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교육부 미래교육위원회 김헌 서울대 교수

2019.04.03 13:30:00

교육은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 창조하는 것

‘한 학부모가 소크라테스에게 찾아와 학교에 불을 질러버리겠다고 한다. 사람 되라고 자녀를 학교에 보냈더니, 오히려 부모인 자신을 폭행했다는 게 이유다. 학교에서 뭘 가르쳤길래 애가 이 모양이 됐느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놀란 소크라테스는 줄행랑을 쳤다.’

 

물론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고대 아테네 소피스트들이 만든 학교의 폐해를 비꼰 희곡의 한 대목이다. 실제로 당시 소피스트 학교는 화려한 언변으로 대중을 선동, 정치·경제적 이익을 얻거나 유죄를 무죄로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이 같은 행태에 분통을 터뜨린 셈이다.

 

지난 2월부터 교육부 자문기구인 미래교육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헌 서울대 교수. 국내 손꼽히는 서양고전학자이다. 김 교수는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한 이 희곡은 오늘날 우리 교육현실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했다. “교육의 기본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인데 학교 교육이 인성은 뒷전인 채 좋은 대학을 나와 사회·경제적 특권을 누리는 수단으로 내몰리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물론 학교보다 사회의 책임이 더 크죠. 돈이 많아야 대접을 받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유리합니다. 결국 입시와 돈이 직결돼 있으니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내놔도 미봉이고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기본으로 돌아가 인본교육 충실해야

김 교수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기능만 익히면 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사회적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소수의 기득권층이 너무 많은 특권을 누리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교육이 기본으로 돌아가 제대로 된 인본교육을 실시해야 우리가 원하는 미래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이란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교사는 지금까지 인류가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겼던 것들을 새로운 세대에게 잘 전달하고, 이를 토대로 그들이 원하는 세계를 개척해 나가도록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죠. 전통적 가치와 미래가 공존하는 현장, 그곳이 학교인 셈입니다.”

 

김 교수는 이 과정에서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아이들이 열어갈 세상은 누구도 가늠할 수 없기에 미래를 예단하고 자의적으로 방향을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분들이 자기 아집에 사로잡혀 섣불리 미래를 재단하고 전망하는 데서 자꾸만 오류가 나는 것 같아요. 학생들 스스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 놓는 게 중요한데 말이죠. 기성세대가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이제부터는 너희의 세계를 만들어가라는 메시지를 주는 게 교육 아닐까 싶습니다.”

 

김 교수는 그리스신화에도 이 같은 정신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했다. “신들의 권력 계승 스토리를 보면 잔혹하고 일견 패륜적이기까지 해요. 심지어 플라톤 같은 철학자는 아이들에게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가이아부터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들이 아버지를 축출하고 권력을 잡습니다. 못된 자식들이죠. 그런데 저는 플라톤과 달리 여기에 그리스 교육의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신들의 권력투쟁사는 ‘기성세대를 넘어서지 않으면 너희들의 세계는 오지 않는다’는 주문이 담긴 신화라고 해석했다. “이건 대단한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물러날 때가 되면 물러날 테니 새로운 시대는 너희들 스스로 만들어 보라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교육은 기성세대가 쌓아놓은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역할을 하지만 ‘이것대로 하라’든가 아니면 ‘너의 앞길은 이런 식이 돼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김 교수는 문제풀이식 교육과 심오한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는 문답식·암기식·찍기식 교육을 무조건 비판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제 36년과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민주화와 경제적 성공을 이룬 데에는 교육의 힘이 결정적입니다. 흔히 우리 교육을 주입식 교육이라고 비판하지만 급변하는 상황에 즉각 대응하는 능력이 길러진 데에는 문제의 의도를 빨리 파악하고 적절한 답을 찾아내는 우리식 교육의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현대는 자신의 생각을 신속하고 독창적으로 제시할 줄 아는 능력이 매우 중요한 데 여기에 인문학을 통해 깊이 숙고하고 찬찬히 따져보는 능력을 결합한다면 우리 교육은 세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입식 교육 비판만 해선 곤란 … 한국의 압축성장은 ‘교육의 힘’

그래서일까? 김 교수는 요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중 이소크라테스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이 분은 플라톤과 동시대를 살면서 쌍벽을 이룬 인물이에요. 플라톤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변하지 않는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했다면, 이소크라테스는 변화하는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적절하고 좋은 것인지를 찾아내는 능력을 중시했습니다. 극히 대조적인 관점을 가진 이 두 사람의 교육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고등학교에서 불어 교사로 10여 년 근무하다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김 교수.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보면 먹먹할 때가 많다고 했다.

 

“가르침이라는 소박한 일념으로 교직에 계신 선생님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얼마나 많은 갈등과 자괴감에 시달리는지 짐작하고 남습니다. 솔직히 서울대생을 가르치는 저조차도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거든요. 하지만 우리 모두 이겨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 교수는 “‘태양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내지만 결코 어둠에 의해 빛을 잃지 않는다’했던 디오게네스 말처럼 선생님들의 헌신과 사랑은 학생들 마음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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