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최정숙 선생 정신 기려
[한국교육신문 정은수 기자] 부룬디에 우리나라 교육자 고 최정숙 선생을 기리는 ‘최정숙여자고등학교’가 개교했다.
지난달 10일 아프리카 부룬디공화국의 수도 부줌부라 인근 무진다 지역에 부룬디 최초의 여자고등학교가 개교했다. 부룬디의 첫 여고지만 이름은 대한민국 교육자 고 최정숙의 이름을 땄다.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과 한국희망재단이 여성 교육에 앞장섰던 최 선생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이 학교를 세웠기 때문이다.
최정숙여고는 부룬디 교육부가 제공한 부지에 설립됐다. 6개 교실과 기숙사, 도서관, 식당, 컴퓨터실, 다목적실, 행정동 등을 갖췄다. 학생 정원은 225명이다. 학생은 부반자, 부줌부라, 치비토케, 카옌자 등 4개 지역에서 3년간 단계적으로 선발되며, 교원은 부룬디 교육부에서 지원한다.
최정숙 선생(1902∼1977)은 1914년 제주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신성여학교를 1기로 졸업하고 서울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관립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최선생도 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됐다. 고문과 매질을 당한 후 석방된 그는 곧 다시 3.1 운동에 참여한 79명의 소녀결사대의 주모자로 체포돼 옥고를 치르고 그해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고향 제주로 내려온 그는 여수원을 세워 여성교육에 앞장섰다. 여학교 설립을 위한 기금을 모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녀공학인 명신학교를 설립했다. 명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과로로 쓰러져 치료받는 사이 명신학교는 제주공립보통학교에 흡수 통합됐다.
이후 그는 전남 목포의 소화학원, 전주의 해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그러나 해성학교에서 ‘조국의 산하’라는 노래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다시 체포됐다. 석방된 뒤 그는 경성여자의과전문학교에 입학하고 1944년에 제주에서 ‘정화의원’을 개원해 무료 진료를 했다.
광복 후 최 선생은 드디어 여학교 설립의 꿈을 이뤘다. 1949년에 신성여자중학교, 1953년에 신성여자고등학교를 신설해 각각 초대 교장을 지낸 것이다. 가난한 이웃을 돌보기 위해 살았던 최 선생은 무보수로 1960년까지 교장직을 역임하다 퇴직했다.
퇴직 후에는 대한적십자사 제주도지사 부지사장으로 활동하다 1964년에는 초대 제주도교육감이자 전국 첫 여성 교육감으로 선출됐다. 그는 교육감을 역임하면서 대정여중·고, 한림여중·실업고 등을 설립하고, 제주교육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도서관 설립, 학교에 풍금 보내기 운동 등의 사업을 했다.
이런 최 선생의 삶을 본받아 그가 설립하고 교장으로 재직한 신성여중·고 동문이 모여 가난한 나라에 여자고교를 설립하기 위해 모금을 하게 된 것이 최정숙여고의 시작이었다. 이후 한국희망재단과 함께 모금을 확장하고 부룬디 교육부의 협조를 받아 8월 6일 준공식을 하고, 개교하게 됐다.
부룬디는 중부 아프리카에 있는 공화국으로 인구는 1110만 명 정도다. 벨기에 통치를 받다가 1962년에 독립했으나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이어진 내전으로 30만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현재 1인당 GDP는 285달러(2016년 세계은행 기준)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