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눈물, 가족의 소중함 일깨워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주먹만 믿고 살아온 한물간 전직 복서 ‘조하’와 엄마만 믿고 살아온 서번트증후군 동생 ‘진태’, 살아온 곳도, 잘하는 일도, 좋아하는 것도 다른 두 형제가 난생 처음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설 연휴에 가족과 함께 보기에 딱 좋은 영화였다. 가족 영화였지만 가족이라 부르기 힘든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아팠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자식(조하)을 버리고 목숨을 버리려다 살아난 엄마 인숙(윤여정)의 삶은 아픔 그 자체다. 남편에게 시도 때도 없이 구타 당하는 엄마를 보며 두려움에 떨던 아들 조하(이병헌)는 주먹 세계에 이름을 날린다. 그것도 잠시 오갈 데 없는 그의 딱한 처지는 우연히 엄마를 만나면서 정착 아닌 정착을 한다. 자기를 버린 엄마를 중오하고 쌀쌀맞게 대한다. 그 엄마가 중병에 걸린 줄도 모르고....
<엄마 인숙은 죽음을 준비하러 떠나면서도 조하를 속인다. 마지막 생일 파티 중>
한 달만 동생 진태(박정민)를 챙겨달라는 엄마의 부탁을 받고 동생을 맡게 된 조하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동생에게 피아노를 잘 치는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동생 진태는 누구에게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다.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고 그 자리에서 재현해내는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아이다. 그런 동생을 위해 경연대회에 나가서 상금을 타려고 출전하게 된다.
진태는 관중들을 웃기면서도 놀라운 연주를 선보여 대상을 탈 줄 알았다. 결과는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연주장에는 진태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한지민)가 진태의 연주를 보고 감동한다. 우여곡절 끝에 진태는 한지민의 도움을 받아 큰 무대에 서는 영광을 안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마음을 열어가며 진짜 형제가 되어가는 ‘조하’, ‘진태’의 변화와 그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는 엄마 ‘인숙’의 모습은 가족의 정이 메말라가는 이 시대에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감동을 선사했다. 가정폭력과 가출, 장애아, 중병에 시달리는 가족, 불안정한 수입으로 생계가 힘든 가족사 속에 이중삼중으로 고뇌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어서 더 아팠다. 우리 시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으니.
<연주 중인 진태의 모습>
서번트증후군을 지닌 진태의 연주가 단순한 연기가 아닌 실제 연주라는 사실이 가장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대역을 쓰지 않고 완벽하게 연주하는 진태의 모습은 정말 감동을 안겼다. 어쩌면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한 나의 꿈이었기에 더욱 몰입하며 진태의 피아노 선율에 깊이 빠졌는지도 모른다.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회를 감상하는 보너스까지 안겨준 영화의 감동. 죽음을 눈앞에 둔 어머니 인숙은 진태의 연주장을 찾아와 감격의 눈물을 짓는다. 그리고 아픈 이승의 삶을 접는다. 두 아들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은 작가의 계획에 없었다.
그날 영화관에 있던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눈물을 닦느라 바빴다. 아프디 아픈 주인공들이 살아남기 위해 삶과 투쟁하듯 살아내는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설정이었고 인간승리를 향해가는 모습을 보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았기 때문이리라. 영화의 제목처럼, 엄마 인숙에게는 자식만이 내 세상이었다. 그것이 이 땅의 부모들의 비원일 것이다. 엄마와 동생을 두고 떠나지 못하는 조하도 가족만이 그의 세상이었으리라. 험한 세상에서 착하기만 한 진태에게는 피아노만이 내 세상이다. 엄마와 함께.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 학교 천사반 아이들이 생각나서 더 슬펐다. 착하기만한 아이들, 누구를 원망하거나 해코지 할 줄 모르는 천사들이 초등학교를 마치고 졸업을 했지만 그들의 삶이 걱정되어서다. 시골 학교라서 학생 수는 적지만 영화 속의 아픔을 가진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한 부모 가정이거나 조손 가정 아이들이 많다. 그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으며 커 가고 있는 현실이 영화 밖으로 나와도 엄연히 존재한다.
아프고 힘든 세상의 아이들이, 가정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힘들게 살아가는 아픈 사람들에게도 영화에서처럼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좋겠다. 날마다 '미투 운동'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더 좋은 세상으로 가는 징후로 보여서 다행이다. 2018년에는 아픈 사람들을 더 챙기는 세상, 힘든 아이들을 한 번 더 돌봐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가상의 영화 한 편이 주는 울림이 생각보다 컸다. 보름 만에 반추해서 쓰게 할 만큼 강렬했으니. 이 영화는 내게도 숙제를 안겼다. 무엇만이 내 세상인지! 올해는 그 길을 찾아서 떠나야 하는 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