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글쓰기

2019.09.02 18:12:41

교사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가 중요한 업무로 떠올랐다. 대학 입시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이 전형에서는 교과 성적과 함께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세특) 기록 내용 등 정성 평가를 한다. 여기에 부응해 학교에서는 학생부 쓰는 요령을 연수하고, 교사들은 학생부 기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세특 기록은 ‘학생 참여형 수업 및 수업과 연계된 수행평가 등에서 관찰한 내용’을 입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침대로 쓰면 된다. 문제는 수업과 평가 상황 등에서 학생의 역량을 정확히 짚어내 그것을 언어로 기술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학생부 기록은 국어 선생님이 유리하다는 말을 한다. 일반 교과 선생님들이 글을 쓰기 버겁다는 의미로 무심코 던지는 말이지만, 이 말에 뜻을 같이 하는 선생님들이 많다. 즉 국어 선생님들은 글을 잘 쓰고, 타 교과 선생님들은 글쓰기에 서툴다는 인식이 일반화돼 있다.

 

여기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 우선 문학적 글쓰기와 실용적 글쓰기를 혼동하고 있다. 국어 선생님이 글쓰기를 잘 한다는 것은 문학적 글쓰기를 한다는 전제를 갖고 이야기한 것이다. 학생부 기록과 관련한 글쓰기는 문학적 글쓰기가 아니다. 일부에서 학생부 내용을 부풀리기나 허위로 쓴다고 의심하는 것도 결국 학생부 기록을 문학적 글쓰기로 오해하면서 생긴 의심이다.

 

문학적 글쓰기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글쓴이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타고나야 한다.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국어 선생님은 문학을 가르치지만 문학 작품 창작에 소질이 없는 경우도 많다.

 

학생부 기록 등 학교에서 하는 글쓰기는 실용적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특정한 목적에 따라 특정한 인물과 소통을 해야 하는 소통적 글쓰기다. 당연히 시, 수필, 소설 등을 쓰는 방식과 다를 수밖에 없다. 문학적 글쓰기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 실용적 글쓰기는 소통 목적에 맞는 분명한 대상이 있다. 이는 재능보다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사라면 누구나 실용적 글쓰기에 능통해야 한다.

 

실용적 글쓰기뿐만 아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는데, 글쓰기가 대표적 방법이다. 이런 주장에 교사는 가뜩이나 일도 많은데 글도 잘 써야 하냐며 푸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교사는 교육에 대한 사유와 지식을 글쓰기를 통해 꾸준히 밝혀야 한다.

 

오늘날 교육의 상황은 복잡다양하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자칫 왜곡되기도 한다. 교육에 관심이 많고, 교육에 누구나 의견을 낸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이익을 대변하는 논리가 많다. 따라서 교실 현장에서 학생들과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의 글쓰기는 중요하다. 교사의 삶, 삶에 교육이 녹아드는 이야기는 공정한 비전을 제시하고 온당한 길을 안내할 수 있다.

 

지금 공교육은 열심히 하고도 대중들에게 질타를 받고 있다. 교사 집단도 과거와 달리 교육 수요자에게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사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마지막 희망이고 세상을 바꾸는 존재가 돼야 한다. 시대의 가치에 대한 사유로 미래 세계에 교육적 유산을 계승할 안목을 넓혀야 한다. 교육적 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히 관련 책을 읽고, 비판적 사고와 대안을 말하고 글로 쓰는 성장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교사의 전문성은 반성적 실천가로서 구현된다. 글쓰기는 성찰적 활동의 최고 형태다. 성찰적 삶의 자세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만이다. 따라서 성찰로는 부족하다. 힘겹게 만든 교사로서의 삶에 실체를 글로 만나야 한다. 동료들과도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한계와 처지, 감정 등을 글로 공유해야 한다.

교육의 최고 가치와 방법은 소통이다. 글쓰기는 가장 정교한 소통 방법이다. 교실에서 나만의 언어로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억압적인 말로 하는 통제는 일시적 복종을 강요하지만 진정한 행동을 강화시키진 못한다. 직접 말로 하는 것보다 때로는 교사의 글쓰기를 통해 수긍을 넘어 감동의 권위를 느끼게 해야 한다.

 

삶은 글로 만날 때 더욱 고양되고 엄격해진다. 교육과 직접적 연관이 없더라도,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삶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것도 타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직 내 자신의 참모습에 접근하기 위해서다. 글쓰기에 몰입하면 교사로서 진보적인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생활인으로서 고귀한 삶을 만난다.

윤재열 경기 천천고 수석교사, 수필가 tyoon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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