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지각변동...‘수능장벽’ 넘을까

2021.04.05 10:30:00

현재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2025년에 고등학교 신입생이 된다. 그들은 고교학점제를 통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2028학년도 대입을 치르게 된다. 고교학점제의 첫 세대가 이때 배출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교학점제의 성패가 2028학년도 대입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28학년도 대입제도는 대입 4년 예고제에 따라 2024년에 발표된다. 이때 발표되는 대입제도를 보고 학부모·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선택할 것이고, 고등학교는 2025학년도 신입생을 위한 교육과정을 마련할 것이다.

 

 

고교학점제의 첫 세대, 그들의 대입제도

2022년에 고시될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에 부합하는 대입제도를 마련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경쟁에서 포용으로의 전환’이라는 교육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지금까지 고등학교 교육과 대입은 경쟁으로 인식되어 왔다. 교과의 석차등급·수능등급은 상대평가결과이기 때문에 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높은 성적을 받아야만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구조는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몰면서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좌절감을 안겨준다. 한번 실수한 학생이 재기의 기회를 만들기도 참 어려운 구조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대입제도가 상대평가체제보다는 절대평가체제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교 교과성적이나 수능성적이 몇 % 안에 들었느냐에 따라 등급을 받는 체제에서 벗어나 학생이 성취한 점수에 의해 등급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정한 기준을 통과하면 합격이 보장되는 체제가 점진적으로 도입되길 바란다. 지금의 대입은 수시나 정시 모두 운에 좌우되는 측면이 강하다. 여기서 말하는 운은 간단하게는 경쟁률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학생들의 지원경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쟁률·지원경향·점수에 민감하고, 그에 따라 진학지도를 하는 이유는 모든 전형의 유형이 ‘지원자들 중 내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좋은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합격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학과단위 모집이 아니라 대학단위로 모집한다면 촘촘한 상대평가결과에 의해 선발되는 폐해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교육과정을 통해 구현된 학습자를 선발할 수 있는 전형을 구안해야 한다. 현재의 대입전형 유형은 수시의 학생부종합전형·학생부교과전형·논술전형·실기전형, 정시의 수능위주전형·실기전형 등 여섯 종류가 있다. 따라서 교육부 고교학점제 종합계획에 나타난 자기주도성, 창의와 혁신, 협력과 소통의 학습자상을 갖춘 우수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전형은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부분은 고교와 대학의 협력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고교와 대학의 연계가 필요한 부분이 교육과정 연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교육과정 연계는 단순히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업역량을 갖추기 위해 고등학교에서 전공 관련 교과를 얼마나,어떻게 이수했는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교와 대학의 평가공유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평가를 공유할 수 있는 전형 개발이나 보완이 필요하다.

 

이제 세부적으로 고교학점제 종합추진계획에 나타난 내용을 순서대로 대입제도와 연관시켜 생각해보자. 우선 이수와 미이수를 대입에서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떠오른다. 추진계획에서는 미이수 과목은 보충이수 기회를 지원하고, 보충이수 후 부여되는 성적에 상한을 설정하며(성취도 E), 보충이수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해당 과목 미이수(I*) 처리하도록 한다고 한다.

 

학점을 취득해서 고등학교 졸업 요건을 충족시킬 수는 있지만, 대입에서는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학생부종합전형이라면 교과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서 보충이수나 미이수의 이유·과정 등을 설명할 수 있지만, 교과전형이라면 어려울 것이다. 첫 평가에서 미이수한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보충이수를 통해 학점을 취득하는 것이 대입에서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미이수 학생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대입제도가 위축시킬 수도 있다.

 

 

다양한 유형의 교과를 대입에서 반영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에서 <전문교과Ⅰ>의 과목들이 보통교과의 진로선택과목으로 개편되면 고등학교의 편성 부담은 커지고, 선택이수하는 학생들의 수도 늘어날 것이다. 같은 학교를 다닌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선택과목의 유형과 종류가 각기 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개편 취지가 학생들마다 진로와 진학계획·역량·흥미·특기 등을 고려한 과목 선택의 보장이라면 대입도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를 읽는 방법의 변화가 필요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시험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수능 선택과목은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대입제도에 따라 많은 학생들이 높은 수준의 과목들을 과도하게 이수하거나 좋은 성적을 받는 과목으로만 선택이 집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환경의 차이가 대입의 학생평가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하에서는 학교의 교육경계가 확장될 것이다. 고교학점제 선도지구의 경우를 보면 대학·기업·연구기관 등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학점제를 운영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선도지구 내 기관과의 연계를 통한 과목 개설·진로교육·상담 등 교육활동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 추진계획의 창의적체험활동 부분을 보면 학교의 자율성에 기반하여 단위학교의 교육철학·비전 등을 반영한 특색 있는 프로그램 운영시간으로 창체시간을 활용하고, 교내 활동과 더불어 학교 밖 자원과 연계한 창체 활성화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기관 명칭 등이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교육내용과 방법에서는 학교 내에서만 이루어진 교육과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공정성 강화를 위해 블라인드 평가가 도입되었지만, 블라인드 평가 때문에 학교나 학생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공정한 평가가 어렵다는 지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드러나는 양질의 교육이 어떤 배경과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인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대입 결과에서 지역 간의 격차, 학교 간의 격차가 커질 수 있음이다.

