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평화·홀리스틱… 철산초의 이유 있는 행복공동체

2021.05.06 10:30:00

경기 광명철산초등학교

 

#01 _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흑백 모노톤 화면의 텅빈 교실, 낯익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부드럽고 담담한 음색의 주인공은 가수가 아닌 교사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개학이 미뤄지자 제자들이 보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을 노래에 담아 영상으로 연출했다.

 

#2 _ “어린이는 각종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이번엔 공사현장. 안전모를 쓴 세 명의 출연자가 두 팔로 X자를 그리며 안전사고 위험을 경고한다. 급식 조리실에서는 빨간 고무장갑은 낀 채 음식 준비를 하며 고른 영양섭취를 강조한다.

 

경기도 광명시 철산초등학교에서 만든 ‘철산어린이 헌장’의 한 장면이다. 교장과 교감선생님이 상황에 맞는 분장을 하고 학교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학교가 책임져야 할 내용 열가지를 코믹하게 연출했다.

원격수업으로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못하자 보고 싶은 마음에, 또 그들에게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고 싶은 바람에서 지난해 어린이날을 맞아 제작한 것이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학생들이 빨리 학교에 가고 싶겠다” “열연하신 교장선생님, 감동적이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남녘엔 벚꽃이 난분분하던 3월 말, 세월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복도를 따라가다 발길이 멈춘 곳에 ‘철산벅스’란 문패가 보인다. 이곳은 다름 아닌 교장실. 화제의 주인공 송민영 교장을 만났다.

 

교장실은 ‘철산벅스’ 열린 공간으로 변신

<철산 벅스>에 들어자 ‘행복이 피어나는 곳, 기쁨으로 환영합니다’란 꽃분홍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 커피를 비롯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언제든 교장실에 들러 차도 마시고 이런저런 학교 돌아가는 이야기도, 고민도 나눌 수 있는 곳이다. 3월 초엔 새로 전입된 교사들 환영식장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전입 교직원 환영회 날 교장선생님이 많이 망가졌다(?)”고 운을 뗀 나현정 교무부장은 “하트모양 뿔테 안경에 빨간 나비리본을 단 송 교장의 등장에 웃음보가 터지면서 어색했던 분위기가 한순간 사라졌다”고 당시 상황을 귀띔했다.

 

 

“교사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가까이 가려면 교장이 망가져야 해요. 권위는 만들어지는 게 아닐뿐더러 망가진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죠. 저의 친근함이 교사들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송 교장은 유독 교사들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교사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교직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교장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라고 했다. “물론 학교의 중심은 학생이죠. 하지만 교육은 교사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겠어요.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죠.”

 

실제 송 교장은 전문직으로 근무하던 당시 교사 안식년제를 앞장서 주창한 인물이다. 교사들에게는 주기적인 휴식이 필요할 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제공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도 이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철산초엔 ‘토토데이’라는 게 있다. 1년에 한 차례 학생과 교직원 모두 각자 고마운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서로를 토닥이는 날이다. 토토데이 패들렛에는 ‘맛있는 음식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등등 급식 조리사, 배움터 지킴이, 돌봄 전담사들에게 보낸 학생들의 편지글이 가득하다.

 

학교구성원 간 서로 아껴주고 배려하는 철산초 교풍은 송 교장의 오랜 교육적 철학이 배경이 되고 있다. 송 교장은 국내 손꼽히는 홀리스틱 교육전문가다. 일찍이 학회 창설을 주도했고 관련 서적을 직접 출간했다.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경기율곡교육연수원 근무 때는 교장자격연수에 홀리스틱 과정을 포함 시킬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다

 

이론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직접 실천에 옮긴다. 지난 2019년 철산초는 아시아태평양 홀리스틱 국제학술대회를 치렀다. 세계 10여 개국 40여 명의 학자 및 교육관계자들이 철산초를 찾아 홀리스틱 교육이 현장에서 어떻게 실천되는지 눈으로 보고 확인했다. 당시 행사에서 철산초 4~6학년 학생들이 직접 외국 손님들을 맞았다.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학교소개는 물론 한국문화까지 척척 안내하는 모습에 선생님들조차 깜짝 놀랐다고 한다.

