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어느 40대 교사의 하루

2019.05.03 10:00:00

어느새 금요일 아침, 한 주가 끝나갈 무렵이지만 오늘도 정신없기는 매한가지이다. 6시 30분 무렵 눈을 뜬다. 이미 출근한 남편은 아마 오늘도 아침 식사를 거르고 갔을 것이다. 서둘러 밥상을 차리고 옷을 입고, 둘째 아이를 깨워 세수하라고 시켜놓고 화장을 한다. 밥상에 앉으면서 첫째 아이 방문도 열어 깨워둔다. 7시 25분, 둘째 아이와 집을 나선다. 다행히도 아침 돌봄을 시행하는 초등학교 덕에 아이를 맡기고 걸어서 학교로 출근한다.

 

중간에 다리를 건널 때 보이는 양재천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봄 풍경을 곁눈질할 틈도 없이 정신없이 걷는 출근길…. 이 시간이 조금 더 여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중학생인 첫째 아이는 혼자 밥을 먹고 8시 무렵 집을 나설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다. 조금 일찍 철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첫째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을 미뤄둔다.

 

7시 50분 학교에 도착해 아침 전달 사항을 챙겨서 8시 조회를 위해 교실에 입실한다. 3월 마지막 주가 되니까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유인물의 양도 조금 줄어든 것 같다. 아차, 독감으로 결석했던 학생들이 미처 내지 못한 동의서와 동아리 배정서, 결석 신고서를 챙겨야지. 조회를 마치고 교무실에서 아침에 바빠서 스쳐 지나갔던 동료 교사들과 잠깐 아침 인사를 나눈다. 교무실은 커피 냄새로 그윽하다.

 

8시 30분. 1교시 종소리를 듣고 수업에 들어간다. 올해부터 2학년생들은 선택과목 수가 대폭 늘어나서 하루에 한 두 시간을 빼고는 모두 이동 수업을 해야 한다. 다행히 문학수업은 학급 단위로 해당 반 교실에서 수업이 진행된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가 오늘 수업해야 할 소단원이다. 오늘 이 반에서 하는 수업이 첫 수업이라 다소 긴장된다. 첫 수업의 긴장감은 20년이 지나도 늘 한결같다는 사실이 놀랍다.

 

‘안다’는 것과 ‘가르친다’는 것이 천지 차이라는 사실에 당황하며, 수업을 위해서는 가르칠 내용을 구조화하는 것이 필요함을 깨달아가던 초임 시절, 계획했던 수업내용을 머릿속에 그리며 교실로 가던 복도에는 긴장과 설렘이 만드는 두근거림이 가득했다. 그 때는 20년쯤 후에는 다를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뜻밖에도 ‘가도 가도 수업은 똑같더라~’이다.

 

교실에 들어서고, 인사를 나누고, 칠판에 단원 제목을 쓰고, <동주>라는 영화를 보았냐고 질문을 던져본다. 정작 나는 보지 못했지만 몇몇이 보았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보다 실제 윤동주가 더 잘생기지 않았냐는 실없는 농담을 던져본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저항 시인이면서 순수 청년의 전형이기도 한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를 한 행씩 읽어나간다. 어느새 칠판 한가득 판서 내용이 쌓이고 종이 울린다. 글쓰기 과제물을 걷고 다음 시간에 있을 발표를 희망한 학생들에게 발표 방식을 전달한 후 교실 문을 나선다. 오늘 수업이 나쁘지 않았다고 느낀다. 보람과 자부심이 슬쩍 지나간다. 두 아이가 따라 나오며 수업내용에 대해 질문을 한다. 간단히 대답해 주고 2학년부 나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2교시는 공강 시간이지만 기획 선생님과 2학년부의 진로 심화 프로그램 계획을 논의하느라 학생들 과제물을 읽을 계획이 흐트러져 버렸다. 희망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진로 심화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성할지, 학교 일정·예산·프로그램을 맡길 업체 사정까지 고려하다 보니 계획이 이렇게 저렇게 자꾸 바뀐다. 수많은 가능성 중 몇 가지를 정리하고, 학생 오리엔테이션 날짜까지 결정했다.

 

5월 황금 같은 토요일 오전에 3번은 출근해야겠다. 그나저나 이 프로그램이 내실 있게 잘 진행될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 진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강사나 기관에 대한 네트워크가 없어 구청 등에서 지원하는 지역 진로센터와 아는 분들에게 아름아름 문의해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강사를 섭외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그래도 공문으로 안내를 받은 대학생 멘토링을 신청해서 조금 더 다양한 프로그램 구성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강사분들이 잘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5·6교시가 동아리 시간이라서 3교시 수업 후에 간단히 학급 종례를 했다. 4교시는 담임 회의 자료를 준비하다가 밥을 먹으러 갔다. 식사 후 4교시를 끝낸 직후인 12시 10분부터는 학급 학생과 20분 정도 상담을 하였다. 번호 순서대로 돌리는 학기 초 상담이다. 성적과 교우관계 등을 파악하고 격려도 보탰다. 밝은 성격이라 1년 간 학급 생활을 잘 해 나갈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학생이었다.

