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캐스터 이세라는 TV프로 ‘영화가 좋다’(KBS 2TV)에서 “한 해에 쏟아지는 영화 1200여 편”이라 말한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도도한 영화’ 꼭지 오프닝 멘트다. 그렇게 많은 영화들 중에서 내가 ‘7년의 밤’(감독 추창민)을 본 것은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어서다. ‘남는 것 있는 장르문학’이란 제목의 ‘7년의 밤’론을 이미 쓴 때문이기도 하다.
‘7년의 밤’은 2011년 3월 23일 출간된 정유정 장편소설이다. 요즘 추세와 맞지 않게 무려 520쪽에 달하는 소설이지만, 한겨레와 조선일보 ‘2011올해의 소설’로 선정된 바 있다. ‘7년의 밤’은 그 해 연말까지 9개월 동안 21만 부쯤 팔린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소식(한국일보, 2018.4.4.)에 따르면 판매부수는 50만 부다.
우선 ‘남는 것 있는 장르문학’(장세진,시대현실과 비판의식,2014,북매니저)에 기대 소설 ‘7년의 밤’에 대한 평가부터 알아보자. 오영제의 가족에 대한 집착은 최현수의 그것과 또 다르다. 변태 내지 기행이 대세인데다가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도 돈의 위력만으로 안 되는 무엇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과 아내 길들이기가 그렇고, 범죄도 예외가 아니다. 대중일반의 입장에서 얼마나 통쾌한 일격인가? 바로 그것이다. 장대한 서사에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은연중 99%의 아무 힘없는 독자들을 카타르시스시키는 결구까지. 무엇보다도 ‘7년의 밤’의 강점은 문장이다. 문장은 그렇듯 단순한 이야기를 문학으로 끌어올리는 원천이다.
이런저런 문학상에 두 번 당선되었다곤 하나 정유정이 사실상 스타작가로 ‘등극’한 것도 문장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독자 없는 순수소설보다 오히려 팬들이 열광하는 중간소설이 문학적 가치를 가일층 달성할 수 있다. 주제의식 등 문학의 예술적 기능만 갖고 있으면 뭐하나, 사람들이 읽지 않으면 그딴 건 갑속에 든 칼일 뿐인데….
그렇다면 영화 ‘7년의 밤’은 어떤가? 3월 28일 개봉한 ‘7년의 밤’ 관객 수는 52만 5902명(4월 20일 기준)이다. 제작비 85억 원쯤으로 약 250만 명이 손익분기점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쫄딱 망한 ‘7년의 밤’이라 할 수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로 천만클럽에 들어간 추창민 감독의 차기작이란 화제성과 관심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첫 작품에서 성공한 뒤 내놓은 차기작이 전작에 비해 흥행성적 등이 부진한 상황을 일컫는 것)를 피해가지 못한 것인가. ‘부산행’(2016)으로 천만클럽에 가입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 ‘염력’(1월 31일 개봉)도 99만 명에 그쳤다. 덩달아 천만배우 장동건(오영제 역)과 류승룡(최현수 역)도 체면을 구기게 되었다.
장동건의 경우 2004년 일찌감치 ‘태극기 휘날리며’로 천만배우가 되었지만, 2011년 대작 ‘마이웨이’ 흥행실패 이후 ‘우는 남자’(2014)⋅‘VIP’(2017) 등 계속 흥행과 거리가 먼 배우로 남고 있다. 류승룡 역시 ‘광해, 왕이 된 남자’⋅‘7번방의 선물’(2013)⋅‘명량’(2014) 등 3년 연속 천만영화에 출연한 것과 다른 모습이다. ‘염력’에 이어 ‘7년의 밤’도 나가 떨어져서다.
알다가도 모를 것이 일반대중의 영화 보는 심리라 할까. 하긴 영화 ‘7년의 밤’은 소설보다 한참 모자라 보인다. 영화가 원작 그대로일 필요는 없다해도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를테면 50만 부나 팔린 인기의 한 요인이라 할 소설의 문장과 카타르시스 등을 영상으로 온전히 치환해내지 못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너무 난삽한 초반 펼침이 중구난방적 이야기 전개로 이어진 탓이 커보인다. 편집의 정교함과 디테일 묘사를 놓친 결과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패인은 개봉 시점이지 싶다. 영화화 결정 이후 뭐하느라 7년 만에 개봉할 수 있었는지 의아하다. 나름 공개되지 않은 사정이 있을 법하지만, 원작소설의 베스트셀러 후광이 이미 사라진 후일 듯해서다.
그렇다고 예사롭지 않은 호수의 영상미라든가 범죄자 심리와 행동거지 등을 실연(實演)한 류승룡⋅장동건 두 배우의 캐릭터 표현력까지 폄하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남의 자식은 죽였어도 내 새끼는 살리는 부정(父情)보다 자신의 외면으로 세령(이레)이 죽었다 자책하는 안승환(송새벽)의 최서원(고경표) 지키기가 오히려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