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흥행이나 드라마 시청률과 상관없이 다시 소환되는 배우들이 있다. 제작사나 방송국이 쪽박을 차도 배우들은 그것과 무관한 셈이다. 일례로 배우 장동건이 그렇다. 오래 전 이야기는 그만두자. 최근 그가 주연한 영화 ‘7년의 밤’이 흥행참패했음에도 장동건은 KBS수목드라마 ‘슈츠’의 주인공이 되어 팬들을 만나고 있다.
5월 19일 밤 종영한 ‘데릴남편 오작두’(MBC)의 유이(한승주 역)도 그렇다. 유이는 지난 해 1월 종영한 20부작 ‘불야성’(MBC)에서 이요원과 함께 주인공이었다. 워맨스(우먼과 로맨스의 합성어로 매우 애틋한 감정으로 친밀하게 지내는 여자끼리의 관계를 뜻하는 말.)의 이른바 ‘여여케미’로 관심을 모았지만, ‘불야성’은 4% 대 시청률에 머물렀다.
초라한 성적을 낸 드라마 주인공 유이가 1년 남짓 지나 같은 방송사 드라마에서 다시 주연을 맡았다. ‘데릴남편 오작두’는 3월 3일 1회와 달리 2회 방송에서 10.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찍었다. 24부작 방송 동안 두 자릿 수 아래로 떨어진 적도 있지만, 최종회 시청률은 11.7%였다. 주말드라마인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높은 수치는 아니다.
사실 ‘데릴남편 오작두’는 걸그룹 출신의 유이(애프터스쿨)와 한선화(시크릿, 장은조 역)의 연기대결로도 관심을 끌었다. 배역 비중으로 볼 때 유이가 한 수 위다. 실제 유이의 연기는 ‘불야성’때보다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수지(미쓰에이)나 혜리(걸스데이)처럼 가수에서 연기자로 거듭났다해도 크게 시비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주연급은 아니어도 한선화 역시 그렇다.
‘데릴남편 오작두’는 한승주 프리랜서 PD가 ‘촌놈’ 오작두(김강우)를 가짜 남편으로 삼았다가 진짜 사랑, 결혼에까지 이르는 드라마다. 한승주는 그렇게 소원하던 방송국 입사를 접고 오작두가 사는 시골로 내려간다. 시골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고 오작두와 함께 산다. 주변 인물들도 모두 다 잘 되는 이른바 해피엔딩이다.
일단 진짜 사랑의 의미, 그 밀당의 과정, 인간 심리 등이 꽤 리얼하다. 가령 작두가 하고 싶은 장인으로서의 일을 하게 해주는 승주의 마음과 행동들이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이 다시 생각해보자”는 승주에게서 35세 노처녀의 뭔가에 쫓기는 다급함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 희귀해진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우려는 의도인 듯하지만, 그러나 크게 감동되거나 깊이 공감되진 않는다. 한승주가 시대역행적 여성으로 보여서다. 유부남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김강우와의 조합이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덩달아 회차가 거듭될수록 분명해지는 러브라인이 좀 거역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4월 21일 방송에서 ‘깨끗이’를 ‘깨끄치’(유이), ‘햇볕을’을 ‘햇벼슬’(김강우)로 발음한 잘못과 상관없이 기억에 남는 명대사라 할까, 언어의 즐거움도 있다. “하늘은 공짜고 땅은 겁나게 비싸잖아요”, “개미 눈깔만하다”, “추억은 가슴속에 있을 때 아름다운거지” 등이다. 에릭조(정상훈)가 말끝마다 영어를 섞어 쓰는 대사는 거슬리지만, 은근히 웃기는 캐릭터로 재미에 한몫한다.
다만, 뭔가 좀 허술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연출은 아쉽다. 가령 3월 10일 방송에서 열차 난방이 빵빵할텐데 외투차림 그대로 앉아있는 승주가 그렇다. 또한 서울에서 열차가 다니지 않는 전북 진안을 가는데, 어떻게 관촌역이 나오는지 의아하다. ‘송하당길 45’라는 주소가 버젓이 나오는데, 진안읍내는 아니다. 현지촬영이 아님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또한 서사전개의 주요 매개체인 가야금을 두고 온 후 후속 묘사가 없는가하면 어느 대학인지 3월에 등록금을 내야해 그 달이 싫다고 한다. 취할 만큼술을 많이 먹은 에릭조가 다음 날 아침밥을 ‘고봉’으로 먹어대는 장면도 좀 아니지 싶다. 가야금 연주자 장은조의 상반신이 노출된 의상 역시 걸그룹 못지않아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