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침해, 이대로 당해야 하나!

2018.11.29 09:10:04

한교닷컴(2018.11.12.)에서 ‘교육행정직으로 전락하는 교사들’이란 칼럼을 읽었다. 그 칼럼을 읽으며 주목한 것은 “교육활동이 아닌 것은 교사의 업무에서 분리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3년 전 근무한 고교에서 그런 업무를 실제로 맡았던 기억이 절로 떠올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일선 학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놀랍고 안타깝다.

 

나는 그로 말미암아 명예퇴직했는데, 칼럼에 따르면 대부분의 단위학교에선 교사에게 본연의 일 아닌 업무분장이 맡겨진다. 그로 인해 교사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한다. 가령 “CCTV 관리, 소방안전ㆍ소방훈련 관리, 다양한 훈련 등 보는 시각에 따라 교육행정직의 업무인데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사들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잡무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경기도 고교 L교사는 “어떻게 시설의 측면에서 볼 수 있는 CCTV 구입과 관리가 교사의 업무이냐. 엄연히 소방안전관리는 교육행정직의 업무분장인데, 아직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소방훈련, 민방위훈련까지도 애궂은 교사가 담당하고 있다”며 “교육부나 시ㆍ도교육청에선 교사와 교육행정직의 업무영역의 구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때 만 59세의 내가 맡은 업무는 자그만치 13가지나 된다. 좀 지루하겠지만, 일일이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교직원협의록 작성, 장학생 선발 및 심의회 운영, 학교홍보 계획 수립 및 추진, 보도자료 수집 및 발송, 행사사진 촬영, 에너지 절약(학생 및 교사), 안전교육⋅홍보, 재난훈련교육(전교생 대상), 학부모 관련, 학부모회 조직 운영, 다문화가정 관리, 국제이해교육, 교육복지 및 탈북학생지도, 농산어촌교육발전 특별법 등이다.

 

알고 보니 ‘담임 업무배제’라는 공문 때문 그리된 것이란다. 그럴망정 설마 도교육청이 나이 많은 원로교사에게 일을 몽땅 맡기라고 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탁상행정식으로 툭 내부치듯 ‘담임 업무배제’ 공문을 내려보낸 교육청이나 그걸 곧이곧대로 시행, 원로교사 대접은커녕 신규때보다도 더 많은 업무를 준 학교 모두 도대체 납득되지 않았던 기억이다.

 

13가지 실천내용을 보면 그중에는 과연 대한민국 교사가 해야 할 일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들도 있다. ‘에너지 절약’ㆍ‘안전교육’ㆍ‘재난훈련교육’ 등이 그것이다. 터진 입이라고 툭하면 교사업무 경감 어쩌고 해대는 교육당국의 ‘수사놀음’의 허구성을 직접 만난 듯하여 씁쓸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업무분장이라해도 과장이 아닐 듯하다.

 

학생이나 학부모의 교사 폭행ㆍ폭언 따위만 교권침해가 아니다. 이런 업무분장과 또 다른 행정실의 교권침해도 만만치 않다. 오래 전부터 만연되어 있다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교권침해가 아주 자연스럽게 ‘자행’되고 있다. 가령 새파랗게 젊은 행정실 직원이 연상의 교사에게 전활걸어 “요구한 돈을 서명하고 가져가라”고 명령하는 것이 예사이다.

 

교사들이 학생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일텐데도, 선생님을 숫제 수직계통의 부하직원쯤으로 생각ㆍ처신하는 행정실과 직원들이 비일비재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대규모 학교의 경우 행정실장(5급 사무관) 아래 6급 행정계장(편의상 용어)에게까지 교사가 결재를 구하게 하는 시스템도 교권침해의 단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계속 그런 교권침해를 당해야 하나? 물론 아니다. 행정실의 교권침해는 직원 전화에 교사들이 ‘네, 알겠습니다’ 하며 도장들고 뽀르르 달려가니 생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이유인데, 유감스럽게도 그 점을 힘주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무릇 교권침해는 교사들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법이 교사의 신분을 보호한다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분명한 것은 어느 학교나 때를 막론하고 저절로 챙겨지는 교권이 아니란 사실이다. 특정단체처럼 머리 띠 두른 거리 투쟁까지는 아니더라도 교사 스스로 적절히 대응하고 지켜낼 때 비로소 교권은 행복한 교사의 조건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교육행정직으로 전락하는 교사들’에 주목한 또 다른 이유다.

장세진 전 교사, 문학⋅방송⋅영화평론가 yeon5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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