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01room’ 교사들의 슬기로운 학교생활

2020.07.06 11:00:00

“초심 잃지 않는 유쾌하고 따뜻한 선생님 되고 싶어요”

“딴다 딴다 딴딴다~ 이렇게 전주가 네 번 나오면 다섯 번째 마디에서 들어가자.”

“알았어, 박자가 헷갈리니까 하영이가 시작 큐를 줘.”

“그럼 이때 컵을 내려놓고 손을 올리면 되는 거지?”

“맞아, 근데 그냥 올리면 밋밋하니까 웨이브를 넣어볼까.”

“오, 좋은데, 다시 시작하자. 하나, 둘, 셋, 넷~.”

 

해거름녘 찾은 서울선사초등학교 5학년 3반 교실. 초등교사 유튜버 ‘301room’의 정예멤버가 모였다. 오늘은 이들의 최대 히트작 ‘컵타’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촬영하는 날. 요즘 인기 있는 가수 비의 깡(GGANG)이 흘러나온다. 힙합 분위기를 내려는 듯 검정색 티셔츠에 모자를 눌러쓴 4명이 컵을 탁자에 딱딱거리며 손뼉으로 리듬을 탄다.

 

벌써 두 시간 째, 창밖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연습과 촬영이 반복된다. 한 주일의 피로가 몰려오는 금요일 저녁, 지칠 법도 한데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깔깔댄다.

 

“자, 이제 녹화 들어간다”란 말이 떨어지자 4명이 호흡을 척척 맞춘다. 딴다 딴다 딴딴다~, 빠른 비트를 타고 경쾌하게 움직이던 컵들이 어느 순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와~ 성공이다.” 까르르 웃음보가 또 터졌다.

 

 

서울교대 14학번 동기 ... '학교극장' 등 유튜브 화제

최근 ‘컵타’를 비롯 ‘학교극장’, ‘정글에서 살아남기’, ‘부모님께 칭찬을 드려보았다’ 등 잇달아 히트작을 내면서 주목받는 유튜브 채널 ‘301room’. 서울교대 14학번 동기들로 교직 1~2년 차 새내기 교사들이 만들었다. 박지언(서울가주초), 김효진(서울선사초), 정윤지(서울용동초), 김하영 교사 등 모두 4명이 주인공. ‘301’은 대학시절 함께 생활했던 기숙사 방 번호. 그만큼 우정은 각별하다.

 

“교대 다닐 때 가졌던 열정이 조금씩 식어가는 것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뭔가 더 즐거운 수업, 재미있는 교육,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해보고 싶었죠.” 리더를 맡고 있는 박지언 교사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에 유튜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갓 시작한 교직생활, 배울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았지만 ‘301 멤버’들은 의기투합했다. 각본, 연기, 편집에 연출까지 1인 4~5역을 담당해야 했지만 힘든 줄 몰랐다. 주말도 잊었고, 밤샘작업도 일쑤였다. 무엇보다 제작비가 없었다. 십시일반 갹출했지만, 장비구입조차 못할 형편.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 무료제작 서비스를 전전했다. 그러다 달콤한 제안에 속아 돈을 떼일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침없이 나갔다. 2월 출범한 이래 지금까지 제작한 유튜브 편수만 70여 건. 6월 현재 조회수는 2백만 건을 넘었고 구독자만 2,050명에 이른다. 화제작 ‘학교극장’은 코로나19로 교문이 닫힌 뒤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들의 일상을 날카롭고 재치있게 그려 호평을 받았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교사의 하루를 다양한 에피소드에 담았다.

 

카메라가 들어간 곳은 긴급돌봄교실, 아이들과 음악에 맞춰 관광버스에서 본듯한 막춤을 신나게 춘다. 마스크를 쓴 탓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지만, 반응이 좋자 헉헉 대면서도 “또 출까?” 호기를 부려본다. 또 다른 교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뒤편 사물함을 옮기려 하지만 꿈쩍 않는다. ‘아빠를 불러야 하나, 선배교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끙끙대며 혼자 해낸다.

 

방역이 교사들의 주된 업무가 된지 이미 오래. 학생들 책상을 소독제가 담긴 스프레이로 하나하나 열심히 닦는다. 그러다 장난기가 발동한 듯 “난 허리디스크 있는데…” 하더니 카메라렌즈에 스프레이를 촤악 뿌려버린다. 마스크 쓰기 교육하는 장면에선 ‘교사들이 왜 잔소리가 많은 줄 아시겠죠’라는 자막이 깔리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이번엔 온라인 음악 수업시간. 혼자 노래를 부르다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는 머쓱한 듯 큭큭 거린다. 코로나19에 교문은 닫혔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한민국 교사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교육당국이 던지는 수많은 말의 성찬보다 훨씬 가슴에 와 닿는 한편의 동영상이다.

