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심리학
지역 도서관 반납 코너에서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나의 습관이 걱정되어서였다.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특히 옷을 버리지 못하고, 버리려고 정리했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들여놓고 만다. 몇 년씩 입지 않는 옷도, 수십 년 된 옷도 버리지 못한다. 그 옷을 살 때의 추억과 이야기를 잃는 것만 같아서다. 가난하던 시절엔 특히 옷값이 비쌌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버리지 못한다. 그런 버릇을 없애려고 최근 1년 이상 옷을 구입하지 않는 의도적인 노력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이리라.
저자는 최근 연구 결과를 토대로 미국 전체 인구의 2~5%인 600만~1500만이 저장 강박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소개한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된다고 일반화시켜 볼 수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그렇고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볼 수 있는 증상이 아닌가. 발 디딜 틈도 없이 온갖 잡동사니로 들어찬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공익단체가 나서서 설득하여 청소를 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사소한 물건을 비롯하여 길을 가다 버려진 잡동사니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방마다 가득가득 채우는 저장 강박증은 사람마다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 크게 보면 다 쓰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벌고 소유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부의 축적, 배가 고프지 않으면서도 끝없이 음식을 찾는 식탐, 타고난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성형중독에 시달리는 증상 등 깊이 생각해보면 인간이 지닌 저장 강박 사례는 연구 대상이 분명하다.
두 번째로 나는 책을 버리지 못한다. 거의 활자 중독에 가깝다. 언젠가 다시 읽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선물로 받은 책은 아예 버리지 못하고 오래 전에 구입한 책들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내놓지만 극히 적다. 최소한 자기 집값의 1% 정도는 책이나 예술 작품이어야 한다는 지론에 동의하면서 책은 지출 순위 1위를 차지한다. 이것 역시 저장 강박이라고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요즈음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날마다 한 권이라도 내놓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니 책이 내 버릇을 고치게 한 셈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대부분의 저장 강박을 지닌 사람들도 자신의 문제점을 알고 인정하지만 버리지 못하는 생활로 돌아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저장 강박의 심리적 측면을 지적한다. 가난과 결핍이 원인이라는 진단에서부터 가족애의 결핍이나 무의식에 남아있는 상처 때문이라고. 그러니 저장 강박을 치료하려면 개인사나 가족사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노력이 먼저라는 것.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여 버리는 행동만으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저장 강박증을 진단하고 상담하며 치료까지 도와주는 단체도 있다.
소유한 물건이 나를 소유하기 시작할 때
저장은 인간의 본능이다. 꿀벌이 자신에게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꿀을 저장하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는 것처럼, 인간도 꿀벌을 닮았다. 그러나 그 저장 본능이 일상의 삶을 파괴할 정도로 심한 경우를 저장 강박으로 본다는 점에서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저장 강박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물건에 쌓여서 옴짝달싹 못하는 삶, 물질에 치여서 더 나은 삶의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의 몸도 저장 강박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가면 섭취하는 음식의 양이 줄어들까 봐 우리 몸 스스로 음식을 축적해서 뱃살을 찌운다고 한다. 유목민 시대와 수렵 시대를 거친 인간의 몸조차도 영양분을 비축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젊었을 때보다 덜 먹는 데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체중이 그 증거다. 이 또한 심리적인 측면이 작용하는 증거로 보인다.
비움의 철학이 무소유로 발전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몸도 비우는 삶을 넘어 마음을 비우는 삶을 지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잡동사니로부터 습격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책이다. 인간의 탐욕은 끝을 알 수 없어서 탈이 나지 않으면 도대체 언제 멈출 줄 모르는 고장 난 자동차가 아닐까?
날마다 뭘 더 버리고 누군가에는 꼭 필요한 물건이 없는지, 내 마음의 저장고에서는 무엇을 덜어내어 마음의 평수를 넓힐 것인지 돌아볼 생각이다. 자신의 문제점을 알고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새로운 에너지가 나를 일으켜 세우는 걸 느끼고 싶다. 먼 길을 가려면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단순명료한 삶의 모습을 견지하고 싶게 만든 이 책의 저자에게 감사한다.
소유하지 않는 고양이에게 배우는 미덕
그러고 보니 날마다 목욕을 하지 않아도 냄새가 나지 않는 우리 집 스코티시폴드 고양이인 '꿈'이가 사는 모습 속에 답이 들어있다. 적게 먹고 몇 시간 동안 몸을 핥으며 청소하는 모습, 단 한 벌의 옷을 깨끗하게 건사하는 모습, 특히 자신의 배설물을 꼼꼼하게 숨겨서 냄새조차 나지 않게 갈무리 하는 모습을 보며 배운다. 저 녀석처럼만 살면 된다고. 녀석의 삶에는 소유가 없는 존재의 미덕만 있으니.
녀석은 환경을 파괴하지도, 식탐을 부리지도 않으니 나보다 나은 듯싶어서 부끄럽다. 오늘날 인간이 더 편리하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더 많이 소유하고 지배하기 위해 자연환경을 무자비하게 개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오염된 공기의 공포는 이미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으니 인간의 저장 본능이 가져온 참담한 결과다.
