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정신건강] 평온한 마음을 휘젓고 가는 ‘심리적 폭풍, 불안

2018.05.02 09:00:00

‘불안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출근길 막히는 도로 위에서 ‘아, 지각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에서부터, ‘올해 우리 반이 된 ○○가 큰 사고를 치면 안 되는데’하는 근심,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환절기에 건강은 괜찮으시려나’하는 염려까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감을 느낀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특히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시도,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뭔가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불안감은 높아진다. 하지만 ‘왜 저렇게까지’라며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학교에서도 중간고사 기간이 되면 유난히 불안감으로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학생들을 많이 본다. 또한 신학기 파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친구관계의 이상기류로 불안해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불안감은 ‘멘탈’이 약해서 생기는 것일까?

불안감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감정이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이해받기 더 어렵다. ‘친구관계를 맺기가 두려워요’, ‘새로운 교실에 가는 것이 무서워요’, ‘제가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학생들의 이런 호소에 대부분의 부모와 교사는 ‘누구나 다 그렇단다. 처음에는 다 그래. 네가 조금만 더 용기 낸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차 츰 좋아질 거야’라고 격려한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호소하는 불안감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본, 차츰 환경에 적응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 도저히 못 참겠어요.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부모와 교사는 ‘정신력이 약해져서 그런 것’이라며 오히려 ‘더 마음을 다잡고, 더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다’고 몰아붙인다. ‘왜 너만, 유난스럽게 그러냐’고 질책하면서.


정말 이 아이들은 ‘멘탈’이 약한 걸까? 그래서 대부분 아이가 견뎌내는 것을 못 하겠다고 버티는 것일까? 불안·공포·우울로 힘들어하는 것은 단순히 정신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그럴만한 분명한 삶의 이유와 원인이 존재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왜 불안해지기 시작했는지 원인을 잘 파악해서 그에 맞는 치료와 상담을 진행해야 ‘병적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사례 ❶ _ 특정 장소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감

3월 신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한 학생이 찾아왔다. 다짜고짜 ‘자퇴’를 하겠다며 교실 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다. 숨이 막힐 것 같다고 했다. 부모상담을 해보니 부모님과의 애착관계도 잘 형성되어있었고, 자존감 역시 높은 편이었다. 친구관계도 나쁘지 않 았다. 하지만 “선생님, 제가 극복해야 하는 상황인 건 아는데, 교실에 들어가는 게 너무 무서워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상담을 진행해보니 학생은 교실에 대한 다양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친한 친구의 자살시도를 목격했고, 어떤 사건에 휘말려 1년 동안 지독한 왕따를 당했으며, 서울에서 손꼽히는 학업성취도가 높은 중학교에 다닌 탓에 교실이 주는 중압감도 견디기 어려웠다. 단순히 학교 다니기가 싫어서 투정을 부리는 것 같지 않았다. 병원으로 연계한 결과 다른 장소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 하다가 특정 장소·대상·상황을 무서워하는 ‘특정 공포증’ 징후가 보인다고 했다. 계속 무리하게 특정 장소에 노출시키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소견에 잠시 학교를 쉬기로 했다.


# 사례 ❷ _ 새로운 환경에서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져온 불안감

또 다른 학생은 “제가 이 학교에서 잘 적응을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없어요”라며 자퇴를 고집했다. 본교 입학을 앞두고 나름대로 짜놓은 계획을 과연 실천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것이다. 실패하면 취업도 못하고, 인생 낙오자가 되는 것 아니겠냐며 그럴 바에는 학교를 자퇴하고 혼자서 준비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왕따 경험으로 불안감은 높아졌고, 자존감은 낮아졌다. 학생이 힘들어할 때마다 위로해주기보다는 ‘넌 누굴 닮아 그러니’, ‘정신력이 약해 빠져서’라며 윽박지르는 부모의 말에 주눅 들었으며, 자존감은 점점 더 떨어졌다. 자신감이 없어지자 매사 ‘제가 그렇죠, 뭐’, ‘제가 그걸 할 수 있을까요?’라며 자기비판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학생상담을 할 때마다 곁을 지키던 보호자가 ‘그럴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마’라는 말에 ‘네’라며 고개를 떨궜다.


