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8일부터 발효된 청탁금지법 세칭 김영란법이 어느덧 시행 2년을 맞고 있다. 발효 당시 분위기는 그야말로 나라를 온통 들썩이게 하는 나날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대한민국의 ‘청렴지수’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뒤집어보면 김영란법은 그만큼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 있었다는 말이 된다. 소위 맨입으로는 어떤 일도 되지 않는 뭐 그런 것 말이다. 이미 퇴직한 처지이지만, 진짜 부끄럽게도 내가 32년 넘게 몸담았던 교단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학부모 촌지에 교감⋅교장 승진시 금품수수 등 과연 교육자가 맞나 의구심이 생길 정도의 부정과 부패이다.
일례로 서울시 교육청 비리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서울시 교육청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게 더 큰 문제다. 장학사 시험이나 교감 승진, 교장임용, 그리고 학교의 시설공사 등에 검은 돈이 오가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것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라면 정녕 사람을 움직이는 건 돈이란 말인가?
그럴망정 국민권익위원회가 주최하는 ‘반부패⋅청렴관련사연수기공모’ 수상작들을 읽어보면 그렇지만도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세상이 부정과 비리가 만연한 검은 돈의 시궁창이라해도 한 발조차 빠지지 않은 채 그야말로 청렴하게 사는 ‘의인’들이 많음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전직 교사여서 그런지 나로선 대상(1등상)인 ‘청렴은 가장 멋진 유산!’(문복례)보다 최우수상(2등상) 수상작 ‘보이지 않는 첫 마음’(남윤영)이 더 심쿵하게 와닿는다. 먼저 ‘청렴은 가장 멋진 유산!’은 남편을 사별한 화자가 중소기업체에 취직해 정년퇴직하는 이야기다. 상사에 대한 명절인사조차 하지 않는 직장생활에서 시련을 겪지만, 결국은 퇴직후 회사에 남아달라는 요청을 받기까지 하는 화자의 청빈한 삶이 그려져 있다.
이에 비해 ‘보이지 않는 첫 마음’은 새내기 교사가 교장의 부당한 명령에 고민하는 이야기다. 교장으로부터 장학금 전용과 허위 공문서 작성을 지시받은 새내기 교사의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사실 교장의 부당한 명령 같은 그런 일은 민주화가 된 지 오래인 요즘에도 비일비재 일어나곤 한다. 화자가 시간적 배경으로 제시한 17년 전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물론 글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새내기 교사의 학생에 대한 열정이 교장의 부당한 명령을 이겨낸 것이라 할까. 근데 아무래도 좀 싱겁게 끝나버린 느낌이다. 교장이 자신의 잘못을 어떤 계기로 깨닫게 된 것인지 구체적 동기화가 제시되지 않아서다. 짐작컨대 동료들과 모임을 갖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새내기 교사에게 교장이 백기를 든 것이 아닌가 싶다.
현실에서 흔하지 않은 그런 ‘순돌이’ 교장의 ‘보이지 않는 첫 마음’을 읽다보니 재임시절 본의아니게 겪은 아픈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2009년말 나는 어느 교장공모 전문계 고교의 지원자였다. 그런데 학교운영위원회 1차심사를 마치고 귀가하여 해당 학교 홈페이지에 탑재된 다른 지원자들(5명)의 학교경영계획서를 살펴보다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내 학교경영계획서를 표절한 교사가 있었던 것이다.
순간 솟구치는 불길한 예감을 어쩔 수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나는 1차심사에서 탈락했다.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탈락한 것일까? 그때, 섬광처럼 반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돈, 검은 돈이다. 나는 심사위원인 학교운영위원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진짜 당황스럽게도 금품을 요구당했다.
“200만 원씩 5명만 끌어 들이면 안전합니다. 1,000만 원 쓰면 3배수 안에 들게 해줄테니 그건 걱정마시고. 지난 번 조합장선거에서 떨어져봐 아는데 돈 안 쓰면 절대로 안돼요!”
