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학은 신뢰를 잃었고 수능은 교육을 망쳤다”

2022.01.05 10:30:00

신년특집 석학에게 듣는다
김도연 울산대학교 이사장

 

“수능은 공정하지도, 교육적이지도 않아요. 정답과 오답만 가르는 찍기 시험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교육을 모두 지배하는데 무슨 창의적 인재를 기르겠어요.”

 

교육부장관을 지낸 김도연 울산대 이사장은 수능의 가장 큰 폐단으로 학생들에게 정답과 오답만 있는 세상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알고 있고 알아야 할 모든 지식에 맞고 틀리는 것만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중간이라는 게 얼마나 많아요. 검은 것과 흰 것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회색지대가 훨씬 많잖아요. 그런데 수능은 회색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교육을 하고 있어요.” 김 이사장은 이 같은 수능 교육이 우리 사회에 흑백논리를 강화시키고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대립적 문화를 고착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수능은 이미 한계를 넘긴 지 오래”라고 전제하고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개선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고 당장 폐지하기보다 10년, 20년 장기적 안목으로 서술형 문항을 추가하는 등 발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우리 사회 석학으로 존경받고 있는 김 이사장을 만나 한국 교육의 위기와 가능성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올 3월이면 대선이 치러집니다. 교육계를 대신해 여야 후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통령이란 국민들을 위해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대통령 후보 중에 누가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부동산 문제도 검찰 개혁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이 이대로 가면, 우리의 미래는 정말 어둡다고 봅니다. 상당히 어둡습니다. 교육의 여러 문제들을 정파적 안목이 아닌,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긴 호흡으로 풀어가길 당부합니다. 5년마다 교육정책을 리셋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선거가 임박하면 공약을 내놓겠지만 현재로선 교육에 좀 무관심해 보입니다. 괜히 건드려봐야 득 될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일까요?

“국민들의 관심이 없는 거죠. 사실 교육열이 높다고 하지만 오로지 관심은 대학입시뿐입니다. 그러니 입시가 끝나면 교육에 대한 관심도 끝나버리는 거죠. 사실 국가지도자라면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점은 아쉽습니다.”

 

지난 5년 문재인정부 교육정책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지, 또 학점으로 총평을 한다면 몇 점 정도 줄 수 있는지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지난 2년은 교육종사자 모두에게 어려운 기간이었고, 정책수립 및 구현에서도 어려움이 더 많았던 기간이었다고 믿어집니다. 인상 깊었던 점을 꼽는다면 첫 번째는 임기초기의 ‘대입 공론화 위원회’ 구성과 운영이고, 두 번째는 이런 공론화를 통해 수립했던 대입제도를 소위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바로 다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아쉽게도 모두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인상 깊은 것들이 남아 있네요. 저는 자사고 폐지 등도 상당히 잘못 추진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국 사태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면 될 일을 그땐 관행이 그랬다느니 하면서 변명으로 일관했죠. 게다가 오히려 입시제도를 바꾸라고 요구할 정도니 국민들이 분노할 수밖에요. 많은 교수들이 자녀 입시를 위해 논문 품앗이하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 것도 유감스럽습니다.”

 

그러고보니 논문표절과 자녀 공저자 등재 등 대학의 연구 윤리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일부 유력인사들의 학위를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고요. 대학 스스로 신뢰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대단히 아쉽지만 대학이 신뢰를 잃었다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대학에 대한 사회의 기대는 여느 조직과 다르게 훨씬 더 도덕적으로 엄정하고 모든 면에서 투명한 곳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걸핏하면 부각되는 논문 표절 시비는 결국 대학이 부실하게 학위를 수여했기 때문이지요. 의혹이 제기되면 이를 철저히 점검해서 표절이라면 학위를 취소하고 지도교수를 징계해야 하는데, 그런 당연한 일들에 대학은 머뭇거리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자녀 공저자 등의 경우에도 엄중한 징계가 있어야 합니다. 대학은 지금보다 훨씬 더 도덕적으로 엄격해져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6월에는 시도교육감 선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교육계도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여기시는지요.

