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어디서 살 것인가

2018.09.27 09:18:09

꽃무릇이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지난 봄 친지에게 꽃무릇 구근을 한 소쿠리 얻었습니다. 아파트 화단에 심은 꽃무릇을 누군가 모두 뽑아서 버렸다고 속상해 하시길래 얻어다 하루 종일 화단에 남편과 심었습니다. 마늘처럼 생긴 구근을 한 쪽씩 심어두고 가을을 기다렸습니다.

 

며칠 전부터 긴 줄기를 올리고 있더니 붉고 화사한 꽃무릇이 군데군데 피어납니다. 땅에 적응을 못한 것도 많은지 드문드문 피어 있습니다. 아침이면 베란다에서 꽃무릇을 감상합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할 때도 한참을 서서 쳐다보았습니다. 제가 감상하고 있을 때 지나던 할머니 한 분이 꽃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십니다. ‘꽃무릇’이라 가르쳐드리고 함께 붉은 꽃송이가 바람에 사르르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낯선 이를 낯설지 않게 여기는 것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즐거움을 나누었기 때문이겠지요. 저와 할머니처럼 말입니다.

 

어릴 적 우리집 마당에는 봉선화와 채송화가 많이 피었습니다. 여름이면 열 손가락에 봉선화물을 평상에서 동네 아이들과 아줌마들이 함께 들였습니다. 우리들 옆으로 노란 수세미꽃이 피고 호박덩굴이 담장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가을이면 잘 익은 누렁호박으로 호박죽을 끓여서 함께 먹었습니다. 소도시의 변두리에는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 대문 앞에서 열무를 다듬는 어머니와 아주머니가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셨습니다. 겨울이면 싸고 흔한 명태를 한 상자씩 사 다듬어 마당과 옥상에 주렁주렁 걸어서 말렸습니다. 겨우내 먹을 양식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꽁꽁 언 명태 한 마리를 걷어 껍질을 벗기고 저며 주시는 명태살을 초고추장찍어 먹는 날은 정말 횡재한 날이었지요. 까만 어둠이 내린 밤이면 이불 아래 발을 옹기종기 넣곤 발라주는 살을 냉큼냉큼 받아먹었습니다. 바람이 맵게 불고 눈발 히끗히끗한 겨울밤이면 그 맛이 그리워합니다.

 

저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사람이 사는 골목 공간의 아름다움과 따뜻함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유현준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골목 공간의 편안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 도시의 차가운 거리는 익명성으로 포장되어 무표정함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은 편안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도리어 칼날이 되어 범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은 자유로운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지만 얼굴을 가린 악성댓글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만들 듯이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활과 건축과 도시를 종횡무진하는 그의 독특한 시각과 통찰을 통해 제가 사는 공간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철학적 사유가 곁들여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건축에 대한 그의 인문학적 해석은 읽는 내내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꽃무릇이 피는 아름다운 가을이 왔습니다. 벌써 추수를 시작한 논이 보입니다. 노랗게 익어가는 들과 붉고 노란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산이 모두 풍요로운 계절입니다. 행복하십시오.^^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지음, 을유문화사, 2018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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