 변화가 없어 기본급에 차이가 없다. 직급보조수당(25만원)을 받기는 하지만 승진 전에 받던 보직수당이나 담임수당 등이 빠지면 3만원 정도 인상되는 것에 불과하다. 업무나 책임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이같은 어려움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서울초등교감행정연구회가 지난 7월 서울지역 586명 교감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교감업무량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8.0%가 ‘과중하다’고 답했다. ‘해가 갈수록 업무 피로감이 높아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승진이지만 처우가 달라진 것이 없어서가 48.8%였으며, 학교 구성원 민원의 최종 책임자라는 부담 때문이라는 답이 20.5%, 의무만 있고 권한이 없기 때문이라는 응답도 18.3%나 됐다.


‘처우개선 해결 과제’에 대해서는 교감 직급비 인상이 40.6%로 가장 많은 응답을 보였으며, 교감 직책수행경비 신설(26.1%), 부교장으로 명칭 승격 및 적합한 권한 부여(21.0%)가 뒤를 이었다.


김갑철 (사)서울초등교감행정연구회장(서울신영초 교감)은 “학교가 다양한 역할을 하고 의사소통 구조가 좋아지는 점은 교육적으로 긍정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묵묵히 노력하는 교감들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맡은 바 소임을 다 할 수 있도록 그 직책과 위상에 맞는 대우와 권한을 같이 부여해주고, 지치고 힘들 때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선 학교 교감들의 애환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교총은 19일 교육부에 보낸 ‘교원 처우 개선 건의서’에 현재 25만원 수준인 교감 직급보조비를 30만원으로 인상하고 승진효과와 각종 업무 부담 가중에 따른 책무성을 보장하기 위한 교감 직책수행경비 신설을 함께 요구했다.


김동석 교총 정책본부장은 “담임교사가 교감으로 승진했을 시 승진에 따른 보수인상 효과는 2만3140원에 불과한데 그 역할은 당연직 위원 참석, 장학 및 관리 업무 등 대폭 늘어난다”며 “실질적 처우개선이 없어 자존감 하락, 피로도 증가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승호 기자 10004ok@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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