우선 지금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감정일 수 있으며,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아주 긍정적인 불안감임을 인지시켰다. 이후 상담을 통해 학생이 짜놓은 계획표의 목표를 낮추는 작업을 했고, 목표달성 기간도 조절했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의 순서를 정하면서 낮은 수준부터 하나씩 해결해보기로 했다. 부모상담을 통해 자녀 에게 자꾸 ‘정신력이 약하다’고 하면 스스로 ‘나는 정말 정신력이 약해’라고 인정하면서 좌절하게 되고, 이로 인해 다시 불안과 우울함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을 설명했다. 답답함에서 오는 ‘질책’보다는 변해보려고 노력하는 그 용기를 칭찬하고 격려해 줄 것을 당부했다. 지금 이 학생은 ‘중간고사에서 중학교 때보다 5등 올리기’ 목표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 중이다.


# 사례 ❸ _ 집착과 좌절감이 자책으로 변질되면서 급상승한 불안감

2년 동안 꾸준히 위클래스를 찾아오던 ○○가 1교시 중간에 불안한 눈빛으로 울면서 찾아왔다. 시선맞춤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희망을 잃었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너무 무섭다’며 한동안 흐느꼈다.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학생인데도 중학교 때 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쟤, 코 좀 봐. 신현준 닮았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거울을 보면 코만 보였다. 사람들이 자기 코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 같아서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친구관계는 멀어졌고, 학교 이외의 다른 곳은 가지 않았다. 방안에서 자신의 코 사진만 찍었 다. 코 수술을 하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굳게 믿은 이 학생은 부모님을 졸라서 겨울 방학 때 코 성형수술을 했다. 3월 신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좌절감이 밀려왔다. ‘바보같이, 왜 애들 말에 휘 둘렸을까. 수술 괜히 했나 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수술 전이 훨씬 예뻤던 것 같고,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던 만큼 좌절은 커졌고, 그 좌절만큼 자꾸만 자신을 자책했다. 자신의 행동이 한심 스럽고, 앞으로 계속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이야기를 나누며 진정을 시켰지만, 교실로 돌려보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했다. 심리상태가 불안정해서 부모님께 즉각 전화를 하고, 상담을 진행했다. 부모님 역시 최근 학생이 잘 하지 않던 애정표현을 하고, 무섭다며 함께 자자고 하는 등 생활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며 병원치료를 흔쾌히 받아들이셨다. 현재 이 학생은 약물치료로 불안증상을 완화하 면서 동시에 가족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돌봄, 지지 덕분에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 또한 위클래스에서 학생의 비합리적인 신념을 수정하기 위한 인지행동치료를 지속하고 있다.


자존감 낮고, 착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학생일수록 불안에 취약

불안은 학생들의 평온한 마음을 한순간에 휘젓고 가는 심리적 폭풍과 같다. 폭풍이 분다고 모든 나무가 뿌리째 뽑히지 않듯, 불안이 내 마음을 휘젓는다고 해서 모든 학생이 ‘병적인 불안감’을 호소하지는 않는다. 불안감은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이기 때문에 대부분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가라앉을 수 있다. 하지만 폭풍에 뽑혀 나가는 나무처럼 유난히 불안감에 취약한 학생들이 있다. 자존감이 낮은 학생들이다. 불안이나 공포를 견딜 수 있는 내적인 힘은 결국 자기긍정감에 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뜩이나 자존감이 낮은 학생들에게 ‘넌 정신력이 약해서 그래’라고 질책하는 것은 불 속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학생 스스로 ‘맞아. 나는 정말 정신력이 약해’라고 인지하면서 작은 난관이나 위험상황도 회피하거나 확대해석해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다시 불안과 우울함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한 ‘착한 사람 콤플렉스’와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학생들도 불안감이 높다. 아이들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주위 시선(특히 부모)을 의식하면서 억울해도 계속 참는다.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압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착하다’, ‘사람 좋다’는 평가를 받는 것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 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들은 모질게 자기비판을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무의식 때문이다. 쉬고 싶어도, 피하고 싶어도, 말하고 싶어도 표현하지 못한 채 꾹꾹 눌러놓다가, 결국 못 견디겠다 싶은 상황에서 불안증세가 나타난다. 이런 불안은 매사에 인정받는 사람이고자 하는 욕구와 인정받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운 불안으로부터 유래한다.


