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통계에서 국가별 월평균 독서량의 비교가 보도되었다.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 … 한국 0.8권 순이었다. 수치상 참으로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요즘에는 ‘포노 사피엔스’라 칭하듯이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손에 스마트폰이 부착되다시피 함으로써 인간에게 오장칠부가 되었고 국가 간의 책읽기 격차가 과거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고 보고된다. 이는 전화위복의 기회라 할 수 있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과거 일본은 지금과는 달리 한국이 경제적 도약으로 무섭게 추격해오자 이를 의식하면서도 “한국은 두렵지 않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면에는 자국민의 독서량과 비교해 거의 책을 읽지 않는 한국에서 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만큼 독서는 그 나라의 국력을 좌우하는 버팀목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경제가 주춤해도 노벨상 수상자를 중단 없이 배출하고 있고 최근엔 일본 정부가 나서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국제공인교육과정)를 도입해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사고력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개혁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언제나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세계화의 흐름에 대응하는 일본인의 탁월한 식견으로 그 배경에는 독서의 힘이란 신뢰할만한 국민적 자산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판단된다.
그럼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자. 현재 대한민국은 4차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을 통째로 가두고 있으며 그마저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돌파감염의 위세가 점차 국민들을 옥죄어 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가공할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탈진실(post-truth)’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서 각종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사회적 현상들이 넘쳐나고 있다. 여기서 탈진실이 무엇인가? 이는 공중(公衆)의 의견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객관적 사실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엔 확증편향, 인지적 부조화란 현상이 압도적이며 이는 그 어떤 백신도 무용지물이다. 그로인해 민심은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다.
국내의 선각자들은 이를 예견한 듯 3년 전에 한국의 미래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전략적 진보가 가능한가’라는 주제 토론이 있었다. 발제자인 최진석 교수는 “우리가 그간의 전술적인 진보에서 한걸음 나아가 우리만의 패러다임으로 성장하며 판을 짜는 전략국가로 건너가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하강의 길로 들어선다는 경고와 함께 말이다. 이후 최 교수는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전술국가에서 전략국가로 나아가려면 우선 책읽기로 지식을 키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새말 새몸짓, 책 읽고 건너가기’ 운동을 제기하였다.
이제 시선을 해외로 돌려보자. 서구 선진국은 ‘독서량은 부와 비례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예컨대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등 글로벌 리더들은 하나같이 독서광이고, 일류대 졸업장보다 독서를 더 중시했다. 결국 창의성과 융합능력이 중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쟁력은 풍부한 독서와 이에 기초하는 창의적 리더십, 경영능력이 성패를 좌우한다.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의 유능한 CEO들은 하나같이 독서광이지 않은가.
우리에겐 늘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이념과 진영 논리에 갇힌 권력층 및 일부 지식인 집단의 궤변과 막말이 대한민국을 혐오 사회로 만들고 있다. 우리가 보다 문화강국으로 상승하려면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힘’이 절실하다. 이것이 탈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다. 생각은 바로 독서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 가치가 존중되는 지성국가로 갈 것인가 아니면 야만의 탈진실에 머물 것인가는 독서교육에 달려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초중등 학교는 학교 공간 혁신 사업으로 학생들의 취향에 맞게 도서관이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자유롭고 편리한 자세(예컨대 누워서 책읽기)로 독서를 할 수 있게 만든 도서관 환경은 학생들에게 매우 인기다. 이를 반영하듯 코로나19로 학교 문을 닫아도 도서관의 대출만은 허용해 달라는 일부 학생과 학부모의 요청은 실낱같은 국가적 희망으로 다가온다.
우리 사회의 경제계, 학계, 문화예술계 등에서 존경받는 리더들도 독서는 한결같은 공통 인수에 속한다. 그만큼 독서의 힘은 크다.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인류의 보물인 고전(古典)은 말할 것도 없고 예지력을 키우는 각종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교양서적들을 읽기 교육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것이 경제적으로 현재 각종 출판사와 대형서점들의 경영난을 해소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한 국민들의 멘탈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 믿는다.
학교에서의 독서교육에 희망을 알리는 통계가 있다. 과거 교양서적이든 문학서적이든 11권 이상 읽은 학생이 한 권도 읽지 않은 학생보다 수능 국어영역 20점 이상, 수리영역도 8점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가 그것이다. 그만큼 독서는 힘이 세다. 이는 곧 현대의 국력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제 가뜩이나 코로나 시국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더욱 부추김을 당하는 탈진실 현상을 벗어나는 길은 바로 독서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교육은 시대의 변화에도 사이클처럼 반복된다. 다시금 독서교육은 시대적 당위성이자 난국을 극복하는 지혜임을 인식하자. 더불어 지금처럼 기후위기로 인해 연일 폭염과 열대야를 이겨야 하는 이 여름에 더위를 잊는 망서(忘暑)의 처방으로도 독서만한 것이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