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즐기라고?

2018.01.04 20:56:06

<스트레스는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를 읽고

토스카니니가 악보를 외운 이유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 그는 아무리 복잡하고 긴 악보도 한두 번 만에 모조리 외웠다고 합니다. 그가 다른 연주자처럼 눈이 좋았다면 처음부터 악보를 외울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지독한 근시였기 때문에 악보를 외워야만 했고 그것이 어느 날 그를 전설적인 지휘자로 만들었습니다. 치명적인 약점이 오히려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고도원 <절대고독>62쪽



우리는 스트레스를 ‘현대인의 가장 큰 적’으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되도록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러한 스트레스에 대한 부정적인 오해가 오히려 우리의 삶을 망가뜨린다고 주장하는 책이 나왔다. 독일 유력 시사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 과학 저널리스트 우르스 빌만(Urs Willmann)은 《스트레스는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원제: Stress: Ein Ledensmittel, 심심 刊)》에서 스트레스가 오히려 ‘생활필수품이자 인생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무조건 푹 쉬고 일에서 벗어나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스트레스는 백해무익하다’ 등 스트레스를 둘러싼 각종 오해를 파헤친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저명한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를 인터뷰하고, 생물학자와 뇌과학자부터 문화학자, 지질학자, 경제학자까지 ‘스트레스는 생활필수품이자 인생을 유쾌하게 만드는 선물’임을 증명할 다양한 전문가의 연구 결과를 종횡무진 끌어온다.


예를 들면, 미국의 스트레스 전문가이자 스탠퍼드 대학교 신경학자인 새폴스키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 지구에 사는 모든 종의 99퍼센트에게 스트레스는 사바나에서 경험하는 3분 동안의 충격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 그 스트레스는 저절로 사라진다. 아니면 당신을 데리고 사라진다. "  그는 또 과도한 양의 스트레스 호르몬이 신경세포를 괴롭한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  1977년 아프리카에서 올리브 개코원숭이들의 혈액을 채취한 그는 갈등과 왕따로 장기 스트레스에 시달린 원숭이들의 시상하부가 쪼그라든 사실을 밝혀냈다.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의 상관관계는 2014년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진이 밝혀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조현병,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의 뇌는 백질 비율은 늘어도 회질 비율은 줄어든다. 회질은 진짜 신경세포지만 백질은 포장, 즉 껍데기에 둘러싸인 섬유다. 극심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 쥐들을 연구한 선다리 체티도 동일한 결과를 관찰했다. 그녀는 " 장기적으로 과도한 양의 껍데기 세포가 형성되면 두 가지 방식으로 정신 능력에 해를 끼친다."라고 말한다. 우선 신경세포와 껍데기 세포의 균형이 깨지고, 그다음으로 신경세포의 두꺼운 포장이 신경세포의 연결을 방해한다. 이  경우 기억력뿐 아니라 학습 능력이 떨어지며 정신질환에도 취약해진다. 일찌기 지그문트 프로이드도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슬픔은 병적인 우울로 굳어진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138쪽


"우리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것은 대개 만성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요인의 반복적인 경험은 뇌의 재조직화를 막는다. 계속해서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내면화해 뇌 기능 손상과 우울증을 유발함으로써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279쪽


진화는 스트레스의 산물


만약 35억 년 전에 등장한 생명체의 개척자 세포들이 지금까지도 계속 자기 일만 충실히 했다면 모든 세포가 여전히 외톨이 신세로 '원시 수프(미국 화학자 스탠리 밀러가 주장한 생명 기원설로 살아 있는 모든 것으로 수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해 모든 생명체가 수프 상태의 원시 지구에서 탄생했다고 본 이론)를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쓸 수 있는 스무 가지 아미노산을 이용해 매일 똑같은 아미노산을 부지런히 합성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단순한 DNA에 적힌 지시 사항 그대로다.


하지만 우리 같은 다세포, 그러니까 무려 2조 개의 세포로 이뤄진 세포 꾸러미 생물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는 증거다. 그것은 바로 세포의 생명을 관리하는 단백질의 변화다.  단백질은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세포의 호흡을 조절하며 영양분 흡수와 폐기물 배출을 처리한다. 이 모든 임무를 잘해내려면 단백질이 무사히 합성되고 접혀야 한다.  그런데 단백질 접합은 고도로 복잡한 과정이라 실수할 위험이 높다. 가령 자외선이 스트레스를 유발해도 실수가 발생한다. 이 파괴적인 단파 광선이 유전자에 오자를 내면 합성 설명서의 본문이 달라지는 바람에 올바른 부품 대신 불량품이 탄생한다. 즉, 예정돤 단백질이 아닌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64쪽~65쪽


생명체가 복잡해지는 동안 그 생명체의 스트레스 반응도 진화를 거듭했다. 만약 그 옛날 원시세포들이 맹수를 만난다면 지금의 우리처럼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리라. 정신분석학자 게르트 칼루차는 스트레스 반응 프로그램의 발전이야말로 자연의 창조성을 입증한다고 말한다.  "창조성을 발휘해 반을 프로그램을 갖춘 생명체는 생존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 69쪽


작가는 말한다. 진화는 스트레스의 결과물이라고. 『역사의 연구』를 쓴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드라마로 해석했다. 도전은 곧 스트레스이다. 그것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위대한 걸작물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사마천의 『사기』 역시 극한의 스트레스를 견뎌낸 위대한 열매이다. 인류 역사를 움직여 온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스트레스를 극복한 사람들이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위인들은 그 스트레스를 극복한 주인공들이다.


인생의 나이테를 굵직하게 새긴 사람들이 보여주는 공통된 모습은 스트레스를 승화 시켰기에 감동을 안겨준다. 세상은 살기 좋아졌는데 현대인들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더 스트레스로 힘들게 산다. 병명을 알 수 없는 질병들이 늘어나고 경로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 너무 열심히 살아서 생긴 병이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가족을 부양해온 가장, 취업의 고통 속에서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좌절하는 젊음에게도 스트레스는 일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의 선구자 한스 셀리에는 "스트레스는 인생의 양념"이라고 극찬한다. 그 양념이 너무 진하면 음식의 맛을 잃게 하니 인생이 힘들어진다. 어떻게 하면 인생의 양념인 스트레스를 자유자재로 적당히 넣어서 인생이라는 음식을 맛있게 요리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맛있게 먹기는 힘들다. 음식마다 궁합이 맞는 양념도 따로 있다. 갑작스런 스트레스가 공격해오면 평형 감각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심하면 난파선이 되기도 한다. 스트레스에 전전긍긍할 것인지. 극복할 것인지 돌직구로 가득 찬 이 책 속에 답이 있으니 일독을 권하고 싶다. 스트레스를 이기는 2018년의 첫 책으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장옥순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전남 담양 금성초 교사 jos2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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