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의 기쁨과 밈 전파의 관계
수전 블랙모어(2010: 281)에 따르면 사람들은 진(gene: 생물학적 유전자)을 전파할 때처럼 자신의 밈(meme: 문화유전자)을 전파할 때 행복을 느끼게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이미 가르칠 내용이 정해져 있고 그것을 단순히 전달만 한다면 즉, 남의 밈을 전파하는 역할을 대행하기만 한다면 가르치는 일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보람의 정도는 크게 떨어진다. 그러한 수업을 하는 교사는 ‘자신의 수업’이 아닌 ‘남의 수업’을 대행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정범모, 1954. 김대영, 2017: 90에서 재인용). 단순한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르칠 내용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고 가르치는 활동을 통해 더 큰 즐거움과 보람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가르치는 내용에서 자신의 밈이 차지하는 비중 즉, 자신의 연구결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가르침의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의 정도는 더 커진다.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재에 살을 붙이는 활동을 할 때, 교재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내용을 추가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활동을 할 때는 단순히 교재 내용을 전달할 때보다 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남의 밈만이 아니라 자신의 밈도 일부 전파하기 때문이다. 초·중등학교에서 교육과정 재구성권을 교사들에게 주면 비록 힘은 더 들겠지만, 교사들이 더 보람을 느끼고 열정을 발휘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학생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자신만의 생각과 지식을 가진 사람은 밈 전파자가 될 수 있지만, 남의 지식만 전하는 사람은 지식 전달자·지식 판매원밖에 할 수 없다. 전달자로서의 교사 혹은 교수는 하나의 매체일 뿐 스승이 아니다. 이러한 전달자의 역할은 AI가 훨씬 더 잘하는 시대가 되었다. AI와 공존해야 하는 시대, 가르치는 길목에 서 있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전달자의 위치를 박차고 나와 깨어 있고, 살아있는 스승이 되는 것이다.
연구와 밈의 관계
최고의 희열은 자신의 밈 즉, 자신만의 고유한 연구결과를 학생들에게 전파할 때 느낄 수 있다. 대부분 교수는 교사들과 달리 교재 선택권과 강의내용 구성권을 가지고 있다.
교육자 중에서 자신의 밈을 학생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들의 연구결과를 집약해놓은 교재만 가지고 강의를 한다면 가르침의 기쁨을 크게 느끼기는 어렵다. 자신이 선택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르침을 통해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교수는 가르치는 분야에 대해 지속해서 연구하고 이를 매 학기 강의에 새롭게 포함 시키는 교수이다.
2007년 EBS 다큐 프라임을 제작하면서 만났던 노벨화학상 수상자 허쉬바흐(Dudley Herschbach),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등 미국 최고 교수들의 공통점은 자기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신의 부름 혹은 악마의 부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참으로 재미있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학생들과 나누는 데 가르치는 일이 어찌 재미있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반문을 하였다.
연구를 열심히 하는 교수가 가르치는 분야에서도 뛰어날 수 있는 이유이다. 교사들도 단순한 이론 소비자가 아니라 자기가 가르치는 분야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그 내용을 학생들과 공유하는 이론 생산자가 되도록 유도해야 가르침에서 더 큰 희열을 맛보게 될 것이다.
교수법 연구와 밈의 관계
자기만의 밈을 만드는 것은 교육내용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방식,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에도 적용된다. 유사한 내용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도 교사가 자신만의 교수법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교수법을 적용할 때, 그리고 그 기법이 효과를 발휘할 때 가르침의 기쁨은 더욱 커진다. 존 버그만과 애론 샘즈가 쓴 <거꾸로 교실>이라는 책에는 새로운 교수법을 연구·적용한 교사들이 기쁨에 들떠 자신의 수업사례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학생들이 변화한다는 것은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밈이 학생들에게 전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가르치는 사람은 교수법 변화를 통해서도 밈 전파의 희열을 맛볼 수 있다. 나 또한 가르침과 배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학생들과 만남이 보다 의미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그 결과를 세상과 나누어왔다. 이러한 노력 덕에 학생들에게 내 밈을 전파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종강파티에서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건네는 편지에는 “우리 조상의 생물학적 정보가 유전자를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전달되었듯이 가르침의 길에 선 우리의 신념과 열정, 그리고 지혜는 ‘밈(meme)’을 통해 나의 스승에게서 나를 거쳐 여러분에게로, 그리고 다시 여러분의 제자를 통해 그 끝을 알 수 없는 여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밈을 함께 나눈 지적 후예인 여러분 곁에 늘 제가 있겠습니다. 힘들 때는 언제나 연락해도 좋습니다”라는 글도 포함 시킬 수 있었다.
또한 노력의 부산물로 최고의 교수법이라는 책이 나오게 되고, 제1회 대학교수 대상 교수법 공모전에서 운 좋게 대상까지 받게 되었다. 내게 맞는 내 고유의 교수법을 찾아 끝없이 노력하는 그 자체는 결국 내 밈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