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삼국유사로 오늘을 읽는다

2020.08.13 08:34:12

고운기의 '모든 책 위의 책'

장마가 길고 질기게 우리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울한 우기를 견디며 비가 잦아드는 시간이면 가까운 숲으로 산책을 합니다. 물기 머금은 숲에는 하얀 버섯이 무더기로 피어났다 다시 스러지고 있습니다. 집중 호우가 지나간 자리에 여물지 못한 푸른 밤송이와 도토리, 때죽나무 둥글고 여린 열매가 보입니다. 흰구름이 휘감은 고운대 암봉이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봄철 고운대 주변에는 진홍의 아름다운 철쭉이 피어납니다. 수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신라의 어느 여인도 이 자리에서 저처럼 감탄을 하였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나를 위해 헌화가를 부르며 철쭉 한 송이를 꺾어줄 사람을 찾아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 기분 좋아집니다. 역사서『삼국유사』에 나오는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가 수로부인이라 고운기 교수는 말합니다.

 

신라 성덕왕 때, 수로부인은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 길을 떠납니다. 철없는 미녀 수로부인은 해변에서 점심을 먹다가 절벽에 핀 철쭉꽃을 탐냅니다. 아무도 절벽을 오르지 못하는데, 한 노인 암소를 몰고 가다가 멈춰서더니, 그 꽃을 꺾어와 바치며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가 ‘헌화가(獻花歌)’입니다.

 

이틀 뒤 그녀의 아름다움은 새로운 사건을 일으킵니다.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다 용에게 납치당합니다. 이때에도 노인의 지혜가 사건을 해결합니다. 마을 사람들을 모아 지팡이로 해안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라고 합니다. 이 노래가 ‘해가’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저자는‘뭇 입은 쇠라도 녹인다 했으니, 바닷속 외람된 놈이 뭇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라는 부분에 주목합니다. 여기에서 ‘중구삭금(衆口鑠金)’이 나옵니다.

 

뭇입이란 오늘의 말로 여론이고 싸움에서 이기자면 무엇보다 마음을 하나로 묶는 일이 중요하다. 나이든 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이다. pp. 76~77

 

저자는 『삼국유사』를 평하여 "정녕 우리 역사를 지식인의 역사에서 민중의 역사로, 사대의 역사에서 자주의 역사로 바꿔놓은 책. 우리 문학을 지식인의 문학에서 민중의 문학 나아가 자주의 문학으로 바꿔놓은 책"이라고 평하였습니다. 그는『삼국유사』 속에서 깊이 공감하며 읽을 만한 이야기를 찾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위로를 주기 위해 쓴 역사 에세이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읽기에 부담스럽고 어려웠던 『삼국유사』속 이야기 한 대목과 현재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자성어(四字成語)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이 사자성어를 돋보기로 하여 과거와 현재를 다시 견주어 보고 해체하고 읽어내고 있습니다. 옛글을 읽어 오늘을 다시 보는 지혜를 배우는 여름의 한 시절입니다. 긴 장마도 끝자락이 보입니다. 모두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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