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에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는
고전 읽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사서교사로 우리 학교에서 근무한 지 한 6년 차 정도 되었을 때인 듯싶다. 학교 도서관에서 독서활동 수업(우리 학교는 1학년 학생 대상으로 주 1회 독서활동 정규 수업이 있다)으로 학생들과 만나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책을 많이 알고 많이 읽어야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몇 년 동안은 외부 권장도서목록 연구모임에서도 공부하며 ‘많이’ 읽고 많이 ‘보기’를 실천했다. ‘많이’를 추구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깊이’ 읽기에는 소홀했음을 알았다.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고전 읽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때가.
왜 다양한 관점에서 해설한 ‘논어’가 지속적으로 출판되는지, 어째서 최근 발행한 책에서도 ‘자본론’과 ‘유토피아’를 누차 언급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지, ‘침묵의 봄’과 ‘이기적 유전자’에서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공부해보고 싶었다. 공부하면서 깊이 읽기에 좋은 책은, 이미 널리 널리 유명해졌으나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고전이 안성맞춤이었다고나 할까. 나 혼자서는 적당히 공부하다가 포기할 것 같아서, 수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학생들보다 내가 더 꼼꼼하게 책을 읽어야 하고, 수업 일정을 맞추려면 마감일이 존재해야 하니까.
수업 열의와 준비 과정, 그리고 시행착오
사실은 나를 위한 공부를 하기 위해, 나도 좋고 너희도 좋은 고전 읽기를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이 생각은 변함없다. 나에게 의미와 재미를 줄 수 있으면서도 학생들에게도 같은 것을 선사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이 바로 교사와 학생 모두를 위한 배움의 과정이라는. ‘고전 읽어볼까, 그러면 학생들과 함께 공부해볼까’ 생각하며, 일단 개설이 가능했던 창체 수업과 방과후 수업에서 학생 12명만 참여 가능한 ‘고전 읽기와 토론’ 강좌를 열었다.
우리 학교 정규 수업시간에 배부된 고3 ‘고전’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목록화하여 그중 원하는 책을 개인별로 선정하도록 했다. 같은 책을 선정한 학생들끼리 팀을 정해 매 수업 한 팀씩 발제를 하며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식으로 진행했다. 학생들은 한 작품을 한 번씩만 발제 준비를 하고 진행하면 되지만(물론 읽기만도 쉽지 않은 책들인지라 아무리 한 번이라도 학생들은 발제 준비를 어려워하고 힘들어했다), 내 입장에서는 1~2주에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준비를 해야 했기에 너무 버거웠다. 해당 작품을 설명한 여러 해설서까지 보며 감을 익혀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