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 22일 첫 방송한 SBS드라마스페셜 ‘이판, 사판’이 1월 11일 막을 내렸다. 32부작(옛 16부작)으로 ‘당신이 잠든 사이에’ 후속작이다. 이 드라마까지 포함해 지난 연말 방송평론집 ‘TV 꼼짝 마’를 발간했다. ‘이판, 사판’은, 이를테면 ‘TV 꼼짝 마’ 이후, 새해 들어 처음 만나보는 드라마인 셈이다.
사실 ‘이판, 사판’은 처음부터 기를 쓰고 시청한 드라마는 아니다. 거의 13년 만에 방송평론집을 상재한 홀가분함이 주는 잠시 휴식, 뭐 그런 것보다 ‘이판, 사판’이 무지막지한 억지 코미디라는 강한 인상을 풍겨서다. 판사 이정주(박은빈)가 재판중 흥분하여 법복을 벗고 책상으로 뛰어 올라가는 장면에 그만 기겁해버린 것이라 할까.
그럼에도 다른 채널에서 딱히 볼만한 드라마를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 ‘의문의 일승’(SBS)이라든가 ‘막돼먹은 영애씨16’(tvN), 주말엔 ‘돈꽃’(MBC)과 ‘황금빛 내 인생’(KBS 2TV) 등을 보고 있지만, 평일(월~목)엔 SBS 드라마에 쏠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전작들인 ‘사랑의 온도’⋅‘조작’⋅‘당신이 잠든 사이에’⋅‘다시 만난 세계’가 전부 SBS 드라마다.
그것들이 시청률 높은 인기드라마여서 본 것은 아니다. 두 자릿 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드라마들인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이판, 사판’의 경우 6.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출발했지만, 더 이상 크게 오르지 못했다. 서울 수도권이 9.2%까지 기록한 적은 있지만, 방송 내내 6~7%에 머물렀다. 단, 32회 최종회의 시청률은 8.0%였다.
그런 시청률은 필유곡절이지 싶다. 새해 들어 스폰서가 1개 사로 줄어들더니 종영까지 3주 연속 중간광고 없이 바로 이어진 방송도 그 여파가 아닐까 싶다. 그럴려면 혼란스럽고 짜증나게 왜 멀쩡한 70분짜리 1회분(미니시리즈 기준)을 둘로 쪼개 방송하는지 SBS 등 지상파 방송사의 반성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판, 사판’은 이렇다 할 재미가 없다. ‘이판, 사판’은 미혼의 이정주와 사의현(연우진) 판사를 말한다. ‘이판’ 다음 쉼표가 있어 ‘이판사판 공사판’ 혐의는 벗었지만, 첨엔 억지 코미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드라마로 보였다. 이정주 판사 인질극에 이맛살깨나 찌푸렸을 관계자들도 꽤 있었을 법하다.
말도 안 되는 오락활극처럼 보이던 ‘이판, 사판’은 김가영살인사건에 대한 의문이 하나씩 풀리면서 엄숙한 법정드라마가 되어간다. 나중에는 갑자기 멜로드라마 분위기를 확 풍긴다. 일단 법의 엄정함과 판사들의 인간적 고뇌를 통한 사법 정의 구현이나 구속영장 기각, 법꾸라지 등 시의성은 미덕으로 보인다. 전직 판사 유명희(김해숙) 로스쿨 교수가 살인범인 반전의 이야기 전개도 마찬가지다.
또 사의현이 아버지 사정도(최정우)가 들려준 말이라며 하는 “법복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벗을게 아니라 단단히 더 동여매야 한다”라든가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청탁 거절 등은 법관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환기시킨다. 주로 사의현이 담당하고 이정주가 동의하며 함께 하는 식이다. 은근한 주문과 함께 사법부에 대한 깊은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스토리 자체에 의문이 생긴다. 요약하면 유력 대권 주자인 남편 도진명(이덕화) 의원이 강간한 여학생을 죽인 유명희가 전부 꾸미거나 사주한 범죄들이다. 판사의 오판이 얼마나 큰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건 좋은데, 왜 하필 유명희이냐는 것이다. 판사의 그런 악행을 통해 ‘이판, 사판’이 얻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과거 회상이 짧게 이어지다 끊기고 2원화 내지 3원화 화면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도 다소 아쉽다. 썩 이해가 안 되는 걸림돌로 작용해서다. 검사 도한준(동하)이 검찰을 떠나 무죄 판결받은 장순복 모자를 돕는, 그러니까 나란히 수감된 부모 대신 속죄하는 모습인데, 무슨 연좌제도 아니고 좀 뜬금없어 보인다.
“판결보다 더 어려운게 교육문제”라며 여중생 폭행 동영상을 통한 아빠와 자식간 대화가 부족한 현실 꼬집기도 뜬금없어 보이긴 마찬가지다. 갑자기 불쑥 끼워넣은 듯해서다. 그밖에 드라마에서처럼 처녀, 총각 판사의 한 사무실 근무가 실제로 있는지 되게 궁금하다. 테이프로 밀봉하지 않은 택배 상자 같은 허술함과 “니 오빠에게 진 비슨(비즌)” 따위 오류도 거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