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인의 인문학자가 전하는 자신과 세상을 견디는 법, 7가지
여행하는 삶, 앎을 좇는 삶, 꿈에 이끌린 삶, 변혁하는 삶, 공감하는 삶, 유배당한 삶, 읽고 쓰는 삶
특이점 시대의 공부, 인문학
근대적 인간에게 복종과 안주는 도리어 죄가 되고, 차라리 도전하고 부정하는 것이 선이 된다. 주어진 자리, 만들어진 세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고 창출하며 벗어나려 하는 모든 시도들이 괴테가 창조한 파우스트에게 '근대적'이라는 표지를 제공한다. -41쪽
이 책은 '공부하는 인간'을 지향하고 싶은 나에게 한 눈에 들어온 책이다. 제목부터 마음에 들어서 골랐다. 괴테가 창조한 파우스트는 곧 공부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인간,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근대를 넘어 초현대적인 개념으로 다가왔다. 고전의 힘은 역시 막강함에 놀랐다. 괴테의 시대에도 지금 우리의 시대에도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한 갈망의 합일점에 닿아있으니.
나를 공부하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리라. 누군가는 여행을 하며 자신을 찾고 사랑하는 삶을 산다. 누군가는 앎을 향해 전진하고 또 누군가는 꿈을 좇아 살아간다. 어떤 이는 세상과 단절하고 어딘가로 숨어들어 살기도 한다. 용감한 사람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뜨거운 삶을 추구하기도 한다. 존재하는 모습이 다 다르듯 공부하는 모습도, 자신을 찾아가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리라. 그 중에 나는 가장 소극적인 방법일 수도 있는 앎을 찾아 읽고 쓰는 삶을 좋아한다.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삶의 물줄기 하나 건지는 날, 모래밭에서 반짝이는 사금 하나 건지는 행복에 감사한다. 그리하여 코나투스적인 인간이고자 한다.
공부하는 인간, 코나투스적 인간
자연은 목적이나 의도 없이 무한히 생성 변화하는 이 세계 그 자체다. 이는 현실 세계 이외에 초월적인 세계가 없다는 의미다. -162쪽
스피노자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사물은 자기를 지키려 하며 자기 안에 머무르려는 노력에 의해 존재한다고 본다. 이렇게 자기를 유지하고 지키려는 개체의 노력을 코나투스라고 부른다. 코나투스란 사람과 사물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노력 또는 욕구를 말한다. -165쪽
코나투스적인 인간은 곧 공부하는 인간이다. 지구상에서 살도록 명을 받은, 생명을 지닌 모든 생명체는 본디 자연적이었고 자기중심적이며 존재하기를 원한다. 풀 한 포기도 고양이 한 마리도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그러므로 자연은 곧 진리다. 자연은 변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니체 역시 진리라고 설파했다. 한 권의 책에서 다양한 삶을 살다간 14명의 선각자를 만나는 기쁨도 행복한데, 그 선각자들의 선견지명이 나의 생각과 동일함을 느끼는 '아하!'의 순간 숨이 멎듯 다가오는 感動이란! 그러기에 공자는 아침에 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으리라.
조선에도 스피노자와 유사한 사람이 있다. 유배되었지만 가장 자유로웠던 사람, 시대를 초과해서 시대와 불화했지만 그 불화 때문에 지금도 기억되는 사람, 정약용이다. -167쪽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지구상에 존재했던 위대한 영혼들을 책만 펼치면 만날 수 있는 이 시대에 태어난 것에 늘 감사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들이 어디에나 있는 이 행복한 시대의 산물이 봄꽃처럼 지천으로 널린 이 나라의 서점과 도서관이 고맙다. 귀양지에서 귀한 책들을 필사하며 발목에 구멍이 뚫리도록 자신을 갈굼질한 다산 정약용, 시대를 앞서간 과학사상으로 죽임을 당한 브루노의 일생, 위대한 철학사상으로 종교적 탄압을 받은 스피노자나 최제우의 헌신 덕분에 오늘의 나는 이토록 영양이 풍부한 철학의 토양에서 싹 튼 사상의 열매를 따먹으며 행복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가! 더불어 이 책을 쓴 저자처럼 선각자들이 뿌린 씨앗과 열매들을 갈무리하고 선별하여 책이라는 상자에 담아 시장에 내놓은 작가라는 상인이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가.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아니 아픔의 언덕을 넘어서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나 역시 배고픔과 가난, 외로움으로 지쳐 삶의 언덕을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하고 포기하려 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슬픈 가족사로 말문을 닫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뜻하지 않은 이별로 두문불출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나를 지탱해준 멘토는 책이었다. 책 속에서 만나는 위대한 스승들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들 역시 아픔과 고뇌에 찬 시간의 터널을 지나며 어둠 속에서 별빛을 향해 나아가며 살아낸 피멍든 삶의 여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책은 문명이 만들어낸 최고의 산물이 분명하다. 어떤 시대가 오든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인문학이며 공부하는 삶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책을 보면 볼수록, 더 어렵고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움츠러들지만 행복한 도전을 계속할 생각이다.
과거처럼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줄었지만 영혼의 배고픔과 상처, 외로움이 세상을 뒤덮는 소식들이 넘치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시대에도 배고픔과 아픔은 상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이점의 시대가 도래하면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기본소득이 주어지고 시간과 여유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거라는 밝은 전망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는 밝은 전망을 하고 싶다. 말이 씨가 되기를 바라며. 그런 세상은 이미 공자가 설파했으니. 배움(學)에서 기쁨을 얻었다는 그의 선견지명에 다시금 감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