실로 귀를 씻어버리고 싶은 얘기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직방 거절하지는 못했다. ‘돈으로 교장을 사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만약 거절하면?’ 그런 생각이 실타래처럼 얽혀 의식을 쇠꼬챙이로 쑤셔댔다. 사실 직전 교장공모에서 깻잎 한 장 차이로 탈락한 후 절치부심하며 기다려 온 기회였다.
말미를 달라며 잠시 시간을 벌었지만, 역시 검은 돈을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억당천불’이란 신조어가 횡행하는 ‘농⋅축협 조합장선거도 아니고 교장공모에서 무슨 금품수수’냐는, 뭐랄까 교직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내게는 교장직을 돈으로 사놓고 학생들에게 사회 정의와 올바른 가치관을 운운할 수 있는 철판 같은 배짱이나 황정민 뺨치는 연기력이 없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탈락당하고 보니 돈을 안써 그리 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솔직히 눈 찔끔 감고 달랄 때 그냥 줘버릴 걸 하는 후회가 일기도 했다.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란 소릴 듣는 부부교사인 내가 돈이 없어 못쓴 건 아니다. 검은 돈, 신성해야 할 학교를 부패의 온상으로 만들고, 나아가 사회를 혼탁하게 하는 검은 돈이기에 애써 안쓴 것이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아비로서는 자식 앞에 떳떳히 서기 위해 검은 유혹을 뿌리친 것이다.
어느 공직자보다도 청렴하고,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교사로서 그런 결정을 한 나는 나름 자부심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이제 보니 그것이 나만 우쭐해 할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또 다른 최우수상 ‘청렴 보신탕’(김관주)보다도 우수상 수상작 ‘봉투 속에 담긴 소중한 선물’(유철민)에 눈길이 더 쏠리는 이유이다.
‘청렴 보신탕’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야생으로 보내려 한 구렁이를 어쩌다 당숙에게 주게되어 한바탕 겪는 소동을 그린 글이다. 절로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긴 하지만, 내게는 스승의 날 에피소드를 추억해낸 ‘봉투 속에 담긴 소중한 선물’이 더 심쿵하게 와닿는다. 스승의 날을 서른 번 넘게 맞이하면서 작품 속 철민이처럼 고민했을 제자들 생각은 해본 적 없는 부끄러운 선생님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어서다.
하지만 20년 전 철민이 담임처럼 “아이들이 가져온 선물을 다 돌려보낸”선생님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 무렵도 말이 많긴 했지만, 나 있던 고교에선 학생회가 앞장서서 모든 교직원에게 카네이션과 함께 작은 선물을 전한 것으로 기억이 남아 있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많이 달라졌지만, 그런 분위기는 한동안 쭈욱 이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한편 또 다른 우수상 수상작 ‘벚꽃 흐드러진 날에’(조정임)도 인상에 남는 작품이다. 끼어들기로 발생한 교통사고에서 10년 전 불발에 그친 인사청탁 사실을 공개한 ‘벚꽃 흐드러진 날에’는 5급 사무관 승진에 얼마 하는 식의 공직사회 비리를 말끔히 잊게 해준다. 군수나 시장 등이 승진 대가(代價) 뇌물수수로 구속되는 보도가 무색해지는 통쾌한 반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은 내가 공모 탈락후 두문불출 한 달 만에 금품 요구 사실을 실토하니 주변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교장 승진하는데 그 돈만 들겠냐”, “천만 원 요구했으면 적게 말했구만” 따위가 그것이다. 그런 ‘핀잔’을 듣고 애꾸눈 나라의 두 눈 달린 병신을 떠올리며 자괴감의 수렁에 빠지곤 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그랬기에 이렇듯 떳떳하고 당당한 전직 교사로서 행복을 맛보는게 아닐까. ‘반부패⋅청렴관련사연수기공모’ 수상작들이 내게 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