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여성이라는 굴레

2018.02.13 15:18:47

82년생 김지영

 


설날이 코앞입니다. 시골의 고모님께서 떡국을 몇 말 하셨다며 한 자루를 보내주셨습니다. 흰쌀떡국에 고명을 얹어 먹으니 설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확 다가섭니다. 저희 4형제가 모두 모이는 설날에는 식구들이 이십 여명이 넘습니다. 설거지는 한 번에 산더미처럼 나옵니다. 돌아서면 밥을 해야 하고 그 사이에 차례에 쓸 부침개도 부치고 나물과 탕을 준비하는 명절은 바쁘고 부산스럽습니다. 명절이 되니 모처럼 얼굴보고 이야기도 하고 밥도 함께 먹으니 반갑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아이를 낳는 것과 육아의 대부분은 여성의 몫이고 집안일도 엄마의 일입니다. 명절은 여성의 노동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닐까요.

 

독서모임 밴드에 한 편의 시가 올라왔습니다.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었습니다. ‘에 관한 담론만큼은 발언하는 사람이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단의 성추행 문제를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그녀의 발언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설왕설래하였습니다. 용감한 여성들이 자신이 당했던 그래서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하는 성추행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가 당했던 일이 다른 사람들은 겪지 말아야하고 우리의 아이들은 겪지 말아야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 분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에 대해 다룬 한 편의 책을 읽었습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입니다. 이 책은 지난 달 독서모임에서 한 페이지씩 돌아가면서 낭독하였습니다. 소재와 내용의 전개가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를 격하게 공감하게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가 82년생이 아닌 전 세대를 아우르는 경험의 집합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씨와 그녀의 어머니 오미숙씨의 삶 속에서 여성이라는 굴레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희생으로 버티어온 어머니 오미숙씨의 삶과 우리시대의 삼십 대 여성 김지영씨의 삶은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은 듯하였습니다.

 

김지영 씨는 얼굴형도 예쁘고 콧날도 날렵하니까 쌍꺼풀 수술만 하면 되겠다며 외모에 대한 칭찬인지 충고인지도 계속 늘어놓았다. 남자 친구가 있느냐고 묻더니 원래 골키퍼가 있어야 골 넣을 맛이 난다는 둥 한 번도 안 해 본 여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여자는 없다는 둥 웃기지도 않는 19금 유머까지 남발했다. 무엇보다 계속 술을 권했다.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 p.116

 

며칠 째 저를 괴롭히던 감기 때문에 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일들이 늘 힘들고 어렵습니다. 글쓰기도 책읽기도 공부도 쉬운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힘듦이 저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겠지요.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을 휘감은 성추행 문제들도 이번의 일을 계기로 여성들은 서로 연대하여 버틸 수 있는 힘을 만들고, 남자들은 내 동생 내 딸이 이런 일을 당하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생각해야겠지요. 우리들은 어머니가 여성이고 우리들이 누이도 여성이고 우리의 딸도 여성입니다. 세상의 반이 여성입니다. 함께 가야 오래가고 멀리 갑니다. 힘들지 않고 즐거운 명절이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그런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즐거운 설날 되십시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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