 

 

어버이날 특집 ‘부모님께 칭찬…’ 편 뭉클

‘정글에서 살아남기’도 유튜브에서 인기를 모았다. 코로나19로 야외체육활동이 금지되자 실내에서 손쉽게 하는 운동을 흥미진진하게 구성한 작품. 뱃살로 고민하던 주인공이 동화 백설공주 속 마녀의 꼬임에 정글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구리와 호랑이 등 동물 포즈를 따라하며 자연스레 운동하는 내용을 코믹하게 그렸다. 어딘가 어설프면서도 깜찍한 연기, 묘하게 빠져드는 내레이션, 초등생 눈높이에 딱 맞는 개구진 동작들은 보기만 해도 즐겁다.

 

어버이날을 기념해 제작한 ‘부모님께 칭찬하기’는 철부지로만 여겼던 딸아이의 깊은 속내에 가슴 뭉클해진다. 주인공은 김효진 교사. 저녁밥상이 차려지자 맛있다며 엄마를 치켜세운다. 낯선 반응에 “평소에도 잘 먹으면서…”라는 말로 툭 받아넘기지만 싫지 않은 모습. 이때 지나가던 남동생이 팩폭(팩트폭격)을 던진다. “누나, 왜 그래.” 이후 화면은 모녀간 야간산책으로 이어지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그리고 엔딩 크래딧. ‘자, 이제는 영상을 본 여러분의 차례입니다’라는 자막에 잠시 먹먹해진다.

 

세계적 거장들의 명화를 코믹하게 재연한 ‘방구석 미술관’. 20대 교사들의 발칙한 재기가 넘쳐난다.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편에서는 파이프 담배 대신 막대사탕을 문 장면이,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에서는 토시를 본뜬 분홍 고무장갑이 압권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조지 로슨와 웨인 슬립’ 패러디에 출연한 정윤지 교사는 옷핀으로 치마를 말아 올려 바지를 묘사했다. 황당한 장면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이 유튜브 동영상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이를 기획한 정윤지 교사는 “미술관에 가지 않고도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직접 미술작품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도했다”고 말했다. 작품이 공개되자 반응은 폭발적이다. ‘기발하다’, ‘미술시간에 아이들과 해봤더니 너무 재미있어하더라’, ‘디테일한 묘사가 놀랍다’,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싶다’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선배교사들 도움 큰 힘 ...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초임교사 중 일부는 임용 직후 일종의 번 아웃 현상을 겪는다. 임용시험 통과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은 탓에 급격한 무기력증에 빠진다. 하지만 ‘301room’ 교사들에겐 먼 이야기. 이들은 왜 치열한 도전을 시작했고 멈추지 않는 것일까?

 

김하영 교사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교사가 즐거워야 아이들도 즐겁죠. 그래서 배움을 즐기는 교사, 그 즐거움을 기억하는 제자들이 찾아오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친구들과 함께 만드는 유튜브는 그에게 즐거움의 원천인 셈이다.

 

선배교사들에게 동영상 수업자료 연수까지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김효진 교사. 그는 “처음 해보는 영상편집에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지금은 질적인 수준을 걱정할 정도로 발전했다”며 “모방하고 답습하기보다 스스로 창조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지언 교사는 “코로나19 이후 교육현장에 요구되는 새로운 변화를 미리 체험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됐다”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배움의 기회를 넓히는 교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자신들의 활동을 믿고 격려해준 교장선생님을 비롯 선배교사들께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새내기 교사들의 분투에 아낌없이 지원해준 그분들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생의 출발점에 선 4명의 교사. 오늘도 묵묵히 현장을 지키며 살아간다. 남들이 보기에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삶이지만, 들여다보면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들이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문득 오늘 만남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고, 솔직하고, 기발한, 그러면서도 교사다운 품격을 키워가는 모습에서 ‘우리 아이들 믿고 맡겨도 되겠구나’ 하는 희망을 봤다.

 

기특한 마음에 물었다. “지금 가장 원하는 게 뭐에요?” 속사포처럼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유튜브 구독 많이 눌러 주세요.” “코로나 빨리 끝나 아이들과 맘껏 뛰어놀았으면 좋겠어요.” “가수 비랑 콜라보 하고 싶어요. 꼭이요.”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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