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高明)이 달라졌다” 명장(名匠)교육으로 신바람~

2019.11.05 10:30:00

서울 고명외식고등학교

“고명이 달라졌다.” 한때 공부 안 하고 말썽꾸러기 많은 학교로 낙인찍히다시피 했던 학교. 강북 지역 대표적 기피 대상으로 알려졌던 학교. 선생님들이 원서도 안 써준다는 학교. 그곳이 달라졌다. 최고의 교사, 최고의 시설, 최고의 열정이 한데 어우러져 최고의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곳.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고명외식고등학교다. 지금까지는 고명경영고등학교로 불렸지만, 내년부터는 교명이 고명외식고등학교로 바뀐다.

 

 

외식·디저트·카페경영 및 국제관광과 신설

학교 문패만 바꾼 게 아니다. 기존 외식경영과를 제외한 3개과를 폐지, 그 자리에 새로운 과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고명외식고는 내년부터 ▲외식경영과, ▲디저트제과경영과, ▲카페경영과, ▲국제관광과 등 4개과에서 180명의 신입생을 선발하게 된다.

 

외식경영과는 말 그대로 한식·일식·중식·양식요리 및 제과·제빵 등 외식조리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디저트제과경영과는 다양한 디저트 제과 분야 전문가를 양성, 제과·제빵사는 물론 바리스타·케이크디자이너·쇼콜라티에·푸드코디네이터 등을 배출한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카페 창업에 관심이 있다면 카페경영과를 두드리면 된다. 카페창업에 필요한 이론과 실무를 다양하게 익혀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준비된 인재를 양성한다. 스튜어디스·호텔리어·여행안내원 등으로 진출하는 국제관광과에서는 관광 및 레저 전문가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면면을 살펴보면 취업 맞춤형 학과 개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특성화고로서 나무랄 데 없는 외관이다. 그렇다면 실속은 얼마나 채워져 있을까.

 

 

지난 2018년 출범한 외식경영과 사례를 통해 이 학교 교육과정의 특징을 살펴보자. 우선 ‘명장수업’이란 게 있다. 조리와 제빵분야에서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최고의 ‘고수’들이 학생들을 가르친다. 명장은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서 숙련기술 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람을 정부가 공인하는 제도다. 현재 대한민국 12대 요리명장인 조우현 명장과 10대 제과명장으로 선정된 송영광 명장이 정규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명장수업은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기술을 빠른 시간에 배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이뿐 아니다.

 

틈틈이 국내 유명 쉐프들의 특강도 열려,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스타급 쉐프들이다.

 

이 같은 현장 전문가 중심교육은 고명외식고가 추구하는 실무중심 교육과 맞아떨어진다. 박차환 대외협력부장은 “1학년 때부터 주당 17시간씩 실무중심의 실습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며 “기술을 배우고 싶어 들어온 학생들에게 딱딱한 이론수업을 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열정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술보다 인성... 성실한 인재 기른다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다.” 고명외식고의 모토다. 외식분야의 경우 바른 심성과 성실한 자세가 그 어떤 것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학교 측은 인성교육에 많은 공을 들인다. 예컨대 학생들은 학교 인근 불우시설이나 장애인 복지관, 노인보호시설 등으로 자주 봉사활동을 나간다. 자신들이 만든 과자와 빵을 제공하는 급식봉사는 물론 일손돕기 등에도 기꺼이 참여한다.

 

얼마쯤 지났을까. 지역사회가 학생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고명’ 하면 고개를 젓던 주민들이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말한다. “우리 고명이 달라졌네요.”

 

졸업인증제라는 것도 있다. 강제성은 없지만, 전교생이 졸업 때까지 관련 분야 자격증 5개는 갖자는 프로젝트다. 취재 도중 만난 우유선 학생(2학년)은 벌써 자격증만 4개다. 학교 방과후수업을 열심히 들었더니 어느덧 4개를 채웠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선생님들이 정말 열심히 가르쳐 주셨어요. 다른 학교 친구들은 학원에서 비싼 수강료 내고 자격증 시험을 보는데 우리는 학교 수업만으로 충분하죠.”