 

수능 정시 비중이 고교학점제에 미치는 영향은

또 현재의 수능 형태와 정시의 비중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추진계획에 따르면 학기당 최소 수강학점을 규정하는데 3년의 수업연한 내 학생이 192학점을 균형 있게 취득하도록 학기당 최소 수강학점 수(예시:28학점) 규정한다고 한다. 대부분 고등학교에서는 최소 수강학점인 192학점을 기준으로 교육과정이 편성·운영될 것이다. 학기당 32학점을 주당 수업시수로 보면 지금보다 2시간이 줄어든다. 그리고 1학점을 50분 수업 16회로 기준 한다면 학교의 수업일수도 2주 정도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생기는 시간이 앞에서 언급한 추진방향이나 학습자상을 구현하는 데 이용되지 못하고 정시 수능 준비에 쓰인다면 고교학점제로의 개편 취지가 무색해진다. 학교에 따라서는 1학년과 2학년 시기에는 학기별로 34학점을 이수하고 3학년 시기에 학기별 28학점을 이수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학교는 고3 시기가 학교 밖에서 수능을 준비하는 시기로 쓰일 가능성도 있다.

 

이와 더불어 어떤 유형의 과목까지 수능 범위에 포함할 것인가도 결정해야 한다. 수능에서 공통과목만 본다면 1학년에서 이수한 과목을 수능 대비를 위해 2·3학년 시기에 사교육을 통해 다시 공부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선택과목으로 범위를 확장한다면 일반·융합·진로 중 어떤 유형의 과목들까지 수능 범위를 정하여야 하는 문제가 있다. 다양한 유형의 과목을 개설하는 이유는 학생의 과목 선택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인데 선택과목까지 범위를 확장하면 학생들이 수능에 유리한 과목으로 쏠리거나 선택과목의 수업을 수능 대비 수업으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있다.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공정성 의심 극복이 관건

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성적 표기방법도 달라진다. 기존에는 공통과목과 일반선택과목의 경우 1~9등급의 석차등급제였고, 진로선택과목은 A·B·C 3단계의 성취도 평가였다. 현재 확대되고 있는 교과전형은 석차등급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에서는 공통과목에서만 석차등급을 부여하고, 모든 선택과목은 성취평가제로 바뀌게 되므로 현재와 같은 형태의 학생부교과전형을 유지하기 어렵다.

 

대학은 교과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제공되는 정보들을 정량화해야 한다. 2022 대입 교과전형에서 교과성적을 산출하는 방식을 고려한다면 석차등급의 1등급과 성취도의 A를 동일한 점수로 환산하는 대학, 성취도별 학생비율을 반영해서 석차등급을 재산출하여 환산하는 대학이 있을 수 있다. 또는 원점수를 기준으로 별도의 등급을 산출해서 환산하는 대학도 나타날 수 있다. 상위권 대학에서는 학생부교과전형이지만 정성적 평가를 반영하는 대학이 확대될 수 있다. 그 경우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도 있다.

 

 

교육부는 현재의 여러 전형 유형 중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고교학점제와 가장 부합하는 전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추진계획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 등 새로운 교육제도를 반영한 미래형 수능 및 대입 방향(2028학년도 대입 적용)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하면서 대학 입학사정관 대상 교육과정 연수 및 안내, 정성평가 역량 제고 등 대학의 고교 교육과정 이해도 제고 지원을 주요 사업내용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될 때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법률이나 지침 등으로 대학별로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면 앞으로는 정부 차원에서 공정성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이외에 학생부종합전형에서 교과학습발달상황이 전형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이 된다. 교과·창체 학점을 재구조화하여 교과연계가 강화된 창체영역인 ‘진로탐구활동’ 도입을 고려하여 교과·창체 간 이수학점을 균형적으로 감축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행 180단위에서 6단위 감축하는 것과 24단위에서 6단위 감축하는 것은 비율의 차이가 크다. 교과에서 3.3% 정도가 줄었다면 창체에서는 25%가 줄어드는 것이다.

 

 

현재는 고교학점제가 반영된 2028학년도 대입제도를 예측만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고교학점제를 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대입까지도 고민할 여력이 없다. 하지만 잘 가르치는 학교가 대입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잘 가르친다는 것은 교육과정을 학교와 교실에서 잘 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고등학교는 고교학점제를 먼저 이해하고 고교학점제를 구현하기 위해 교육과정의 전환에 대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김해용 서울선사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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