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나눔의 정을 쌓는 설날

2018.02.09 15:27:55

겨울의 끝자락에 설레는 만남과 풍요가 함께하는 설이 있다. 설을 앞두고 둘러본 읍내 오일장 날 아침 풍경이 다채롭다. 설음식으로 떠올리는 대표적인 게 인절미, 가래떡, 절편이다. 이 음식들에는 어떤 감미료도 들어가지 않는다. 단지 서로 붙지 말라고 고물과 참기름만 바를 뿐 쫀득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다.

운조루의 굴뚝, 최 부자 집의 八訓
 
절편을 한 잎 베어 물면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잔칫집에서 가져온 신문지 묻은 흰떡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런 떡 음식 문화는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임을 말해준다.
 
벼농사가 중시됐던 옛날 농가에서는 수확한 쌀을 곳간과 뒤주에 보관했다. 뒤주 하면 많이 떠올리는 것은 조선 시대 양반가로 영조 때 낙안군수 류이주가 건축한 전남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에 있는 타인능해(他人能解)다. 이 집 뒤주는 통나무 속을 파서 만든 것으로 타인능해란 ‘누구나 이 쌀 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으로 마개를 돌리면 한 되에서 두 되 정도가 나온다. 그리고 뒤주가 웬만큼 비워지면 주인은 또 쌀을 채워둔다. 
 
당시 류씨 집안은 해마다 쌀 200가마 정도를 수확해 36가마는 배고픈 이들의 손에 돌려줬다. 그리고 뒤주는 가져가는 사람의 마음을 배려해 행랑채에 두었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게 경주 최 부자 집 뒤주다. 최 부자 집에는 700~800석의 쌀을 한꺼번에 저장할 수 있는 곳간이 있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쌀 저장소로 그 부의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최 부자 집도 보릿고개에 이르면 식구들이 쌀밥을 먹지 못하게 했으며 과객이나 배고픈 이들에게 쌀을 나눠주기 위해 쌀이 그득한 뒤주를 여러 개 비치했다. 
 
뒤주의 구조도 특이해 쌀을 퍼낼 수 있는 구멍이 성인 남자의 두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여서 잡히는 만큼 쌀을 가져갈 수 있게 했다. 이 최 부자 집에서 한 해 거둬들이는 쌀은 3000석으로 1000석은 집, 1000석은 과객 접대용, 나머지 1000석은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도록 하라는 육훈(六訓)에 따라 모두 나눠줬다고 한다.
 
선조들의 이런 베풂은 날로 개인화되고 배금주의에 물든 현 세태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베푸는 자의 마음가짐을 말하는 운조루의 낮은 굴뚝, 가진 자로서의 표상이 된 최 부자 집의 육훈을 다시 되새겨볼 만하다. 
 
운조루의 굴뚝은 여느 집들처럼 지붕 위로 높이 솟아 있지 않다. 마당 구석에 작은 굴뚝이 나 있을 뿐이다. 이는 밥을 지을 때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를 보면 배고픈 이웃들이 더 힘들어 할까 봐 염려해서다. 
 
각박한 현대에 전하는 선조의 지혜

그리고 최 부자 집의 육훈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고,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흉년 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며,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고,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히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돈이 있어야 대접 받는다는 생각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다. 그렇게 작은 부자는 될 수 있겠지만 대대로 존경받는 큰 부자는 될 수 없다.
 
설이다. 베풂과 정이라는 선은 쌓을수록 되돌아온다고 했다. 정다운 가족, 이웃끼리 물질이 아닌 마음을 열어 서로 보듬는 절편처럼 차지고 질리지 않는 명절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장현재 경남 상주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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