불안·두려움이 만들어 내는 비합리적 신념과 인지적 왜곡

과도한 불안과 두려움이 자신의 일상생활을 압도하면 아이들은 매순간순간 긴장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주변을 의식한다. 이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반복적으로 일정한 행동 즉, 손톱을 물어뜯고, 머리카락을 뽑고, 손톱에 피가 날 때까지 잡아 뜯기도 한다. 또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해 무언가에 집중하기 힘들어지면서 자신의 노력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내며, 맞서 견뎌낼 용기를 내지 못해 문제상황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이러한 상황들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들은 자신이 근심하던 ‘미래에 대한 부정적 예측’을 ‘확신’으로 받아들인다. 비합리적 신념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이다. 이 비합리적 신념들이 모여서 ‘비합리적 인지 왜곡’을 만들어 낸다.


모든 정신질환이 그렇듯이 과도한 불안과 두려움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왜 저렇게까지 생각할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비합리적인 인지 왜곡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도 깊은 생각이나 근심으로 끌 어온다던가,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대해 과도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던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면서 확대해석한다던가, 문제상황을 흑백논리로 접근하면서 문제해결방법 역시 너무 극단적으로 몰고 간다던가,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측하며 온갖 핑계로 무조건 회피하려고 한다. 이런 학생을 상담하고 나면 영혼까지 탈탈 털려 진이 다 빠진다.


학교에서 과도한 불안 학생 돕기

불안감은 ‘병적인 불안(불안장애)’이 아니라면 스트레스 수준과 개인의 성격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주변인의 적절한 돌봄으로 회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위의 사례에서처럼 병원으로 반드시 연계해야 하는 상황도 있지만, 흔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담임교사들이 할 수 있는 도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Tip ❶ _ 관심과 돌봄이 ‘약물’보다 중요하다

청소년 시기의 불안은 보호자의 적절한 돌봄과 관심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물론 심각한 불안과 두려움이 반복된다면 일차적으로 불안을 감소하기 위해 약물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약은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뿐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자신의 인지적 왜곡문제를 바로 잡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삶의 환경적 문제에 접근할 수 있어야 스트레스도 덜 받고 자신도 모르게 받아왔던 불안문제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Tip ❷ _ ‘불안’한 상황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기

불안·공포·우울로 힘들어하는 것은 계속 강조하지만 정신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막무가내로 ‘그냥 부딪혀보라’, ‘버텨보라’는 식의 접근은 부정적 정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오히려 ‘누구라도 충분히 불안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수용적 태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차분히 안정시킨 뒤에 한 계단씩 ‘조금만 용기 내보자’며 적응훈련을 해나가야 한다. 이 때 자꾸 서둘러서 재촉하면 조금 좋아지다가도 금방 제자리로 돌아가 버리거나, 회피 무의식을 자극해 숨어버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불안증상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되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학생에 게 인지시키면서 일 년 혹은 졸업할 때까지 시간을 두고 조금씩 개선해보자고 다독거려야 학생은 ‘작은 용기’라도 낼 수 있다.


Tip ❸ _ 비합리적 신념과 인지적 왜곡 수정하기

전문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객관적으로 발생한 상황과 학생이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상황을 구분하면서 학생이 지닌 비합리적 신념과 인지적 왜곡을 자주 논리적으로 언급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두 명이 너를 비난했다는 거구나. 반 전체가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라든가, ‘부모님께서 네가 성적이 오르기를 바라시는 거구나. 너에게 엄청난 기대를 하신다기보다’, ‘네가 싫다고 거절한다고 과연 사람들이 너를 나쁜 아이라고 판단할까? 넌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은 다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면서 왜 너의 말과 행동은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등 학생이 가장 힘들어 하고 있는 문제상황을 일 년에 1~2개 정도만 꾸준히 언급해주면서 비합리적 신념을 합리적 신념으로 수정해준다면 조금은 편안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김미리 전문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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