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면 더 좋은 특성화고로 오세요~”

2018.10.01 09:00:00

특성화고 교사 좌담회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에서 직업교육은 ‘실업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경시되어 왔다. 직업교육을 일반교육과 구별하는 실업교육이나 진학 실패자에게 하는 기능교육 정도로 바라보는 인식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직업교육을 하지 않는 교육기관이 얼마나 될까?


올 6월 말 기준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10.5%에 이르고, 청년취업자의 30%는 전공과 일자리 간 미스매치를 겪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인구 구조 및 산업구조의 급변도 예상된다. 때문에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특성화고의 역할과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2019학년도 신입생 모집을 앞두고 마련한 특성화고 교사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직업교육이 최고의 복지정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좌담회에는 김민용 서울 강서공고 교감, 김윤진 서울 선일이비즈니스고, 진선미 서울 동구마케팅고 교사가 참여했다.

 


해마다 입시철이면 특성화고들은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올해 전망은 어떤가요?
진선미

특성화고의 2학기는 늘 전쟁터죠. 올해도 예외는 아닐 것 같아요. 특히 특목고와 자사고 신입생 선발이 후기에 한꺼번에 이뤄지는 바람에 오히려 더 불리해졌다고 생각됩니다.


김윤진

저 역시 신입생 유치가 걱정입니다. 학벌주의 폐단을 없애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정작 내 자식만큼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이율배반의 논리가 여전해 설득이 쉽지 않죠.


김민용

전 좀 긍정적으로 보는데요. 학령인구가 줄고 신입생 모집도 갈수록 어려워지는 추세지만 4차 산업혁명에 맞춘 학과 개편과 선취업 후진학 확대, 현장 실습개선 등 긍정적 요인도 많아 기대를 걸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자녀를 특성화고에 보내고 싶어도 선뜻 내키지 않은 ‘찜찜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김민용

그런 분위기가 있다는 것 잘 압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세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등골 휘도록 교육비 투자했지만, 대학 나와 제대로 밥벌이하는 친구가 몇이나 됩니까. 열심히 공부해 대학 갔어도 결국 취업 준비하는 기간만 늘어난 것 아닌가요. 반면 특성화고는 직업 중심 학교입니다. 그래서 대졸자보다 직업을 갖는 데 유리하죠. 그뿐 아니라 직장을 다니면서도 대학에 진학하는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특성화고를 전체 고등학교의 50%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만성적인 청년 실업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요.


 

김윤진

입학상담을 하다 보면 학생보다 학부모 설득이 훨씬 쉬울 때가 있어요. 처음엔 내키지 않아 하지만 입학부터 교육과정, 졸업 후 취업까지를 설명하면 ‘믿고 맡길 테니 잘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많아요. ‘일찌감치 직장도 잡고 원하면 대학에도 갈 수 있으니 일반고 보다 낫다’는 말씀들을 종종 하십니다.


일반고와 특성화고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학생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김윤진

어린 학생인줄만 알았는데 막상 만나보면 매우 현실적인 사고를 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의식주는 해결할 수 있는지, 자신의 적성과 소질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그래서 입학설명회 때면 선배들의 취업 실적에 가장 귀를 쫑긋 세웁니다.


진선미

저는 ‘선진로→선취업→후진학’이라는 로직(logic)으로 접근합니다. 일반고든 특성화고든 하고자 하는 진로를 명확히 하고, 비전을 세운 후에 선택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줍니다. 대학이 먼저가 아니라 직업이 먼저임을 강조하죠.


김민용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고교 진학이 이뤄져야 합니다. 일찌감치 자신에 맞는 진로를 탐색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성화고의 가장 큰 장점 아닐까요. 설사 실패한다 해도 얼마든지 회복할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특성화고 선생님 중에는 중학교를 상대로 한 홍보활동에 고충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진선미

대부분 선생님들은 잘 도와주십니다. 하지만 간혹 특성화고 선생님들을 영업사원이나 잡상인 취급하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아요. 흔한 말로 문전박대는 물론이고 아예 학생들에게 특성화고를 선택하지 않도록 강요하는 분도 있다고 해요. 사실 특성화고 홍보는 단순한 신입생 모집 차원을 넘어 학생들의 진로 선택 폭을 넓혀주고 합리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무작정 귀찮아만 하실 때면 같은 동료교사로서 마음에 상처도 받습니다.


김윤진

솔직히 입장 바꿔보면 중학교 선생님들도 부담스러울 것이란 생각은 듭니다. 학교마다 홍보한다고 찾아오지, 학사 업무 몰리는 시기여서 일은 많고, 학생들 진학 지도까지, 힘든 상황이라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홍보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달리 방법이 없어요. 다양한 홍보기회를 주는 학교도 있지만 반대로 형식적으로 해치워버린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적잖이 있거든요.