 

교장이 실내화 심부름도 척척... 권위를 버리자 진심이 통했다

평화와 자연을 사랑하는 홀리스틱 정신은 철산초 교육프로그램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생태교육과 평화교육에도 누구보다 열정을 쏟는다. 생명의 숲 가꾸기 운동을 통해 자연생태를 활용한 체험교육에 열심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철산초의 대표 브랜드나 다름없는 평화교육도 마찬가지. 지난해 3월 열린 랜선 평화콘서트는 보기 드문 감동을 연출했다. 이날 행사 순서 중 철산중창단이 ‘우리 겨레와 DMZ 동산에서(작사·곡: 최원영)’를 부를 때 가정에서 학생·교사·학부모 모두가 함께 부르며 평화를 기원했다. 지난 2019년에는 DMZ 평화인간띠잇기 운동에 참여, 전교생과 교직원이 참여하는 평화인간띠잇기 캠페인을 실시하고 평화통일의 마음을 되새겼다.

 

송 교장과 철산초의 인연은 깊고 진하다. 그는 젊은 시절 철산초에서 평교사로 근무했다. 그러던 중 교육전문직 시험에 합격해 경기도교육청과 율곡교육연수원, 평화교육연수원 등을 거쳤다. 그리고 지난 2019년 철산초 교장으로 컴백 했다. 그는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가 이제는 어엿한 학부모가 돼 철산초에 자녀를 보내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라고 말했다.

 

곰삭은 옛정은 푸근하다. 그는 늘 엄마의 마음, 할머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 등교맞이 행사를 거른 적 없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교문만큼은 비우질 않는다.

 

교문 앞은 그가 가장 중시하는 학부모 소통 장소다. 자녀를 바래다주는 학부모와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고충도 듣고 의견 수렴도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실내화 등 준비물을 빠뜨린 아이가 있으면 송 교장이 대신 전달해 준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다 보니 철산초는 어느덧 민원 없는 학교로 정평이 났다. 진심은 통하는 법. 학부모들은 학교를 믿는다. 학교에 가면 자녀가 사랑받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학부모들은 그런 송 교장에게서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광명 시장까지 찾아와 감사의 뜻을 전하고 갔다. 학교가 지역사회의 중심이 돼 참된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앞서가는 학교 입소문... 학생들이 몰려온다

명문학교란 입소문이 나자 철산초로 학생들이 몰려온다. 송 교장 부임 이후 4학급이나 증가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급수가 줄어들어 고심하는 학교들과는 대조적이다. 아이들의 꿈과 끼를 마음껏 발현할 수 있는 다양하고 우수한 교육프로그램이 즐비한 탓이다.

 

사실이다. 시대적 흐름을 앞서가는 교육활동이 명성을 얻으면서 철산초는 선도학교로 지정된 것만 10여 개에 이른다. 원격교육 선도학교, 학생참여형 과학수업선도학교, SW·AI선도학교, 무선인프라구축 대상학교, 온라인교과서 선도학교, 예비교사협력 실습학교, 보건교육 거점학교 해오름광명 문화예술클러스터운영학교 등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 학교 정은경 교감은 “학생들에게 풍성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교육과정을 더욱 내실 있게 운영할 수 있다는 게 선도학교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무엇보다 아이들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최선을 다해준 선생님들에게 특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움의 성장을 꽃피우는 행복공동체란 슬로건처럼 철산초 학생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친다. 또 예절 바르다. 학교 측은 인성교육을 중시한 효과라고 설명했다. 특히 실천하는 인성교육 즉, 기부활동도 활발하다. 학생들은 그간 플리마켓 운영을 통한 수익금을 광명희망나눔센터 등에 기부했다. 기부라면 송 교장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일찍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남몰래 후원해 왔다. 과학영재교육담당 장학사 시절,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어려운 형편 때문에 좌절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후원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가 다니던 성공회대학교에도 장학사업에 써 달라며 모은 돈 수천만 원을 기부하는 등 아낌없이 퍼준다.

 

37년 교직에 몸담는 동안 항상 제자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온 송 교장. 그는 “아이들과 기쁨을 공유하는 교장, 그들이 늘 보고 싶어 하는 교장이 되고 싶다”며 쾌활하게 웃었다.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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