 

그도 그럴 것이 고명외식고의 실습시설은 명실공히 최고다. 호텔이나 유명제과회사 조리시설과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다. 프랑스 요리 실습장은 정통방식인 목재로 만들었다. 그래야 음식 맛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초콜릿 공예 실습실은 조리대와 바닥을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호텔급이다. 중식 요리실 화구는 실제 조리현장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 구비했다. 학교에서 배울 때와 산업현장에서 일할 때 조리기구에 차이가 있으면 손에 익질 않아 사고 위험도 있고 힘들기 때문이다.

 

 

글로벌 특성화고 선언... 일본 등 해외진출 개척

학생들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국내외 각종 요리 경연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 학생들은 국내외 7개 대회에 출전, 대상과 금상, 교육부장관상 등 11개를 수상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유럽공식승인(WACS) 대한민국 챌린지컵에서 금상을 수상한 데 이어 대한민국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에서 대상과 최우수상·금상을 휩쓸었다. 그동안 내로라하는 조리 외식분야 고등학교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성과를 올릴 것이다. 국내 유명호텔 쉐프 출신인 이 학교 박경주 교사는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학생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특히 선후배 간 우애가 좋아 서로 배운 것을 가르쳐주다보니 해가 갈수록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명외식고의 또 다른 전략은 세계화다. 일찌감치 외식 선진국인 일본과 현장실습 및 학생연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내년에 일본 외식기업에 학생들을 파견, 90일간 현장실습을 실시할 계획이다. 학생들에게는 영어와 일본어를 반드시 마스터 하도록 집중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일반 쉐프가 되고 싶으면 다른 학교를 가라. 하지만 오너쉐프가 되고 싶으면 고명을 선택하라.” 이 학교 교사들은 외식교육에 관한 한 어느 학교와 비교해도 실력으로 자신 있다면서 높은 기술을 자랑하는 고명이 머지않아 국내 최고의 특성화고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혜승 교장은 “교육도 경쟁이다. 남들 하는 것 따라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고명이 1등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혜승 교장의 가을 편지>

 

한혜승 교장은 오늘 편지를 썼다. 고명 학생들을 길러준 중학교 선생님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은사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그동안 이 학교에서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학생으로 길러낼지 감사와 다짐을 곱게 담았다.

 

한 교장은 매년 이맘때면 은사의 밤이란 조촐한 행사를 갖는다. 학생들이 꼭 한번 모시고 싶다는 중학교 선생님들을 학교로 초청, 제자들이 만든 음식도 대접하고 못다 한 사제간의 정도 나누는 행사다. 가을날, 꼭꼭 눌러쓴 교장선생님의 손편지는 은사의 밤 초청장인 셈이다.

 

지난해 이맘때 열린 은사의 밤 행사장은 눈물바다였다. 하루가 멀다고 속을 끓였던 녀석이 고등학생이 돼 직접 만든 음식을 내놓을 때 선생님들은 목이 메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교장도 고명의 선생님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한 교장은 “예전엔 고명만 가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처럼 달라진 아이들을 보니 앞으로는 고명의 홍보대사가 돼야겠다”는 선생님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중학교 선생님들을 감동시킨 고명의 저력은 무엇일까. 한 교장은 ‘간절함’과 ‘손오공’이라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머리털 한 줌으로 수많은 손오공을 만들어냈던 분신술처럼 40여 명의 교직원이 하나가 돼 ‘학교 한번 새롭게 바꿔보자’는 일념으로 일궈낸 치열한 혁신의 성과라고 했다.

 

“우리 학교만의 1등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3년 안에 서울 시내 최고의 특성화고등학교로 키워낼 겁니다.” 한 교장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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