“우선은 지금과 같은 교육감 선거제도가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 훨씬 더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통상 20%도 안 되는 투표율은 이미 그 자체로도 직선제로서 전혀 의미가 없다고 믿습니다. 누구도 관심 없는 선거이기에 기호를 잘 추첨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우스꽝스런 행사가 돼 버렸습니다. 정당과 연계되어 있는 줄 착각하기 때문이지요. 아울러 소위 좌파처럼 후보단일화를 이루면 무조건 승리, 혹은 우파처럼 단일화에 실패하면 필패입니다. 즉, 후보자의 경륜도,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교육정책도 당락에 전혀 영향을 못 미치는 선거입니다. 교육감 선거가 전혀 교육적이지 못하니 이는 정말 큰 문제 아닌가요? 저는 이럴 바에야 차라리 지방자치단체장의 러닝메이트로 교육감을 선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육감 직선제 폐단이 크다는 말씀인 거죠?

“교육자치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정치꾼들의 놀이터가 돼 버렸습니다. 수백억 들여 선거해 봐야 그사람들 좋은 일 시키는 거예요. 교육감 하겠다는 사람들도 교육보다는 정치권 눈치나 보고 말이죠. 이걸 혁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실정에 교육감 직선제는 맞지 않아요.”

 

코로나19 이후 학생들의 학력저하가 두드러지고 교육격차가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렇다할 대책도 성과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육이 위기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코로나19로 인해 격차가 심각해진 분야 중 하나가 교육임에 틀림없습니다. 학교는 미래 세대를 위해 인류가 창안한 교육 시스템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하드웨어지요. 그런데 같은 또래 학생들을 학교에 모으는 것으로 시작하는 전통적 교육은 코로나19로 졸지에 불용(不用) 처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던 혁명적 변화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엔 현격한 격차가 생겼습니다. 벌써 2년째 계속되고 있으니 훗날 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될 것 같습니다.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책을 마련하면 좋았겠지만, 그러나 국가의 획일적인 정책은 항상 또 다른 부작용도 불러오지요.”

 

이런 때 일수록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직접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학습 의욕을 확실히 지닌 학생들은 어느 또래건 대개 전체의 20% 정도뿐인데,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 학생들에게 원격수업은 지루한 시간 때우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학습의욕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교사가 이를 직접 독려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원격수업을 훨씬 효율적으로 가꾸는 일은 교육계에 주어진 새로운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이 직접 나서야 할 일입니다.”

 

관련지어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야기 합니다.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해 우리 교육은 어떻게 대비하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특히 과학 및 이공계 교육을 중심으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공계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 교육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이제 디지털 문명사회에 필요한 인재상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교육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합니다. 학생들이 길러야 할 소양을 알차게 교육하는 일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는 일은 어떤 측면에서 그보다 더 중요하지요. 학생들의 학습목표는 오로지 시험을 잘 보는 것이므로, 시험문제를 어떻게 내는가가 결국 교육을 지배합니다. 주어진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깊게 생각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현재의 수능과 같은 시험으로 평가받는 학생들에게 그런 가르침은 그저 공허할 뿐입니다. 긴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풀어야 할 많은 문제에 오지선다가 어디 있나요?

 

저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우리 교육을 풀기 위해서는 수능이라는 매듭부터 손을 보아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모든 국민이 자녀의 대학입시에 초미의 관심을 갖는 상황에서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개선책을 마련하는 일은 물론 불가능이지요. 긴 시간을 두고 장기적 계획으로 수능을 바꾸어야 합니다.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수능제도에 손을 대는 일은 최악입니다. 학생들에게 ‘공부와 학습’을 지긋지긋한 일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것이 현재의 수능입니다. 저는 50년 전에 <예비고사>를 치른 세대입니다. 지금의 수능 같은 대입을 위한 전국 차원의 시험이었지요. 이런 무지막지한 시험제도가 아들딸을 지나 손자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바뀌었나요?”

 

이명박정부에서 교육부장관을 지내셨습니다. 정권 교체기마다 교육부 폐지론이 나옵니다. 실제 장관을 해보시니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여기시는지요.

“참으로 아쉬운 이야기입니다. 교육부가 없으면 진정 교육이 잘 될까요? 국회나 청와대가 없으면 우리나라 정치가 잘 될 것이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인재양성의 다양성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획일적 규제 등은 폐지되어야 할 대상이지요. 교육부 폐지는 빈대 잡자고 초가집 태우는 일입니다.”

 

새해를 맞아 전국의 교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교직은 성직입니다. 소명은 원래 종교적 개념으로 하늘의 부름을 받은 일이라는 뜻이지요. 같은 일에 종사하면서도 그 일에 대한 의미를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가 물론 많지만, 저는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인간사회에서 가장 큰 가치를 지닌 일이라 믿습니다. 사회 여건이 녹록지 않은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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