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백 마리 물고기와 산다

2021.06.03 09:27:53

김수우의 '어리석은 여행자'

보리타작을 시작한 강마을에는 연일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기압이 낮은 날이면 빵 굽는 냄새 같기도 하고, 누룽지 냄새 같기도 한 매캐한 연기가 온 들을 휘감아 희뿌옇습니다. 황금빛으로 출렁이던 보리밭 옆으로 모심기를 한 논이 보입니다. 연초록 어린 모들이 줄을 맞추어 선 무논에서 개구리 소리가 들립니다. 참으로 싱그러운 계절입니다.

 

운동장에는 동아리 체육대회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땀을 흘리면서 이단뛰기 연습을 하느라 붉어진 은실의 볼이 사과처럼 어여쁩니다.

“은실아, 연습은 잘 되니?”

“아니예, 집에서 맨날 하는데 잘 안되예!”

“선생님도 예전엔 이단 뛰기를 잘 했는데!”

“한번 해 보이소예.”

은실이의 줄넘기를 받아 몇 번의 이단뛰기를 하니, 어지럽고 숨이 찹니다.

“아이고! 나이는 못 속이겠다. 예전에는 50개도 쉽게 했는데....”

 

줄넘기를 은실이에게 넘겨주고 운동장 주변을 산책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향기로운 바람이 코끝을 스칩니다. 울타리 사이에 희고 노란 인동꽃이 피어있습니다. '금은화(金銀花)'라고도 불리는 대표적인 여름 야생화입니다. 처음에 흰색으로 피지만 다음날이면 노란색으로 변해, 마치 흰색과 노랑의 두 색 꽃이 피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인동꽃을 따서 끝을 쪽 빨면 달큼한 꿀이 조금 나옵니다.

 

이렇게 여름의 달큼한 같은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부산의 원도심에서 글쓰기 공동체 <백년어 서원>을 열고 인문학을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김수우 시인입니다. 그녀는 자본에 주눅 들지 말고 존재감에 대해 고민하는 소박한 영혼끼리 책이라도 읽자는 기원에서 문을 열었지만 인문을 찾아가는 길은 현실의 모든 법칙과 상충했다고 합니다. ‘돈’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그랬습니다. 돈이 있어야 된다는 자본의 법칙을 뛰어넘지 못하면 생명운동이 되지 못하지라 믿었다고 합니다. 이 공부가 구비친지 십이 년이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정말 멋있습니다.

 

자기 안에 들판을 가진 사람은 우주의 이치를 잘 알고 있다. 어떤 고단함 속에서도 생명의 순리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무수한 희망의 경계를 길러내는 힘이 그 마음의 들판에 있는 것이다. 꽃들은 결국 마음의 들판에 피어나는 우주이다. 내 속에 우주를 담은 사람은 내가 우주에 담기는 법도 안다. 광대한 우주가 한 방울 물에 담기기도 하고, 우리 자체가 작은 우주인 것처럼 말이다. 우주에 담기는 법을 안다는 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의 말이나, 무소유를 가르친 붓다의 언어를 이미 안다는 말이 아닐까. p.209

 

자유로운 영혼의 향기가 넘치는 김수우 시인의 산문집 『어리석은 여행자』를 읽으며 이 세상은 사람들이 있어 아름답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연대가 더 멋진 곳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향기로운 인동꽃 울타리 사이로 싱그러운 첫여름이 빛나고 있습니다. 아침저녁 제법 서늘합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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