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화번호 공개 논란을 보며

2019.06.07 10:34:37

민원 관련 업무를 보기 위해 공공기관을 찾은 이후에 추가적인 의문이 생겼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시간이 담당 공무원의 근무시간을 훌쩍 넘겼다면 다음날 업무 개시 이후에나 일을 볼 수 있다. 금융 업무를 위해 근무시간 이후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업무시간이 종료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물론 긴급한 사항에 대해서는 통화가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렇듯 불편함이 있지만 공공기관 등에서는 담당자의 전화번호를 민원인에게 공개하는 일은 드물다. 해당 직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문의해도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알려주지 않는다. 최소한의 사생활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방안인 것이다.

 

학부모의 의식과 교육청 대책

 

최근 서울시교육청은 일선학교에 배포한 교육활동보호 매뉴얼 개정판에서 교사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거나 늦은 시간에 교사에게 자녀의 학교생활과 무관한 전화와 문자를 보내는 행위를 ‘교사의 사생활 침해’로 규정했다. 이를 어기면 교육활동 침해로 보고,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해당 학부모의 전화를 차단할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올 2학기부터 교사들에게 담임교사 중심으로 업무용 휴대전화를 보급하기로 했다. 업무 중에는 보급된 업무용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퇴근할 때는 업무용 휴대전화를 학교에 놓고 퇴근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범운영 성과가 좋으면 확대 한다는 입장이다.

 

경기도교육청도 개인정보보호법과 관련 판례 등을 들어 학부모에게 교사들의 휴대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휴대전화번호 공개가 의무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시·도에서도 비슷한 대책을 내놓았거나 내놓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 대해서 교사들은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극히 당연한 개인정보보호를 굳이 들먹인다고 해서 사생활 보호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관계가 칼로 무 베듯이 간단히 선을 긋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학부모들의 인식이 이런 조치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교육청이 내놓은 조치는 결국은 교사 개인이 해결하도록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비난도 들려온다. 학부모나 학생에게 교사의 휴대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거나, 근무시간에만 통화가 가능한 휴대전화를 교사들에게 소지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정책으로 보기 어렵다.

 

학교에 근무 중일 때는 업무용 휴대전화가 아니더라도 담임교사와의 유선통화나 방문상담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안 알려주고의 문제가 아니다. 선심 쓰듯이 업무용 휴대전화를 보급한다고 해서 교사들의 휴대전화 번호 공개 요구가 줄어들 것으로 보기 어렵고, 이런 요구가 들어왔을 때 거절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본질인 것이다.

 

교사들의 입장은 간단하다. 교사는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학부모와의 상담은 필수적임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교사도 가정이 있고 사생활이 있어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상담을 다음 날에 했으면 하는 매우 소박한 바람을 이해해 주고 실천해 달라는 것이다. 긴박하지 않은 사소한 상담이라면 밤늦은 시간에 하는 것이나, 다음날 근무시간에 하는 것에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소박한 바람 이해를

 

교육청에서 이런 교사들의 바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구조적인 문제에서 오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 안내 차원이 아닌 제도적인 장치 마련을 원하는 것이다.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된다고 해서 학생과 학부모를 외면할 교사는 없다. 다만 최소한의 권리가 확보된다면 주어진 의무는 끝까지 다하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교사와 학부모들의 입장 차에 대해 여러 상황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쉽게 풀 수 없겠지만 보편타당한 방안은 반드시 필요하다. 당장에 내려지는 일시적인 땜질 처방을 하지 말고 근본에 충실한 방안이 필요다. 여기에 당사자인 학부모들의 인식전환을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한국교육신문 jebo@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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