김민용

유럽에서는 70%의 학생들이 청소년기에 직업교육을 받고 있고, 이를 토대로 적극적인 진로지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일반계 선호도가 높고 학생보다는 학부모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죠. 중학교 선생님들께서도 이점을 눈여겨보시고 학생의 적성과 흥미가 진로와 미스매치가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학부모들은 잘 모르는 특성화고만의 ‘숨겨진’ 매력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김윤진

특성화고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취업이 잘된다는 것입니다. 취업 실적을 보면 깜짝 놀라는 학부모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특성화고는 자격증 취득을 위한 방과후학교, 전문가와 함께하는 프로젝트 학습, 기업체 면접 연수, 리더십 캠프, 해외연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실시하고 있어 내실이 탄탄하죠.


진선미

저는 두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하나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창시절을 보낸다는 겁니다. 선생님들이 직접 상담을 통해 모집하다 보니 고교 3년간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습니다. 또 고교 취업 장려금, 취업연계장학금, 고졸 후 학습자 장학금 등 지원사업이 많아요. 산학일체형도제학교에 진학하면 재학 중에 급여를 받고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는 길도 열려있고요.

 

어려움이 많은 만큼 보람도 크실 것 같습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학생들이 있으면 말씀부탁드립니다.
김민용

제가 공고 교사로 있을 때 3학년 학생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당시 20명을 뽑았는데 고졸자는 이 친구 한명이었어요.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된 후 군대도 다녀왔고 서울시내 유명 대학에 진학해 졸업장도 받았습니다. 얼마 전 7급으로 승진 했다며 연락을 해왔더군요. 이른 나이에 직장을 잡고 승진에 대학졸업장까지 손에 쥔 모습을 보니 기특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진선미

우리학교는 주로 금융권 진출이 많은데 은행 중에는 대학과 MOU를 맺고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곳이 있어요. 실제로 한 학생은 모 시중 은행에 들어 간지 1년 만에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으며 대학생활을 하고 있더라고요.


김윤진

특성화고는 직접 경험해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중학교 때 성적이 하위권이던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 공기업에 취업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요. 또 언니가 특성화고에 다닐 경우 동생도 같은 학교에 진학하는 케이스도 많고요. 입소문 효과를 톡톡히 보는 셈인데 겉보기와는 달리 정말 알찬 곳이 특성화고 입니다.


학생 모집 못지않게 취업에 대한 고민도 크실 것 같습니다.
김윤진

고졸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능력 중심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비록 학력은 낮을지 몰라도 실력만큼은 어디 내놔도 손색없으니 공정하게 평가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선미

한 가지 덧붙인다면 기업체에 근무하면서 대학에 진학하는 특성화고 출신들에게 출퇴근에 대한 인센티브를 줬으면 합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이어서 기업체의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민용

조심스럽지만 병역 면제 혜택과 같은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성화고 졸업 후 취업한 학생들에게 병역 면제와 같은 특례가 주어진다면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특성화고 교사들의 근무여건은 좀 어떻습니까.
진선미

사실 ‘교사 반, 영업직 반’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학생들을 위해 여기저기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니 어쩔 수 없잖아요. 씁쓸할 때도 있지만 학생들 장래를 생각하면 ‘을’이 되는 것도 참고 견뎌야죠.


김윤진

저는 한때 일반고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당시와 비교해 보면 특성화고 업무량이 훨씬 많습니다. 중학교에 나가 홍보하는 것, 기업체를 알아보는 것, 개인별로 자기소개서와 면접 지도를 해주는 것, 취업 후에 이뤄지는 추수지도, 그리고 다양한 사업과 프로그램 실시에 따른 서류 작업 등 일반고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또한 전문교과의 경우에는 보통교과와 달리 산업 수요의 변화에 따라 가르치는 과목과 내용이 바뀌는 어려움도 있고요. 업무량이 많아지면 수업의 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특성화고의 학급당 인원수를 감축하거나 교사 정원을 늘려 교사에게 가해지는 업무 부담을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용

공립과 사립 교원 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공통적으로 보면 특성화고 교사들의 수업 시수 경감 및 행정 업무 축소가 시급하다고 봅니다. 아울러 우수한 교사들이 특성화고 근무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근무개선 방안 마련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특성화고를 중심으로 한 직업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진선미

직업교육이 교육의 최고목표가 돼야 합니다. 학교 교육목표의 끝은 한 사람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데 있기 때문이죠. 특성화고는 직업교육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윤진

바라던 기업에 취업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특성화고가 학생들의 성공적인 길라잡이가 될 수 있게 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김민용

고졸 취업자에 대한 지원 대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묻지마 진학’과 같은 낭비를 해소할 수 있어요. 교육 당국도 말로만 지원 운운할 게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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