 

상담 후 오후 1시부터 20분간 담임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2학년부 교무실에 의자 여러 개를 놓아두고 바닥의 먼지를 쓸어낸다. 어제가 담당 학생들이 청소하는 날이었지만 쓰레기통과 재활용 쓰레기를 힘들게 비우고 온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바닥 청소까지 하라고 하지를 못했다. 특별구역 청소는 모르겠지만 교무실 청소까지 학생들에게 맡기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담임 회의에서는 진로심화프로그램 대상자를 확정하고 한두 가지 협의사항을 논의하였다. 주로 학년 담임들의 지도 방식을 통일해야 하는 사안들에 대한 논의였다. 이 중에는 생리 결석이 남용되지 않도록 지도하는 방안에 대한 것도 있었다. 학생 인권을 지키면서도 생리 결석이 부당하게 남용되는 사례를 막기 위한 여러 의견들이 오고 갔다. 1시 20분 5교시, 시작종이 울리고도 회의가 조금 더 진행되었지만 동아리 시간이라서 조금 여유 있게 논의를 마무리 짓는다.

 

회의 도중에 오늘 간부 수련회를 가는 우리 반 학급회장과 부회장, 우애부원들이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 담임교사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는 아이들이 기특해서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5,6교시 동아리 시간이 3시에 종료된다. 4월 초반에 수련회 답사를 가야 하는데, 차량 연료비는 어떻게 지급되는지 행정실에 문의한다. 행정실 직원이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신다. 덕분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당일에 카드를 지급받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답사에 참여하는 2학년 부장인 나와 기획 선생님 모두 장거리 운전에 그다지 자신이 없다. 그래도 내가 운전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주말에는 차량 점검을 받아야 할까 보다.

 

전화하는 사이 오늘로 예정되었던 2번째 상담 학생이 교무실 문을 들어선다. 이런저런 이야기에 상담이 좀 길어져 어느새 퇴근 무렵이 된다. 퇴근은 어제 세워두었던 자동차로 해야 한다. 어제 교문 지도 순번이라 일찍 출근하기 위해 자동차로 출근을 했다. 그런데 미세 먼지 최악이라 취소가 되는 바람에 일찍 온 보람이 없어졌다. 그래도 덕분에 하루의 시작이 여유로워 좋았는데, 문제는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니까 차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냥 집에 가버렸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생기는 건망증 탓일까, 정신없이 흘러가는 바쁜 일과 탓일까. 암튼 그 이야기로 헛웃음을 날리며 동료 교사들과 인사를 나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시험 문제 내야지….”

“어~ 정말. 쉴 틈이 없네요. 그래도 어떻게든 쉬시고 오시길~. 오늘은 자동차 잘 챙겨가세요…. ㅎㅎ”

“그래요…. ㅎㅎ”

 

피어나기 시작한 봄꽃들로 아름다운 교정 한 켠에 세워진 나의 자동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 잠깐 차 안에서 한숨을 돌린다. 교직 5년차에 구입했던 내 차를 15년째 타고 있다. 새 차 냄새가 가시지 않던 반짝이던 그 차가 이제 구닥다리가 다 되어 버렸다.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었겠지 싶어 씁쓸해 진다.

 

4시 30분. 아차, 둘째 돌봄교실에 5시까지 데리러 가야지. 주말이라고 긴장이 풀려서 깜빡 잊으면 안 되지. 애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오늘은 첫째 아이 학부모들과 반모임도 있는 날이다. 그것도 잊으면 안 되지…. 자동차에서 서둘러 내린다. 둘째를 데려와 아침에 못 하고 갔던 설거지를 하고 저녁 밥상을 차린다. 저녁 6시 30분. 둘째 아이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당부대로 일찍 퇴근한 남편을 남겨 놓고, 치킨집 반모임을 하러 간다. 돌아온 시간은 10시 30분. 첫째 아이와 30분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해 보는구나…. 고맙고 좋은 마음이 든다.

 

이야기를 쓰다 보니 참 바쁜 하루였던 것 같다. 요새는 교직생활이 책 한 권 읽을 수 없이 빡빡하다고들 한다. 그런 바쁜 직장생활과 아이들을 섬세하게 챙겨야 하는 요즘 엄마의 역할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받은 사랑만큼 성장하는 아이들을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돌봐야 하는 교사 엄마들은 학교와 집 어느 쪽도 소홀할 수 없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지켜내느라 힘들었던 탓인지 지난 봄방학 끝날 무렵 시작된 허리통증은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잘 자라주는 아이들이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 그 아이들을 잘 지켜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책임이 막중한 40대, 그래서 아플 수도 없는 40대라고 하지 않나. 바쁜 주말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스트레칭으로 허리통증을 완화시킨 후에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내가 지켜낸 건강은 나만의 것이 아니기에….

이은희 서울 경기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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