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의 꿈을 지켜 주세요

2017.12.14 09:10:58

경제적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

어젯밤 9시 오랜만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너무 무서운 악몽을 꿨어요. 무서워서 전화했어요.”
      
어느 새 중학교 1학년이 된 상준이(가명)었습니다. TV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괴한이 쫓아오는 무서운 꿈을 꿔서 저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상준이의 아직 어린 아이 같은 행동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상준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제대로 연락 한 번 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함께 들었습니다.
      
제가 5학년 담임교사를 할 때의 일입니다. 3월 초 어느 날 교실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수화기 너머 울음 섞인 소리가 들려옵니다.
      
“선생님, 올해는 저희 집에 기름 넣어주러 안 오시남? 추워서 잘 수가 없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어떤 기름 말씀 하시는 거죠?”
  
저는 처음에 전화가 잘 못 왔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 반 상준이의 할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월 초다 보니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는데, 보일러에 기름이 다 떨어진 지 며칠 돼서 방이 냉골이 되었다는 거였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어떤 선생님이 오셔서 기름을 넣어주셨다고 올해는 왜 안 넣어 주냐고 하시더군요. 전화를 끊고, 주민센터와 구청에 수소문 해보니 전년도에 한 번 교회와 복지관이 연계하여 소외계층 집에 기름을 넣어주는 사업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근데, 그 사업이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한 해만 시행한 이벤트성 사업이었던 것이라 올해는 그런 사업이 없다는 것이었죠.
    
할머니의 울음 섞인 소리에 저도 모르게 함께 눈물이 났습니다. 저의 청소년 시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지요. 저 역시 청소년 시기에 집안 사정이 매우 안 좋아져 생활보호대상자로 몇 년간 힘든 시절을 보내며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어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상준이 집에 도움을 드리기로 결심하고 아내와 함께 상준이 집에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보일러에 기름을 바로 넣어드릴 수는 없으니, 우선 추운 집에서 따뜻하게 주무실 수 있게 집에 있던 전기장판과 따뜻한 솜이불을 챙겼습니다. 또, 라면과 햇반, 참치, 김 등 집에 있는 밥과 반찬류를 쓸어 담아 바로 상준이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학교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도로변에서 골목골목을 비집고 들어가 상준이 집을 힘들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상준이는 저와 제 아내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었습니다.
     
할머니에게 들은 상준이의 이야기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는 떨어져 살게 되어 연락이 안 된지 오래이고, 몇 년 전부터 아버지도 일 때문에 따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도 심한 허리디스크에 시달려 거동이 불편한지라 할머니가 상준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준이가 할머니를 간호 하고 스스로 밥도 챙겨먹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할머니에게 상준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알아보겠다고 약속을 드리고, 집을 떠나려던 즈음 마중 나오며 활짝 웃는 상준이를 보고 저는 갑자기 상준이에게 소중한 추억 하나를 만들어주소 싶어졌습니다. 상준이에게 물었습니다.
     
“상준아, 혹시 평소에 제일 먹고 싶은 게 뭐였어? 그리고 제일 하고 싶었던 건?”
     
“음... 햄버거 먹고 싶어요! 그리고 선생님이랑 목욕탕도 가보고 싶어요!”
      
상준이의 목소리는 힘찼습니다. 소박한 희망사항이었지만 제가 직접 해줄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큰 감사함을 느꼈죠. 저와 제 아내, 상준이는 동네의 햄버거 집에서 함께 햄버거를 먹으며 여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상준이는 예의도 바르고 정말 밝은 아이였습니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할머니에게 전화하고 안심시키는 모습에 할머니를 끔찍이 생각하는 상준이의 고운 마음씨를 보며 ‘참 잘 컸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햄버거를 다 먹고 저와 상준이는 목욕탕에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며 저의 어릴 적 꿈과 상준이의 앞으로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상준이는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제가 해줄 수 있는 한 상준이의 꿈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학교와 주민센터, 복지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상준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당시 제가 근무하던 학교는 교육복지지정학교여서 상준이와 같은 경제적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이 있었습니다. 그 예산으로 상준이의 따뜻한 겨울 점퍼를 사주고, 꿈을 위해 노력하도록 축구화와 축구공도 사줄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죠. 또, 주민센터와 복지관에 연계하여 상준이의 딱한 사정을 알리고, 상준이를 장학생으로 여러 기관에 추천하였습니다. 생각보다 한 어린이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저를 비롯한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참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벌써 시간이 지나, 상준이가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제가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 중학교에 갔으니, ‘그 학교 선생님들이 신경써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상준이를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겨울방학에 상준이를 저희 집으로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중학교 생활은 어떤지, 할머니는 잘 지내는 지 참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소외계층 청소년을 위해 가정, 학교,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주변에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참 많습니다. 그 친구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가정, 학교, 지역사회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함께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합니다. 또, 제가 초등학교 교사로서 느낀 점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잘 연계되어 소외계층 아이들의 지원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 어른들이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 하나하나가 상준이처럼 꿈과 사랑이 가득한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박현진 덕벌초 교사 guswls0830@naver.com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