같이 있고 싶어 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센스는 신사답기까지 하니 철학자가 따로 없다. 더구나 혼자서도 잘 사는 모습은 도를 닦는 스님 같아서 대견하다. 그러니 사람이 동물보다 더 나은 점이 무언지 녀석을 기르며 생각하곤 한다. 더욱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공감력까지 갖추었으니 금상첨화다.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 몸짓언어로 서로 통하기 어려운 존재니 인간의 위대함이 언어를 사용함에 있다는 전제를 돌이켜 보게 된다.
고양이는 현재를 살 뿐, 저장 강박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르니 배움이나 깨달음은 마음만 있으면, 세심하게 관찰하면 그 어떤 대상에게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잘 나가는 저자가 쓴 책이 아니어도, 풀 한 포기에서도 얻을 수 있으니 세상에 스승 아닌 것이 없다. 살아가는 데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음을, 저장하기를 그만두는 순간, 무소유의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음을!
많이 먹지도, 많이 버리지도 않는 고양이는 사람처럼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녀석은 다만 현재를 살 뿐이다. 아니, 집사가 다 알아서 해주니 오히려 내가 고양이를 모시고 사는 듯싶다. 실제로 고양이는 주인을 친구나 그 이하로 생각한다던가. 사람과 살 수 있도록 최적화된 녀석의 삶이 부러울 때도 있다. 걱정 없이 늘 잠만 자고 편히 노는 모습이라니! 저장은 아예 하지 않는 녀석은 먹고 닦고 잠을 자고 노는 걸 좋아한다.
특히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낼 줄 안다. 책 속의 지혜가 녀석이 사는 모습 속에 다 있음을 발견한다. 친구 삼아 놀아주면 늘 웃음을 안겨주는 녀석. 커다란 눈을 껌뻑이는 것만으로 그르렁거리며 행복해하는 그 단순한 매력 속엔 나처럼 저장 강박을 걱정하지 않는 철학자가 살고 있으니 가끔은 녀석을 흉내 내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러니 이 책의 비결은 우리 집 고양이가 답이다. 단순하게, 깔끔하게, 지금을 사는 것!
관계의 정리, 존재를 위한 시작
어쩌면 부지런히 책을 읽고자 하는 것도 정보나 지식을 저장하고 싶은 발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냥 읽음으로 끝나도 될 텐데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것도, 크게 보면 저장 강박이 아닐까 생각하니 걱정이 된다. 인간은 기록을 남기는 고등동물이다.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고 명예를 소중히 하며 좋은 모습으로 저장되고 싶어서 고양이처럼 편안히 살지 못하고 현재를 즐기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확장해서 생각하니 인간의 거의 모든 행위는 저장 강박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레 이른다. 생명체는 이기적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본능적으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존재하고 살아남기 위해 녹색식물은 태양과 물, 이산화탄소로 광합성 작용을 하며 영양분을 저장한다. 생태계 또한 끝없는 먹이사슬을 거치며 생명을 잉태하고 양분을 저장하며 개체의 번식을 이어간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저장 강박이라는 생존 본능이 있기에 진화를 거듭해 왔으리라.
이 책에는 저장 강박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을 이룬다. 책 제목에서 풍기는 심리학적 접근은 생각보다 약한 편이다. 아직도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아파트에 가득 쌓인 잡동사니로 인해 살던 집이 무너진 일본 사람, 부유한 집에서 잘 살았으나 부모가 죽은 뒤에는 두문불출하며 잡동사니에 묻혀 살다가 형제가 함께 죽음에 이른 미국 사람 이야기, 기르는 고양이의 개체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서 더 이상 기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줄이지 못해 일상이 망가진 동물 애호가 등. 사례는 넘치나 그 원인이 되는 심리학적 접근은 기대한만큼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서 한숨을 쉬면서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제나마 벽장마다 가득한 옷들을 재활용으로 내놓거나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버려야 살 수 있다! 행동으로 옮기도록 떠미는 책이 좋은 책이다. 이는 집착을 버리는 행동이니 바람직하리라. 살아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훨씬 적으니 단순한 삶을 지향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짐을 덜어서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고 싶으니.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사회적으로는 이미 홀가분해졌다. 강사 자리를 원하는 요청마저 떨구고나니 일상이 자유, 그 자체다. 인생의 황금기가 바로 지금이니 더는 뭔가를 더 얻기 위한 저장 활동을 조심하리라.
이제는 개인적으로 홀가분한 삶을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음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새벽에 눈을 뜨면 방안을 빙 둘러보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더 정리하고 버릴 게 없는지 찾아 나선다. 그러니 과도한 저장 강박증이 아니라면 저장 본능을 이기적 유전자의 반란 정도로 치부하고 잘 다스리며 살아도 좋지 않을까? 아니, 관계의 정리가 물건의 정리나 비움보다 먼저가 아닐까. 사람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야말로 최강의 잡동사니일 테니 물건이건 사람이건 소유보다 존재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한 책이어서 고맙다.
『잡동사니의 역습』 랜디 O. 프로스트 · 게일 스테키티 지음/정병선 옮김/윌북/1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