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나무

2018.03.05 09:09:42

어머니는 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낡은 시골집이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집 주변 공터에 나무를 심으셨다. 나무를 심되 부잣집 정원에 있는 비싸고 화려한 나무가 아니라 그저 야산에 아무렇게나 자생하는 이름 없는 그런 나무들이었다. 울타리에는 가시가 날카로운 노간주나무를 심으셨고, 앞마당엔 자귀나무와 수국을 캐다 심으셨다. 나는 자귀나무의 꽃이 그렇게 아름답고 화려한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진한 보라색 꽃이 자귀나무의 푸른 잎사귀를 압도할 무렵이면 어린 나이에도 까닭 없이 가슴이 울렁거리곤 했다.

어머니는 자귀나무꽃 외에도 도라지꽃도 좋아하셨다. 보랏빛 도라지꽃이 뒤란 텃밭에 지천으로 피어나면 어머니는 일손을 놓으신 채 한참이나 정신 없이 그 꽃을 바라보시곤 했다. 도라지꽃과 거의 같은 시기에 개화하는 꽃으로 나팔꽃(메꽃)이 있었는데 색깔이 꼭 도라지처럼 진한 보라색을 띠었다. 그 작은 나팔모양이 어린 내 눈에도 참 예쁘게 보였었다.

나팔꽃은 꼭 누군가가 덩굴손을 잡아주어야만 꽃을 피우는 습성이 있다. 유월 초쯤이면 가늘고 여린 덩굴손이 주변에 있는 의지가지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 끝내 의지할 가지를 만나지 못한 덩굴손은 아주 작은 바람에도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리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는 바쁜 농사일 중에도 꼭 짬을 내시어 가는 새끼줄로 얼기설기 하늘 사다리를 만들어 옆에 서 있는 감나무와 연결시켜주시곤 하셨다. 그러면 덩굴손은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새끼줄을 사다리 삼아 감나무로 옮겨 뻗기 시작한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드디어 나팔꽃이 튼튼한 부목을 잡고 감나무 위에서 동화 같은 하늘나라로의 여행을 시작할 무렵이면, 자줏빛이 선명한 나팔꽃이 흐드러지게 감나무를 감싸곤 했다.

나팔꽃의 덩굴손을 잡아주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린 마음에도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또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던 나무와 화초들의 공통점은 모두 보라색 꽃을 피운다는 점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께서 왜 유독 보라색 꽃에 그토록 집착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나이를 먹고 정신적 성장을 이룬 뒤에야 비로소 보라색 꽃에는 어머니의 한(恨)과 이룰 수 없는 애절한 사연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어머니께서는 시각장애인이시다. 어머니는 처녀시절 가난 때문에 가마니를 짜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하루는 어머니의 일하시는 동작이 느리다는 이유로 큰외삼촌이 바디자루로 어머니의 머리를 내리쳐 시신경이 크게 손상되었다고 한다. 그때 바로 치료를 받았으면 시력을 잃지 않아도 됐는데 그만 그놈의 웬수 같은 가난과 무지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아 시신경의 상당부분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시력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물만 식별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 수준으로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이런 일을 겪은 후 세상에 대한 도피의 수단으로 나무와 화초에 집착하셨던 것 같다. 사물을 분간할 수도 없고 내일을 기대할 수도 없는 절망과 고통.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 나무와 자연을 찾게 하셨을 것이다. 이양하의 ‘나무’란 수필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탓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초등학교도 나오시지 않은 어머니께서 이양하의 ‘나무’란 수필처럼 나무의 덕성을 논리적으로 깨우치셨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알량한 지식보다는 직접 몸으로, 마음으로 나무의 생리를 터득하셨을 것이다. 나무는 당신 자신처럼 고독한 존재이고 운명적인 존재란 사실을 말이다. 또 한 가지 어머니께서는 물질에 욕심이 없으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유독 나무에는 욕심이 많으셨다. 봄이면 온갖 꽃과 나무들이 초라한 시골집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가을이면 어른 주먹만한 단감을 비롯해 대추와 호두, 모과, 석류 등이 집 주변에서 탐스럽게 영글어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나무와 꽃들을 통해 당신의 꿈을 의인화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어머니께 이렇게 여쭈어 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물질에는 욕심이 없으시면서 왜 꽃과 나무에는 그렇게 욕심을 내세요?”하고 물었더니,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무에 대한 욕심은 아무리 부려도 탈이 없지만, 물질에 대한 욕심은 반드시 탈을 부른단다. 소금물을 보거라. 마실 때는 잠시잠깐 갈증이 해소되지만 마시고 나면 곧 더한 갈증이 생겨 또 마시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나중에는 배가 터져 죽게 된단다.”

그랬다. 어머니는 자연을 통해, 말없는 나무를 통해 평생 동안 공부만 한 아들도 깨우치지 못한 인생의 진리를 체험으로 깨우치신 것이었다.

어머니, 당신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열심히 가꾸어놓은 시골집의 아름다운 나무들을 보지 못하신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무처럼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던 이 막내아들도 이제는 보지 못하신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가꾸어놓으신 자귀나무와 도라지 밭에서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보랏빛 꽃이 만발하고 시골집 울타리에는 밤송이가 알알이 영글어 갈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며 나는 옛 시인이 읊었다는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는 시구가 생각나 다시 한 번 인생무상을 느낀다.

끝으로 모든 사람의 일생은 하나님께서 쓰신 동화(童話)와 같다는 말처럼,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기억 속에 하나님이 쓰신 동화처럼 모두 곱고 좋은 추억만 자리하길 빌어본다.
김동수 충남 서령고 교사, 수필가, 여행작가 su949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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