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 ‘학벌에서 실력으로’, 고졸 취업 요람 중앙취업지원센터 출범

2020.10.06 10:30:00

허경 한국장학재단 취업연계장학부장

세종시 가름로 세종타워에 위치한 중앙취업지원센터(이하 ‘중취센터’). 교육실 한편에 붉은 수은주가 선명한 온도계가 보인다. 연말이면 서울 광화문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의 온도탑’ 축소판 모양새다. 온도계 상단에 적인 ‘고졸 일자리 발굴’이란 글귀를 보고서야 짐작이 갔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 액수만큼 온도가 올라가는 사랑의 온도탑처럼 고졸 취업자가 늘어날수록 붉은 눈금이 위를 향하는 구조다.

 

목표는 5,000건. 지난 6월 문을 연 중취센터가 내년 2월까지 달성하겠다고 약속한 일자리 개수다.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은 물론 중견기업들로부터 일자리를 발굴, 직업계고 학생들의 취업을 늘리겠다는 다짐이다.

 

중취센터는 ‘고졸 취업자 지원확대’와 ‘직업교육에 대한 국가책임 강화’라는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를 이행하고, ‘전국단위 일자리 발굴을 위한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만들어졌다. 전국 17개 시·도에 이미 설치된 지방취업지원센터와 유기적 연계를 통해 고졸 일자리 발굴·지원·관리·연구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다. 직업계 고교생 취업을 위해 정부가 국가차원의 전담 컨트롤타워가 설립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취센터에서 실무 총책임을 맡고 있는 허경 한국장학재단 취업연계장학부장은 “직업계고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살려 안정된 일자리에서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전국 단위 고졸 일자리를 발굴하고 학생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한편 취업담당교사 및 취업지원관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활동을 실시하게 된다.

 

핵심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확보, 직업계고 학생들의 취업을 늘릴 수 있느냐 하는 것. 하지만 코로나19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은 실정이어서 허 부장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그는 관계 부처는 물론 공공기관, 경제인협회 등을 찾아 업무협약을 맺고 고졸 신입사원 채용 확대를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비록 고졸이지만 실력만큼은 대졸 못지않은 데다 계속 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우수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설득한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벌써부터 정부 부처를 비롯 유수 공기업들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오고 있다. 허 부장은 “연내 2~3개 공공기관에서 고졸사원을 채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자신했다. 탄력만 받는다면 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들도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취업문을 활짝 열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들과 매칭을 통해 취업처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빠르고 정확한 취업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중취센터는 학생들에게 지금 어느 기업에서 몇 명의 직원을 구하고 있는지, 조건은 어떤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기업체 역시 자신들의 원하는 인재상을 널리 알려 우수한 고졸사원을 채용할 수 있어 양측 모두 윈윈이다. 게다가 기업체가 실제로 고졸사원을 채용하고 탄탄한 곳인지를 검증해 DB를 구축, 학생들이 믿고 지원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우수 기업에 대한 고졸 청년들의 정보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고졸 취업 우수기업 DB구축 및 취업매칭 시스템이다.

 

허 부장은 이 같은 플랫폼이 구축되면 “정부 부처나 공기업처럼 학교에서 접근하기 힘든 취업처도 중취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얼마든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취업에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졸업생 취업 지원 거점학교 사업 큰 기대

지난 6월 교육부와 산자부, 월드클래스300 기업협회가 맺은 고졸 취업 활성화 업무협약은 대표적 케이스. 업무협약에서 월드클래스 기업은 고졸 인재 채용수요를 발굴·제공하기로 했다. 교육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월드클래스 기업을 ‘현장실습 선도기업’으로 일괄 인정, 우수기업에 대해서는 포상·홍보 및 인센티브를 제공하게 된다. 또 월드클래스 기업이 필요한 인재상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면, 교육부는 시·도교육청과 협력하여 기업 맞춤형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체제도 마련해 주기로 했다. 업무협약 이후 월드클래스300 기업에서는 올해 155명의 고졸 인재를 채용하는 계획을 밝혔다.

 

재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직업계고 졸업생 이력과 취업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하는 거점학교 운영 또한 중취센터가 담당한다. 지난 9월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은 전국 17개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를 졸업생 취업지원 거점학교로 선정했다. 이들은 직업계고 학생이 졸업 후에도 취업을 희망할 경우 모교를 통해 다양한 취업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대부분 직업계고가 재학생에게는 취업정보를 제공하고 기업과 매칭해 주지만 졸업 후에는 연결고리가 끊어져 졸업생 스스로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졸업생 취업지원 거점학교 사업에는 전국에서 37개교가 신청, 치열한 경쟁을 벌일 만큼 높은 관심을 모았다. 중취센터는 거점학교를 통해 발굴된 우수사례와 노하우를 일반학교에 확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직업계고 구성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사회적 편견. 일부이기는 하지만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그릇된 인식이 남아 있다. 허 부장은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스티그마 극복을 위한 국민 인식개선 사업에도 힘을 쏟을 생각”이라면서 “고졸 인재의 우수성을 알리는 홍보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출범 2개월을 갓 지났지만, 고졸 취업 활성화에 거는 기대는 크다. 중취센터 입구에는 각계 인사들의 격려와 기대,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30여 개 동판이 걸려있다. 유은혜 교육부총리는 출범 축하메시지에서 ‘대한민국 미래는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힘찬 발걸음, 희망의 빛이 될 중앙취업지원센터의 출발을 응원합니다’라고 적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청년 인재들의 요람이 돼 달라’고 응원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고졸 취업 지원의 전진기지이자 귀한 허브가 되기를 기원한다’는 바람을 적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 제주여상 문지우 학생은 ‘사람의 돈은 내가 책임진다. 믿음직스러운 은행원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고 양혜원 학생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는 자상한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적었다. 기업체를 대표한 김기윤 중소기업중앙회장은 ‘고졸 인재의 꿈과 미래를 창조하는 중앙취업지원센터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화답했다.

 

교육부 위탁을 받아 중취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장학재단의 의지도 남다르다. 그동안 대학생 학자금 지원 등 국가장학금 지원을 전담해온 한국장학재단이 고졸 취업 지원에 나선 데에는 ‘학력보다 실력’이라는 이정우 이사장이 강한 소신이 뒷받침됐다. 이 이사장은 중취센터 직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오랜 폐습인 학벌사회를 청산하고 만인이 실력에 의해 평가받는 실력사회를 실현하는 것은 우리가 당면한 최대 과제가 아닐 수 없다”면서 “고교생들의 학업과 취업을 돕는 일은 처음 가는 길이라 서툴고 어려움이 많지만, 우리 사회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므로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취직한 뒤 평생 자신의 관심에 따라 학습하는 경로도 훌륭한 인생이란 인식이 널리 퍼질 필요가 있다”며 “직업계고교 졸업생들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는 것은 학력불평등과 차별을 감소시켜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취센터 직원들 각오 또한 남다르다. 이들 명함엔 ‘꿈의 스케치, 색을 입히다’란 문장이 새겨있다. 학생들의 다양한 꿈을 실현시켜주는 최고의 조력자가 되겠다는 일종의 자기암시다. 허 부장은 “학생들이 직업계고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열정과 소명의식을 갖고 고졸 취업이란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가겠다”며 “오늘보다 더 좋아질 내일을 생각하면서 노력한다면 어떤 꿈을 꾸든 이뤄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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