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수천 년 전 공자님의 말씀이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학교의 현실을 곰곰이 따져 보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문장이다. 배우는 자의 본분과 소명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학생으로서 배움이 당연한 것 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의 공부가, 수업시간에 학습이, 친구들과의 소통과 교류가 마냥 즐겁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동안 학교에서의 수업목표는 학생들의 지적 능력 향상에 치우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우수한 대학이나 직업,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많은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성적이라는 엄격한 서열 안에서 자신이 얻은 성과에 만족하는 학생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끊임없이 반복되는 학습과 평가과정에서 많은 학생이 즐겁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공자님 말씀과 같이 ‘배움을 즐기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종합 성적 상위 몇 %만이 느끼는 기쁨이 아닌, 한 교실의 모든 학생이 배움을 기뻐하는 순간은 만날 수 있을까?’, ‘건강한 배움을 실천으로 옮기고 그 과정에서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라는 의문은 대한민국 교사가 함께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독서교육 역시 같은 맥락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청소년기에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교양을 쌓고 인격을 형성하기 위해, 언어능력·집중력·창의성 향상을 위해, 마음의 안정과 치유를 위해…. 하지만 정작 이러한 이유만으로 책을 펼쳐 들고 탐독하는 학생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앞서 언급했듯 치열한 경쟁시대를 마주하고 있는 학생에게 자발적인 독서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그들은 너무도 바쁘고 또 지쳐 있다. 하지만 수업 요소요소에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들어 준다면 어떨까? 단순히 기계적인 문해능력에 집중하지 않고, 독서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 준다면 배움의 과정에서 학생들은 즐거움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다음과 같은 독서수업을 구상해 보았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